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70%가 넘는 학생들을 명문대로 보내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웰튼 고등학교.
어느 날, 그 보수적인 학교에 키팅이라는 교사가 부임해온다.
그는 입시 위주 교육이라는 틀에 박힌 기성의 가치를 모조리 해체시키며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키팅은 고정관념에 갇힌 제자들을 위해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시를 통해 각자의 삶에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도와주며
참된 길로 인도해준다.
새로운 교육을 통해 제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키팅은
보수적 전통을 지키려는 웰튼고 측과 이를 따르려는 학생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묵묵히 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러던 어느 날,
본인과 부모의 꿈 사이에서 끝없이 대립하던 한 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학교 측은 마침 눈엣가시던 키팅에게 모든 책임을 떠안기며 결국 학교에서 쫓아내는데,
그의 마지막 날 그를 따르던 많은 학생들은 책상 위로 올라가 이렇게 외친다.
"오 캡틴, 마이 캡틴"
그렇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막을 내린다.
자신의 결정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학생들의 삶,
죽은 시인들을 부활시키며 스스로의 꿈을 찾도록 도와주는 키팅 교사.
영화 속 키팅의 주옥같은 대사들은
타인의 시선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사람들,
전통과 규율만을 최고로 여기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전통, 명예, 규율만을 최고로 여기던
획일적인 교육제도와 사회 인식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이로부터 반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2018년
우리는 여전히 처참한 현실을 직면하고 있다.
좋은 대학만을 강요당하는 학생들과
진짜 꿈을 좇으면 "현실적으로 생각해" 따위 충고만 듣는 청년들과
자신만의 걸음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방황하는 우리들의 현실.
소신을 잃어버린 죽은 시민의 사회
소수 재벌에게 멸시당하고,
일부 기득권에게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성평등을 주장하다가는 오히려 욕을 먹는 우리들의 현실.
정의를 잃어버린 죽은 시민의 사회
지난 주말, 나는 이런 처참한 사회를 제대로 마주했다.
길거리를 점령한 채 박근혜 석방을 외쳐대던 태극 부대들.
나는 이들을 보란 듯이 비웃으며 지나가던 중,
어떤 할아버지에게 불려가 다짜고짜 혼났다.
처음엔 그와 언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져가는 딱한 마음.
정의를 잃은 채, 소신을 잃은 채
자신만의 걸음을 잊어버린 채 여기저기 불려 다녔을 할아버지, 그 세력들.
고작 돈 몇 푼에 모든 걸 잃어버린 죽은 시민들의 사회,
그 추악한 민낯을 마주한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소신과 정의를 잃고 죽어가는 시민들이 많다.
이를 보며 기존의 전통을 지키던 웰튼고처럼 눈과 귀를 막고 살 것인가,
아니면 잘못된 부조리를 바로 잡아가던 캡틴처럼 희망을 줄 것인가.
각자의 판단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있다.
성 차별이 사라지고
소수 재벌이 다수 시민을 지배하지 못하는 평등한 사회
소신과 정의를 되찾은 깨어있는 사회.
죽은 시민의 사회에서 깨어나
시민 모두가 자신만의 걸음을 되찾고,
소신껏 살아가는 사회를 나는 오늘도 꿈꿔본다.
영화 속 캡틴도 비록 학교에서 쫓겨났지만,
학교에는 정의로운 학생들이 남아있었듯이
사회 속 캡틴들이 언젠가 사라질지라도,
점차 깨어난 시민들이 그 빈자리를 채울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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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아름다운 배우,
로빈 윌리엄스를 애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