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구경꾼에서 주인으로

길위의청년학교 6기 김성훈

by 길위의청년학교

구경꾼이 만들어진 과정

돌이켜보면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받을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받으면서 자랐다. 우리 집은 내가 3살 즈음에 IMF에 의한 풍파가 많았다. 시골의 어느 월세 10만원 집으로 이사해서 살았고, 어린 나에게 부모님은 티는 안내셨지만 늘 가계부를 만지면서 어떻게 가정을 이끌어갈지 고민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다. 힘든 가정 상황 속에서도 내가 집 밖에 온수가 나오지 않는 화장실이 싫어서 칭얼거리면 부엌에서 내 얼굴을 뽀득뽀득 닦아주시던 어머니의 모습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발견된 두껍고 오래된 나와 가정을 향한 기도 제목 수첩들을 통해서 말이다. 완벽한 상황의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부족한 게 보이면 채워주고자 노력하셨고, 현재 가진 온정을 받곤 했다.

2. 학창시절.jpg

시골집 주변에는 어르신들 외에 내 또래가 없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또래들과 대화 해본 적이 없었고, 학교에 가거나, 교회에 가면 말을 걸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무료한 나날에서 학교의 짝꿍은 책상을 넘어왔다고 다투다가 점심시간에 밥 먹고 화해하는 모습,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시간에 도망가다가 걸려서 선글라스 낀 무서운 집사아저씨에게 혼나는 모습들을 보면서 어린 내가 보기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광경들이 그저 재밌었다.


나는 학창시절 주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그리스로마신화, 학교 국어책에 있는 소설, 교회에서 만화성경을 읽었다. 책들에서는 사람들이 나왔고, 기가 막힌 사건들이 그들의 인생에 일어나곤 했다. 학교에서는 책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유형과 사건의 발단 과정을 해석하는 시험을 보곤 했는데, 사람은 흥미롭고도 어려운 존재였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는 정말 강력해서 불가능에 가까운 열두 개의 과제를 이겨내지만, 자기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음악을 가르치던 스승을 때려죽인 영웅이었고, 동백꽃의 점순이는 왜 감자를 주인공에게 주고 닭들을 못살게 굴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여자애였고, 성경의 다윗은 하나님에게 순종하여 어린 양치기의 물멧돌로 거대한 골리앗을 쓰러트리지만, 훗날 밧세바 라는 여성을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을 권력을 이용해서 전쟁터에 내몰아 죽인 왕이었다. 참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철학시간에는 맹자, 순자, 고자와 같은 사람들이 사람은 태어날 때 악한 지, 선한 지, 아님 백지장처럼 사는 대로 정해지는 건지 엄청 옛날에 논쟁을 했다고 배웠다. 나는 수업을 들으며 ‘알다가도 모를 사람을 정의할 생각을 하다니, 멋있는데?’ 라는 생각과 함께 막연하게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평소에 가지고 있던 사람을 탐구하는 심리학에 대한 진로를 꿈꾸며 대학에 왔다. 대학에서는 원하던 심리학과는 아니지만 심리상담을 배우며 여러 봉사를 다녔다.


나라면 다를까?

대학교에서 다닌 봉사 중 한두 달 정도 살면서 지적장애인 생활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어느 부부의 버킷리스트를 같이 이뤄보는 봉사였다. 가장 큰 소원은 한 달 정도 시설에서 나와서 사회에서 진짜 ‘부부 살이’를 하는 것이었고, 읍내에 한 달간 살 집을 계약해서 생활시설과 부부의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냈다. 읍내에서 집을 구할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나는 막연하게 ‘지역 사회 사람들이 이 사연을 들으면 다들 도와주시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남편 분과 같이 집을 보러 다녔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부동산에 방문해서 들은 말은 “한 달만 사는 집은 없다”는 말이었다. 간혹 방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거주자가 장애인이라는 말을 듣고 거래가 파토나기도 했다. 과연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애인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본 남편 분은 밭일도 잘하시고 특히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은 하루에 1~2번은 꼭 청소를 해야 하는 깔끔한 사람이었다. ‘장애인’이라는 유형의 사람은 집 관리를 못할 수 있고, 이웃들이 싫어해서 라는 이유로 부동산에서 퇴짜를 맞았고, 결국엔 한 달에 80만원이라는 큰 금액을 지출해서 내 입장에선 금전으로 장애인의 편견을 이겨내야 하는 서글픈 현실과 ‘그래도 구해서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이었다.

