부담과 여행
둘째 날.
조금 덥다고 생각하며 잠에서 깼다. 역시 너무 푹신하고 무거운 이불은 내 취향이 아니다. 난방을 높여둔 탓에 목이 건조해져서 몇 번 일어나 물을 마셔야 했지만 집에서보다 편안한 기상이었다. 그러다 전화를 받고 정신이 들었는데 잔뜩 짜증이 난 엄마였다. 어젯밤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일부러였는데. 일방적으로 연결했다가 끊어버리는 통화 후 확인한 시간이 7시 18분이었다. 질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대폰을 집어던지기 전 엄마에게 전화하지 말라는 문자를 남겨두며 나는 또다시 괴로워해야 했다. 이 정도는 말해도 괜찮은 거야.
어제 새벽. 나는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되지 않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다 눈을 번쩍 떴는데 그게 얼마나 갑자기였는지 악몽을 꾸고 있었다고 착각까지했다. 현실로 돌아와 안대를 들춰 문 쪽 불이 밝게 켜져 있는 걸 보고 이불 안쪽이 해지지 않은 걸 확인했다. 그리고는 문 바깥에 내 또래의 요란한 젊은이들이 없다는 것에 안심하며 다시 잠에 들었다. 다시 꿈을 꾸지는 않았다.
아침엔 분명 깜깜한 바다를 보러 가기로 다짐했었는데 갈수록 살벌해지는 바람소리에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이곳이 겨울 바닷가라는 건 집안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 대신 낮에 한 시간쯤 걸어서 서점 몇 군데를 들러 귀여운 고양이책과 추억으로 남길만한 것들을 샀다. 오래된 서점에서 산 납작한 모양의 연필이 특히 마음에 든다. 간단한 인사말 정도밖에 뱉지 않은 낮을 보내고 머무르고 있는 작은 집으로 돌아와 사 온 것들을 한참 만지작거리다 읽고 있던 책을 폈다. 한 바닥 정도 읽고 있었는데 문득 이 고요함이. 말소리 한번 들리지 않는 이 외딴집이 서늘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이미 닫혀있는 문을 밀어내는 바람소리와 고양이 두 마리의 사나운 울음소리에 또다시 두려워졌다.
나는 집에서 말이 없다. 혼자 있을 수 있는 몇 시간 동안은 더 말이 없는데 그럴때 이웃들의 대화, 발소리 같은 평범한 소음에 집착같은 나의 고요함이 깨지는게 화가 났다. 화가 난다고 해서 어찌할 수도 없는데. 그러니까 결국 내가 삐뚤어진 게 맞았다. 그렇게 방 안에서 혼자 아무도 모르게 쩨쩨한 이웃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고요가 무서워서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숨을 죽인다. 방 바깥으로 스쳐가는 낯선 소음은 나를 두려움에 가두었다. 누군가 필요하다.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