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있게 나만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길위의청년학교 5기 하태호

by 길위의청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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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그 시절 나는 막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이었다. 스무살이 되고 대학에만 가면 입시지옥에서 탈출해서 여자친구도 사귀고 한 손으로 운전도 하면서 친구들과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세상 모든 이치에 대해 그럴듯하게 대화할 줄 알았던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이었다. 자유롭게 캠퍼스를 누비고 잔디밭에 앉아 기타를 치며 낭만을 노래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대학은 공부를 별로 안 할 것이란 안일한 생각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대학교 1학년이 아니라 고등학교 4학년이라고 불려야 할 것 같다.


산산이 부서진 내 상상과 다른 나의 현실은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여기에 왜 앉아있는 것인지,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인지, 이딴 걸 배워서 뭐 먹고 살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와 다른 수업 형태, 강의실의 이동, 공강시간의 어색함 외에도 신입생환영회, MT, 학과 모임 등 대학에서의 모든 것이 억지스러웠다.


대학에서 배우는 과목들은 전혀 이해되지 않았음에도 나와는 상관없이 수업이 진행되었고 레포트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교수님과의 관계는 어디까지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각지에서 모인 사람들과 하루아침에 친구가 되어버리는 것에 적응하지 못했는데 가장 심각했던 것은 학과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먹지 못하는 술을 마시는 순간이었다. ‘토하고 마시고 토하고’라고 불리는 토마토를 매일 밤 만들어냈다.


더는 안 되겠다며 자퇴를 고민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고 현실 도피의 목적이 있기도 했다. 그러다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의 권유로 여름방학에 장애인 선교캠프를 떠나게 되었다. 장애인을 실제로 본 적도 없고 선교캠프 자체도 어색했지만 캠프 장소가 제주도였다. 스무살이 될 때까지 비행기를 한반도 타본 적 없던 나는 장소의 특수성 때문에 비행기를 타보고 싶어서, 제주도 여행의 기회를 놓치기 싫다는 단순한 이유로 캠프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장애인 1명과 비장애인 1명이 짝꿍이 되어 움직이는 2박 3일의 캠프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내 짝꿍은 나보다 20살이나 많은 지체장애인이었는데 얼굴을 제외한 모든 기능이 마비되어 있어 내가 그분의 손과 발이 되어야 했다. 이동을 돕고 밥을 먹여드리고 세면과 잠자리 등 모든 순간 내 도움이 필요한 분이었다. 제주도의 관광지를 여럿 다녀왔지만 기억에 남지 않았고 취침 시간만 기다리며 캠프를 보내기 바빴다. 힘겹고 고된 2박 3일간의 일정은 그렇게 이어졌다.


그리고 기다리던 캠프 종료의 순간 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짝꿍 형님이 내게 감사하다고 표시했는데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고 그것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내 작은 도움이 누군가에겐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체력의 고갈과 반비례하는 삶의 경험을 마주하는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놀라웠다.


그 놀라운 순간 이후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장애인 봉사활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은 여름방학을 봉사와 함께했고 2학기에는 보다 다양한 분야의 봉사활동을 경험하려 애썼다. 수업이 없는 날을 일부러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러 다녔고 활동의 범위도 점차 넓혀갔다. 처음 캠프로 인연을 맺었던 장애인선교단을 시작으로 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관을 넘어 아동과 청소년 분야까지 활동을 찾아다녔다. 가능한 많은 사람을 돕고 싶었다. 그게 나를 가치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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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그 무렵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바로 ‘god의 길’이었다. 보컬의 음색도 좋았고 차분하고 담담한 곡의 리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가사가 내 삶을 함께 고민해주고 공감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지속해서 하고 있던 봉사활동과는 달리 삶의 진로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었다. 가사의 내용처럼 다른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 것 같았는데 나만 나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무엇보다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상당했다.


그 두려움 속에서 기존의 재학 중이던 건축학과를 계속 다니고 싶지 않았다. 대신 봉사활동에 대한 재미 덕분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고민은 안고 있었다.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방법은 그 당시 크게 세 가지였는데 그건 바로 재수와 편입, 전과였다.


재수와 편입을 하기에는 새로 1년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 1년 뒤처지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고민하다가 전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사회복지학부 내에 노인복지학과와 청소년학과가 있었고 당장 전과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전과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을 넘어서야 하는지, 학점은 최소 어느 정도여야 하고, 전과생의 전원은 몇 명이나 가능한지 등에 대해서 차근히 알아보고 준비해나갔다.


2학기를 마치고 난 이후 부모님께 상황을 알리고 승낙을 받은 이후 전과 신청을 했다. 노인복지와 청소년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는 청소년을 만날 때마다 더 큰 에너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청소년학과로 결정했고 결과는 감사하게도 성공! 건축학과생이 청소년학과생이 되는 순간이었다.


전과생으로 시작한 대학 2학년은 1학년 때와는 180도 다른 삶을 살았다. 억지가 아닌 스스로 선택한 길이였기에 때문이다. 같은 학번 동기들보다 1년이나 늦은 배움이었지만 강의 듣는 게 재미있었고, 공부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교수님께 질문하거나 도서관을 찾아 나섰다. 청소년의 발달심리, 청소년지도, 청소년정책 등을 배우면서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많아졌고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실제를 발견하려 노력했다. 급기야 1년 늦게 시작한 학과 공부였음에도 2학년 2학기에는 과탑을 하며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나만의 길을 만들어보겠다며 도전했던 전과가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음이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대학 4학년, 난 진심 최선을 다해 배우고 익혔다. 하지만 졸업이 다가오자 또다시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었다. 학과의 전공을 살린 청소년 관련 기관 종사자로 살아가야 할지, 아니면 아주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지 고민이 됐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대학 졸업하면 중소기업을 소개해주겠다는 분도 계셨고 공무원을 준비해보라는 분도 계셨으며 선교단체를 통해 선교사의 길을 가는 건 어떻겠냐고 제의하시는 분도 계셨다. 청소년학을 공부했는데 청소년과 함께 살아가겠다며 나의 길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을 땐 창피했다. 그렇게 또다시 대학 신입 때처럼 ‘god의 길’을 들으며 진로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청소년지도사 채용공고문을 확인하곤 마치 명량해전의 이순신 장군처럼 배수의 진을 치기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더 좋은 이력서를 작성하려고 노력했고 모의 면접시험을 준비해서 예상 질문의 답을 달아보기도 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을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스스로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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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그렇게 15년 전에 입사한 청소년기관에서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돌아보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 나는 과거의 나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선택해준 그때의 내가 고맙다.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최근 내가 있는 일동청소년문화의집의 창업 특강을 진행한 청년창업가가 참가 청소년에게 던진 질문이다. 좋은 질문이라 생각해서 나도 그에 대한 답을 달아보았다. 과연 나는 지금의 일을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잘하고 있는가. 지칠 때도 있고 잘하는 것이 자기만족이라면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지만 적어도 ‘오랜 시간 즐기며 하는 일'이라는 단어에는 어느 정도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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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늘 ”자전하면서 공전하는 삶을 살아가자“는 좌우명에 맞게 살아가려 애써왔다. 스스로 더 나아가지기 위해 노력했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나는 늘 길 위에서 서서 고민했다. 이게 정말 나의 길인지,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향해 가는지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삶을 살다 돌아보니 난 나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길인지 모르고 걸었더니 길이었고 뒤를 돌아보니 그것이 나의 삶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또 길 위에 서서 고민할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다. 그 몸부림이 지나고 나면 나만의 길이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것을 보며 이렇게 말하겠다. 자신 있게 나만의 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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