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통해 얻은 긍정적인 변화

길위의청년학교 6기 김태균

by 길위의청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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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알기 어려운 사람, 하지만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다. 때때로 가장 멀기도 하고 한없이 가까운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다.


나의 과거를 잠깐 들춰보자면 아팠던 기억이 많았다.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남들과 다른 외형, 즉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는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 너무 납득이 잘 되었기에 슬펐다.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웠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특히 새 학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날에는 설레는 감정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당시에 어린 친구들은 나의 사정을 배려해줄 만큼 성숙하지 않았던,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을 만나면 나를 빤히 쳐다본 후 “눈이 이상해요.”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배려심이 깊은 친구들을 만나면 나와 어느 정도 친분을 쌓고 내가 스스로 이야기해주길 기다린다. 후자의 경우의 친구들을 만나면 정말 고맙지만 두 경우 모두 여전히 낯선 상황이다.


다시 나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면 누구나 다하는 생각일 수 있겠지만 나는 운동을 잘했다. 특히 야구, 배드민턴 등 몇몇 종목에선 내가 또래 친구들보다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야구선수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꽤 꿈을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흘러갔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서 처음 가진 꿈인 ‘야구선수’ 역시 부모님과 깊은 고민 끝에 ‘장애’라는 결정적인 이유로 인해 내려놓았다. 이 역시 슬프지만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었는데 부모님의 “성공한 야구선수 중 장애를 가진 사람이 누가 있어?” 라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 분위기는 개인적으로 “잘 안 풀리는 사람은 세상 탓을 한다.”라는 어구가 자주 표현될 만큼 사회문제에 대해 앞서 언급한 잘 안 풀리는 사람, 즉 ‘약자’를 원인으로 여기는 차가운 분위기라고 느껴진다. 공감되는 어구이지만 마냥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은 살아가면서 ‘희망’보다는 ‘절망’에 익숙한 환경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자신의 역량이 원인이 아닌 환경, 상황이 원인이 되어 큰 절망으로 다가왔을 가능성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나 역시 ‘꿈’에 대한 절망을 경험한 후 꽤 오랜 시간 많은 어른들이 “꿈을 가져야 한다” 라는 조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사실 반박하고 싶었다. 꿈이라는게 그렇게 말처럼 쉽게 가져지는 거면 진작 다른 꿈을 꾸고 있지 않겠냐고, 쉽게 이야기 하지 말라고. 그래서인지 나는 반항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고 중학교 시절엔 “세상이 참 부질없다” 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흔히 말하는 ‘중2병’,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냈다.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고, 학교에서는 학급 학우들의 공부 분위기를 흩트리고 선생님들에게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소위 ‘골칫덩어리’었다. 길었던 방황의 끝을 냈던 것은 나의 ‘화가 많은 삶’에 질렸고 타인에게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을 주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 스스로 대한 실망을 하게 되었으며 결정적으로 나를 계속해서 바른길로 인도해준 ‘어른들’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박선영 담임선생님과 광주 YMCA 청소년 심리상담 선생님이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방황을 할 당시마다 질타하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다. 그로 인해 나는 역시 받은 사랑에 대해 보답해주고 싶고 더이상 선생님에게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점차 변할 수 있었다.


이후 점차 변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진 나는 ‘YMCA’에서 상담을 진행하였고 그곳에서 만난 청소년 심리상담 선생님과 매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오늘 하루는 어때?”, “학교생활은 어때?”, “요즘 고민은 있니? 등 굉장히 사소하면서도 내 중심적인 이야기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재밌고 유쾌하며 타인을 잘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이라며 자주 나의 장점을 언급해주셨고 그로 인해 스스로 단점보다 장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려고 했다. 또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응어리를 풀며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 시기를 통해 나는 정확한 직종, 직업까지 구체화한 목표는 아니지만 앞선 이들과 같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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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존재


나에게 ‘청소년’이란 가까이하고 싶지 않고 최대한 멀어지고 싶은 ‘불편한 존재’이었다. 대학교 입학 후 ‘청소년 복지’를 공부할 당시에도, 청소년과 함께하는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당시에도, 그 삶을 희망하는 용준이를 만났을 당시에도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그들의 삶을 응원하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앞선 이야기로부터 유추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청소년은 ‘두려운 존재’이었다. 참 순수한 얼굴로 정말 궁금한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거나, “저건 뭐지?”라는 눈빛을 보내오는 상황은 나에겐 공포 스릴러 영화를 보는듯한,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을 겪게 해주는 존재, 하지만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경우보다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는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뭐든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오랜 시간을 거쳐 지나온 경험을 통해 내 관점, 가치관, 생각들은 변해가기 시작했고 청소년에 대한 인식 역시 그중 하나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을 경험하기도 했고 대외활동을 하면서 만난 청소년과 좋은 기억과 동시에 그들에 대한 인식을 변하게 했다.


물론 그 친구들 역시 나를 신기하듯 처음에는 쳐다보긴 했으나 이후 나를 너무 좋아해 주었고 실습,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시기가 오면 몇몇은 눈물을 보이기도 해 나 역시 그들과 헤어짐을 아쉬워했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실습했던 지역아동센터를 다녀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쑥쑥 성장해있는 친구들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서 “이런 맛에 활동가, 선생님들이 힘을 내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나에게 청소년이란 이젠 불편한 존재가 아닌 가치관, 생각 등 언제나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도움을 준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미로의 끝


나는 청년기의 과업 달성 목록 중 하나인 ‘취업’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고 싶었는데 이 과정에서 역시 고민이 많아 지금까지 길어졌다. 현재는 일반행정공무원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사실 과거에는 “누구나 다하는 게 공무원”, 이라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고 스스로 공무원을 하는 것은 개성이 없다고 희망하지 않았는데 2020년 겨울 ‘풍남동 동사무소’에서 코로나 2차 재난지원금 관련 업무를 경험한 이후 생각에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재난지원금은 대상자를 판별하는 과정이 꽤 복잡했다. 그 결과로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온 사람들은 복잡한 과정으로 인해 포기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어느 날 말씀을 잘못하시는 할머니가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오셨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나머지 신청하는 과정은 할머니에게는 더욱 벅찬 과정이었기에 포기하시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쓸쓸한 할머니의 미소를 보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어려운 과정이었으나 할머니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감사하다며 ‘사탕’을 주셨고 그 자리에서 울컥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던 뿌듯하고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그 당시의 좋은 과정과 기억은 ‘공무원’이라는 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직업은 역할을 권리를 부여받아 내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어떤 길을 걷든, 직업을 갖든 내 목표는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 도움을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기에 훗날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어 목표를 이루는 나를 꿈꾼다. 또 여러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긍정적인 변화를 기억한다. 앞선 변화와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다양한 경험과 선순환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기약하며 글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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