3. 봉사로 집구하기.jpg

안도감 뒤에는 내가 부동산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대뜸 찾아온 한 달만 살아보겠다는 장애인 부부에게 집을 내어줄 수 있나?’ 라는 고민이었다. 그 부부의 삶을 듣고 나서라도 방을 내어주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를 처음 시작할 때 가진 시설에서 거주하는 부부의 버킷리스트의 시각과 만약 내가 부동산 업자일 때 ‘한 달’만 사는 ‘장애인’ 부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다. 분명 사람은 각자의 개성이 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한 가지 유형으로 정의하면, 그 유형의 특징에 집중하게 되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대받는 주인공의 삶

4. 순수한 환대.jpg

나는 봉사를 마치고 학교생활로 돌아가 졸업한 뒤, ‘상담과 관련된 일로 무엇을 해볼까?’ 라는 생각을 펼치기도 전에 어머니가 본인의 개척교회에서 홀로 기도하시다가 고혈압으로 소천 하셨고, 하루라도 빨리 일을 구해서 사회에 홀로 서야 했다. 운이 좋게도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었던 나는 지적장애인교육센터, 일시청소년쉼터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직장을 가질 수 있었고, 감사하게도 그 안에서 어머니를 갑작스럽게 잃은 혼란과 앞으로 내 삶에 대한 비젼을 직장 동료들과 나눌 수 있었다. 첫 직장에서는 교육받으러 온 이용자분들이 나를 보면 너무 좋아해줬다. 가끔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냥 나라는 존재를 순수하게 좋아해줬다. 타인의 삶을 구경하는 구경꾼에서 직장에 가면 늘 환대 받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좋을까? 싶어서 내가 다가오는 이용자에게 다른 선생님들이 뭐가 그렇게 성훈쌤이 좋은 지 묻자, “나를 봐주고, 잘생겼다.” 라고 대답했다. 물론 센터에 있는 선생님을 모두 이쁘고 잘생겼다고 하는 이용자분의 말이기에 “그렇구나.” 라고 넘기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센터 밖에서 이용자분과 나는 누가에게 관심을 받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말 뒤에 온 이용자분들과의 첫 대화는 주말에 무얼 했는지 물어보는 활동을 시작했다. 집에 혼자 공허하게 누워있거나 컴퓨터 앞에 정신 놓고 앉아있는 내가 보였고, 집 밖으로는 외출이 거의 없는 이용자분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주말에 몸을 일으켜서 뭐라도 하려고 했다. 고질적인 컴퓨터 게임시간을 줄여야한다는 건 어려웠지만, 그래도 주말에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나누고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니 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갖고 환대하면서 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청소년의 동행자가 되고 싶었다

5. 거리상담.jpg

그러나 어릴 때부터 배웠던 심리학과 상담을 어떻게든 활용해보고 싶은 마음이 가슴 한구석에서 계속 커져갔고, 이는 첫 직장과의 작별이자 익산일시청소년쉼터에서 청소년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쉼터에 가서 내가 한 일은 센터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이었다. 거리에서 청소년들을 만났고, 처음 한 두변은 내가 뜬금없이 “안녕하세요. 익산일시청소년쉼터라고 합니다. 혹시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라고 인사하며 시작했다. 같은 청소년들을 몇 번씩 마주치자, 청소년들의 이름을 물어봤고, 나의 이름은 묻지 않았지만, “안경 쓰고 마른 선생님 어디갔어요?” 라는 나의 외형적 정의로 서로의 삶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대화하기 뻘쭘해서 캐노피 천막을 매일 한 곳에 설치하고 추울 땐 난로와 핫팩 더울 땐 아이스크림이나 음료를 나눠주면서 대화와 보드게임의 장소를 만들었다. 근처 중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이 학원에 지쳐서 부스에 들르곤 했다.


“담임쌤이 친구랑 같이 휴대폰 했는데, 내 것만 가져가서 개빡쳐요.”, “엄마가 시험점수 떨어진다고 학원을 5개에서 6개로 늘린대요. 피곤해 죽겠어요.”, “선생님 방금 부스에 있다간 여자애 누구에요? 좀 이쁜 것 같아요” 등 청소년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간다. 내가 한 일은 그냥 듣는 것이었다. 한 청소년은 부스에 와서 1시간 정도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서 “이런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친구들은 게임하느라 이해 못하고 선생님과 부모님은 공부만 하면 다 해결된대요.” 라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곤 했다.


“선생님은 이럴 때 어떻게 했어요?” 상담을 한다는 것은 구경과는 결이 달랐다.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다가, 내 말에 집중하고 있는 지 살피기도 하고 문제의 해결방법을 제시해주길 바라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청소년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상담할수록 나는 구경하는 주변인의 역할로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경꾼은 같이 걷지 않고, 그들이 걸은 이야기를 듣기만 하기 때문에 같이 걸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청소년에게는 삶을 같이 걷는 동행자의 역할이 필요했다. 청소년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나에게 주기적으로 찾아올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내가 타인의 인생을 구경하느라 정작 나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는 것도 발견하고 청소년의 고민을 듣고 내 생각에 청소년을 맞춰 정의해서 그들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에 관심만 갖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6. 다이로움 첫 청소년 정책활동(캠페인).jpg

어느 날 거리에서 상담활동을 하고 있는데, 청소년이 집을 나와서 어찌 할지 몰라서 인스타그램 DM으로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자주 집을 나오는 청소년이었고, 반복되는 전화는 실무자 선생님들에게도 피곤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한참동안 집이 아니더라도 잠시 비라도 피할 행정복지센터나 쉼터에 와서 이야기해보자고 설득 하던 중에 동료 선생님에게 두 개 정도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확인하고 얼마 안 되서 동료 선생님은 전화를 왜 받지 않느냐고 물으며, 거리에서 나눠 줄 홍보물품을 다 배포했으니, 빨리 끊고 복귀하자는 말을 남기시고 가셨다.


