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N개의 공론장⑮-②] 공론장 기록
공론장 일자: 2020년 11월 26일
장소 : 망원동 카페 홈즈, 온라인 병행
주최 : 맨땅에 초로록 · 청년허브
기록 : 금혜지
정세랑 작가가 "행복해지려면 시선을 멀리 던져야 한다." 라고 한 말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픽션을 읽고, 지금이 아닌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넓혀가는 이유는 현실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은 세계를 지향하기 위함이기도 하지요. <맨땅에 초로록>에서 주최하고 <막막한 독서 모임(이하 ‘막독')>과 함께한 두 번째 공론장에서는 SF 소설을 화두로 기후 위기라는 현실과 연결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6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공론장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1부 발제 : 천선란, 정세랑 소설집 독서 모임을 바탕으로(시로)
막연한 독서모임, '막독'을 운영 중인 시로님이 독서모임의 기록을 공유하며 발제를 진행했습니다. 기존의 통념, 관성을 벗어나 새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SF 소설을 제시하며 천선란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에 수록된 <사막으로>, <레시>, <어떤 물질의 사랑>, <두하나>, <검은색의 가면을 쓴 새>의 일부와 소설의 배경을 공유했습니다. 시로 님의 발제문은 여기서 확인해주세요.
1부 공론 : 각자 소설에 대한 감상을 간단히 공유해볼까요.
A: 한국의 여성 SF 작가의 작품에 대해 항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특히 올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천선란 작가님 작품을 하게 돼서 너무 좋았다. 표제작이 인상적이었다. 인격이 있거나 조금이라도 생각을 할 수 있는 객체를 존재라고 표현해왔는데 물질이라고 표현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또 SF의 틀에서는 물질이 사랑과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B: 소재 자체는 새롭고 신선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책이 주는 울림이 컸다. <레시>, <어떤 물질의 사랑>, <두하나>의 경우 슬프게 끝나지 않는데도 왜 이렇게 슬픈 감정이 들까 생각해봤다. 주인공들의 쓸쓸함, 외로움, 억울함에 이입해서 그들이 한 줄기 희망을 가지게 된 게 애틋하게 느껴졌다. <디스토피아 대담회>에서도 작가님이 환경에 가지는 진정성을 보고 그레타 툰베리처럼 ‘이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C: 힘들 때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가고 싶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런 상상의 세계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SF인 것 같다. 그래서 힘든 요즘 읽기에 좋았다.
D: <천 개의 파랑>에서 작가님의 동물에 대한 애정이나 소수자에 대한 감각을 느꼈는데, 이번 소설집에서도 묻어났다. 대담을 보며 내가 디스토피아를 인류에 국한지어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돼서 좋다. 어떻게 보면 동물들에게는 스스로 초래하지 않은 위기일 수도 있다. 인류만 망하지 않는다는 생각,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소설이 해준 것 같다.
E: <검은 가면을 쓴 새>에서 환경 보호 메시지를 담은 컵홀더를 일회용 컵과 함께 서빙하는 묘사가 나온다. 환경 운동을 한다면서 계속 텀블러와 에코백을 만들어내는 현실을 잘 담은 것 같아서 섬세하다고 느꼈다. <사막으로>는 읽으면서 오늘날 코로나 국면의 우리를 보는 것 같았다. 사막을 한 번도 가보지 않고 그 사막의 무엇을 꿈꾸는 것처럼, 우리도 앞으로 가보지 않은 미래만 꿈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F: ‘지구온난화'라고 하면 ‘내가 뭘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집중을 잘하지 않게 된다. 소설로 접근하니 감성적으로 다가오면서 경각심이 들었다. 지구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참 설득력 있고 편하게 얘기를 해줘서 감사한 책이다. 일상적인 육식, 길고양이 등에서 생각하게 됐다.
G: 유명한 외국 작가들의 SF를 읽을 때 이해가 벅찬 측면이 있었다. 천선란 소설은 편안하게 이입하며 읽었다. 주인공의 상황이 나와는 아주 멀리 떨어진 외계인, 우주비행사, 좀비가 출현한 지구의 전사여도 감정 이입이 잘 됐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 입장에서, 다음 세대에 무언가를 이어준다는 감각과 여성들의 유대가 와 닿았다. 서로 이해하는 사이가 있다면 망해가는 지구에서도 대충 행복하게는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H: <디스토피아 대담>에서 정소연 작가가 이야기한 ‘존엄한 멸망’이 책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다 누리면서, 지구를 오염시키며 살아도 되는 걸까?’ 그런 반성이 들었다. ‘육식을 꼭 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배경이 한국이라는 점도 이입을 하기 쉬워서 좋았다.
2부 공론 : 발제와 관련된 이야기
Q1.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A: <어떤 물질의 사랑>에서 “뭐가 그렇게 중요해? 지구의 절반은 외계인이에요. 모두 다 사람인 척하고 있을 뿐이라고요”를 읽고 존재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존재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모두가 지구인이라고 단정할 수 있나? 사람들을 구분하는 경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였다. 외계 생명체가 소수자성을 대변하기도 한다고 느껴졌다.
B: 소설이 전체적으로 다른 존재를 대할 때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SF적인 상상력이 덧대어지니까 타인의 삶에 더해서 사람이 아닌 존재로 대상이 확장된다. ‘레시’라는 존재나 <어떤 물질의 사랑>의 엄마나 다른 연인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정상성’에서 벗어났다고 쉽게 타자화하거나 대상화하지 않는 태도가 일관적으로 묻어났다.
Q2. 환경 문제 해결은 공감에서 시작된다
A: ‘환경주의 독재'라는 개념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위기를 모두가 공감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B: <검은색 가면을 쓴 새>의 마지막 부분이 소름 끼치게 와 닿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텀블러와 에코백 구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C: 제품 만드는 일을 하는데 고객사들이 친환경 소재를 요청하기도 한다. 환경에 관심이 있으시냐 물어보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것에 관심이 있고 원하기 때문에 수요에 맞춰야 되니까 한다고 대답한다. 이런 방향으로 변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걸 느꼈다. 모두가 관심이 없더라도 팀플레이가 가능하다.
D: 흐름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공감은 감정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충분한 지식에 기반해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 지식에 바탕한 연대도 가능하지만 즉각적으로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지구에는 다채롭고 신비로운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데 그들의 멸종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적다. 이런 문제가 멀리 있지 않고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감각하는 것도 문제를 푸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Q3. 존엄한 종말에 대한 상상력
A: 입버릇처럼 ‘지구 종말을 꿈꾼다'라고 말하는데 그 방식이나 과정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빨리 망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존엄을 지키며 종말을 맞이할 것인지 고민하게 됐다. 존엄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B: 디스토피아를 쓰는 이유는 결국엔 살고 싶은 미래가 있기 때문이란 생각을 했다. ‘이런 미래만은 안 돼'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디스토피아 소설이 가능하지 않을까. 각자가 기다리고 낙관하는 세계를 조각조각 모으다 보면 모자이크처럼 우리가 바라는 긍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의 저자 호프 자런은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책이 담고 있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훨씬 더 강하게 믿게 되었다. 문제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능력 어딘가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숨어 있으니까.”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그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공론장에서 나눈 이야기가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더 불러모으길 바랍니다.
(언제까지 지금처럼 살 수 있을까 리뷰 끝)
¹ 한겨레21, <21이 사랑한 작가 정세랑① 행복하려면 시선을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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