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작아서 나는 행복해, 세상 모든 것을 우러러볼 수 있으니까
살다 보면 정말 억울할 때가 많다.
대부분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평생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나의 작은 키.
이건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로서도 정말 억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키 이야기를 꺼내며 나의 가슴을 후벼 판다.
그때마다 겉으로는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하지만
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본능적으로 화제를 돌린다. 정말 본능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면 다들 신나게 물고 뜯을까 봐,
애써 웃음을 지으며 넘겨보지만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신이 나서 키 드립을 친다.
속상하고 억울하다고 어쩌겠는가
애초에 이렇게 태어난 것을.
한창 키 클 무렵 게임에 빠져 컴퓨터 자판만 두들긴 내 잘못이다.
미친 듯이 공부하면 시험 점수가 오르는 것처럼,
이를 악물고 운동하면 체력이 좋아지는 것처럼,
키라는 녀석도 노력해서 자라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그랬다면 키로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아니,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들 공부는 안 해도 키 크려는 노력만큼은 미친 듯이 했을 테니까.
키가 작으면 서러운 순간이 정말 많다.
가끔 누군가가 높은 곳에 있는 것을 꺼내려다 손이 닿질 않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서로가 민망해서 시선을 회피하게 된다.
나도 너무나 잘 안다.
그 순간 내가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는 사실을.
사실 이보다 더 굴욕적인 것은,
강남 한복판을 걸어 다니다 보면은 교복을 입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학생들을 우러러봐야 할 때다.
요새 아이들은 뭘 먹고 자란 것인지 다들 정말 크다.
이럴 때 문득, 노래 가사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키도 작고 못생겼는데 가진 것도 하나 없는데
키가 작아서 나는 행복해
세상 모든 것을 우러러볼 수 있으니까
나는 행복해 오~!
그렇다. 바로 하하의 <키 작은 꼬마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나는 정말 대단하게 겸손한 사람이다
세상 모든 것을 우러러볼 수 있으니까.
항상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도 우러러보고 있으니. 하하.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키를 땅에서부터 재면 작지만, 하늘에서부터 재면 가장 크다"
굳이 왜 하늘에서 재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그럭저럭 맞는 말이긴 하다.
돌이켜보면 키가 작아서 유리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의경 시절 180cm 넘는 사람들만 뽑혀가는 1기동단을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높은 물건만 보면 꺼내 달라고 귀찮게 말 거는 사람도 없었고,
어디 지나다닐 때 머리를 굳이 숙일 필요도 없었고,
약간 과장 섞어서 말하면 아직 내가 학생인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작은 키 덕분에.
이렇게 보니,
나름 작은 키를 가지고도 살만한 세상이다
농담처럼 이야긴 했지만 하하의 말마따나
앞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우러러봐야겠다
이렇게라도 위안을 삼지 않으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 것만 같다.
나와, 나의 동지들이.
그러니 제발 다들 키 작은 사람 보고 놀리지 말자.
참고로 키가 작지만 멋진 별명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가수 보아씨,
'영원한 어린 왕자'라는 별명을 가진 가수 이승환 씨,
'오척단구 거한'이라는 별명을 가진 채현국 선생님,
그리고
세상을 멋지게 바꾸고 싶어하는 그냥 '키 작은 꼬마' 황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