그 말과 행동이 나의 감정에 불을 지폈다. 반복되는 청소년의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무력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 거리상담활동을 나와서 홍보물품을 다 배포했으니, 할 일을 다해서 들어간다고 말하는 동료선생님에게 야속함을 느꼈다. 거리상담에서 복귀하고 동료선생님과 언쟁을 벌였다. “정해진 거리상담 시간이 끝난 것도 아니고, 가출한 청소년과 상담을 하고 있는데, 나눠줄 물품이 없다는 이유로 서둘러 활동을 마무리하는 게 우리의 일이 맞나요?” 라고 활활 타오르고 있는 나의 감정과 말들을 함께 쏟아냈다. 동료 선생님은 “다들 선생님처럼 할 순 없는 거야. 퇴근해야 되는데 나눠 줄 물품이 없으면 빨리 들어와서 퇴근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바라보는 곳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언쟁을 통해 무언가를 얻었는지 생각해보면 서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너무 이상적인 사람이었고, 퇴근 시간이나 받는 돈에 관심 없이 청소년 일만 생각하는 같이 편하게 일하기 까다로운 선생님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활활 불타오르는 언쟁 덕분에 퇴근시간은 1시간 더 늦어졌고,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같이 일하는 동료, 기관의 가치에 대해서 괴리감이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청소년과 동행할 능력을 기르고 싶었고, 내 비전과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청소년들은 쉼터에 찾아왔다. 같이 이야기도 하고 서로의 삶에 관심도 가졌다. 그런데 무언가 계속 부족했다. 그래서 이 부족함이 무엇인지 찾다가 자치 활동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알던 자치 활동은 학교에서 청소 시간이나 영화 보는 시간으로 알고 있었는데, 청소년들이 자신의 의견을 사회에 반영하기 위해 정책을 제안하고, 각 분야를 정해서 스스로 변화하기 위한 모임 활동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도 스스로 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청소년자치연구소에 인턴으로 5개월간 지원해서 활동했다. 일시청소년쉼터의 청소년들과 작별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내가 배워야 변화가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접 바라본 자치 활동은 정말 복잡했다. 청소년이 스스로 변화하고 자치하는 모습을 갖는 것은 손가락 “딱” 튕긴다고 이뤄지지 않았다. 청소년이 스스로 변화하기 위한 마음과 행동을 뒷받침해주는 지역사회가 함께 있어야 했다. 실무자로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길위의청년학교, 청소년자치연구소에서 듣는 내용은 내 안에 채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뭐가 부족했을까? 고민했던 지점들을 알 수 있었지만, 그만큼 내가 얼마나 마음만 앞섰는지 볼 수도 있었다.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돼’라는 지역의 상황이나 동료들을 바라보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마치 책 한권만 읽은 개똥 철학자의 고집불통 신념을 가진 나와 같이 일한 동료선생님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곤 한다. 나는 채울 게 많은 만큼 비어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느꼈다.


삶의 동행자이자 오아시스

7. 다꿈1.jpg

조금씩 배워가던 중, 청소년자치연구소에서 좋은 기회를 얻어서 익산청소년자치공간 다꿈이라는 청소년 이용 권장 시설에 취업했다. 익산에 5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일시청소년쉼터와 1km 근방에 있어서 동료선생님들과 이전에 만났던 청소년들을 다시 보곤 한다. 나는 다꿈에서 청소년들과 자치하기 위해 지역사회에도 나가고,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 청소년들과 대화하면서 인생에 좀 더 참여해야 한다고 인생의 반절을 구경꾼으로 산 사람이 외치고 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게 왜 중요한지 청소년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아이러니한 사람이다. 가끔은 일이 쌓여서 숲속이나 동굴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다꿈에 오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일할 힘이 생기곤 한다.


“다꿈은 저에게 소설 밖이에요. 꾸며진 000, 학생 000, 딸 000에서 벗어나 그저 ‘나’ 그 자체의 능력을 다 발휘하고 그 자체로 즐기는, 정해진 것 없이 활동하는 게 좋기 때문이에요.”


이번에 다꿈의 자치기구 활동을 정리하는 성과책에 쓸 내용을 의논하면서 한 청소년이 나에게 한 말이다. 나는 나다움을 찾기 위해 열심히 남을 구경하고, 책을 읽으며 나를 바라보고, 봉사나 일을 통해 성찰하곤 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처럼 청소년들도 살면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여행 속에서 나는 나다움을 찾아가는 동행자이자, 내가 살아오면서 받아온 환대와 고민을 나누면서 각자 새로운 나의 길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오아시스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내 삶의 구경꾼에서 주인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며 살아간다.

작가의 이전글다꿈에서 청소년을 만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