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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허브 Dec 21. 2022

‘직업’으로서의 일과 ‘활동’으로서의 일 사이

<틈 사이> 팀 인터뷰

2022년 청년허브에서는 청년들이 변화하는 기술, 기후, 노동 환경을 자기 삶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주도적 일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문제해결 솔루션랩>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조직 내에서 마주하는 난제를 공동의 노력을 통해 해결 과정을 탐색하여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실험실이 되고자 하였는데요. 조직 내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어 <문제해결 솔루션랩>의 문을 두드린 7개 팀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in연구소의 황세원 대표님이 한 팀 한 팀을 만나 본 인터뷰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문래창작촌을 찾은 건 거의 10년만이었다. 골목골목 바쁘게 돌아가는 공업사들 사이로 작은 카페, 수제 공방, 디자인 회사 등이 들어와 있는 모습이 그 때도 신기했는데, 그 사이에 더 많이 변해 있었다. 카페 옆에 카페, 피자집 옆에 맥주집이 자리잡은 풍경 속에서 공업사들은 골목의 개성을 돋우는 존재들로 보일 지경이었다. 


아직은 날씨가 포근했던 11월 17일 오후, 이 골목의 한 카페에서 ‘틈 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20대 청년 세 명을 만났다. 청년허브 ‘문제해결 솔루션랩’에 참여한 7개 팀 중 하나인 ‘틈 사이’는 생긴지 반 년이 채 안 된 비영리 임의단체다. 청년들의 참여를 통해 영등포 지역 현안과 이슈를 논의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https://youtu.be/_FPbz7lh5qU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2022 문제해결 솔루션랩 <틈 사이>



영등포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청년단체 <틈 사이>에서 활동하는 주홍비, 최지원, 안효준씨(왼쪽부터)

20대 후반 주홍비, 최지원, 안효준 세 사람은 ‘지역’과 ‘정책’을 교집합으로 하는 여러 단체 활동 중에 만난 사이다. 공통점은 서울 영등포에 산다는 것이다. 대학생인 효준씨는 여의도에서 나고 자란 영등포 토박이다. 홍비씨는 영등포동에 살고 양평동에 있는 IT 회사에 다닌다. 프리랜서 강사인 지원씨는 양천구의 한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와 장애인 재활상담사로 일할 때 도림동으로 이사왔다.  


셋이 함께 ‘틈 사이’를 만든 이유는 영등포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영등포 인구 중에서 15~39세 인구는 37%나 돼요. 여기는 일자리도 많고, 젊은 거주자들도 많죠. 그에 비해서 지역의 환경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청년들은 극히 적어요. 그러다 보니 영등포구의 100여 개 지역 사업 중에서 청년 사업은 단 한 개에 불과해요. 구의 관심이 적으니 청년 활동은 더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죠.”(안효준)


영등포에는 청년들이 참여할 지역 활동 기반이 거의 전무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세 사람은 어떻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겠다는 것일까? 사실 이들도 뾰족한 수는 없다.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지난 여름 한창 더울 때부터 세 사람은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청년 시선의 지역 정보를 담은 지도를 만들고, 지역 단위 모임들을 찾는 일을 해왔다.



이런 과정을 설명하는 세 사람의 표정에는 생기가 돌았지만,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이곳이 바로 ‘영등포’이기 때문이다. 여의도부터 대림동, 당산동부터 문래동까지 어디를 봐도 모두 다른 지역처럼 보이는, 서울 안에서도 유독 더 복잡하고 차이가 큰 지역이다. 


“지역의 여러 어르신, 선배님들 말씀 들어봐도 ‘영등포를 통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지만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차이조차도 이 지역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차이를 저희는 ‘틈’이라고 봤고, 그 사이를 메꾸는 활동을 우리가 해보자고 생각해서 ‘틈 사이’라고 단체 이름을 정한 거예요.”(주홍비)


기존에 큰 차이라고 느꼈던 것들이 청년들의 시선으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도 홍비씨는 덧붙였다. 또는 차이가 문제라고, 꼭 한계를 미리 지어놓을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여의도동, 영등포동, 도림동에 사는 세 청년이 그렇다고 말하니 갑자기 영등포 지역에 대한 인상이 다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여기 사니까, 사는 지역을 사랑하게 되잖아요?
우리가 사는 곳이 더 좋아지기를 바라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어떻게 의기투합한 것일까? 여러 단체 활동을 통해 아는 사이이기는 했지만 그리 친하지는 않았다는데, 홍비씨와 지원씨가 영등포로 이사온 뒤로 “가까이 사니까” 셋이 자주 만나게 됐다고. 공통의 관심이 하필 영등포라는 지역으로 향하게 된 이유에 대해 홍비씨는 시원스럽게 답했다.


“여기 사니까, 사는 지역을 사랑하게 되잖아요? 우리가 사는 곳이 더 좋아지기를 바라게 되는 거죠.”

셋의 공통적 성향이 영향을 주기는 했다. 정책에 관심이 많고, 사회 참여적인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 장애인재활상담사로 일하면서 현장의 어려움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정책의 한계를 절감했어요. 조직 안에서 한 명의 직원으로 일할 때는 그런 큰 문제에는 접근할 수 없고, 동료들과 힘든 점을 토로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최지원)


지원씨는 이런 답답함으로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도 3년째 활동 중인데, 좀 더 작은 지역 단위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느껴왔다. 그러던 중에 홍비, 효준씨도 같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지원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3개월 전부터 프리랜서 강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틈 사이’ 활동에 시간을 내기에 자유로운 편이다. 



효준씨는 아직 대학생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얼마나 바쁜지 생각하면 ‘시간이 많겠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이 활동을 할 만한 시간은 있다”고 했다. 행정학과 산업공학을 전공하는 효준씨는 취업이 아니라 창직을 계획 중이다. 그러다 보니 ‘틈 사이’ 활동을 통해서 수익모델을 찾는 데도 관심이 있다. 


“시작은 저희 셋이 했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야 활동에도 힘이 붙겠죠. 그러려면 단체를 유지하고 활동을 펼치기 위한 자원이 있어야 해요. 수익을 낼 필요가 있는 거죠.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장소 기반도 있어야 하고요. 예를 들면 독립서점을 열어서 모임 공간을 운영하는 식으로요. 지금은 이런 저런 구상을 하고 있는 단계예요.”(안효준)


그에 비해 홍비씨는 소득을 버는 직업으로서의 일과 지역 활동을 구분해서 병행하고자 하는 쪽이다. 의미있는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소득을 벌 수단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주의다. 현재 직장이 비교적 ‘워라밸’을 보장해주는 곳이어서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각자 자기 몫의 일과 학업을 감당하면서 지역 활동을 ‘밑바닥부터’ 만들어 간다는 것이 녹록한 일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존재감이 생길수록 일정들도 늘어나고 바빠지는 것이 아직은 즐겁기만 한 단계다.


현재 시점에서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이 활동의 체계를 세우고, 영향력을 확대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번에 서울시 청년허브의 ‘문제해결 솔루션랩’에서 도움을 받은 것도 이 부분이다. 다른 지역의 비슷한 청년 단체들과 영등포지역의 다른 세대 및 형태의 주요 단체들을 인터뷰하는 일, 그리고 지역 청년들의 지역 문제 인식 데이터를 모으는 일을 솔루션맵 지원을 통해서 지난 몇 달간 해왔다.홍비씨는 이 과정을 통해서 ‘틈 사이’를 메꾼다는 의미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틈이라는 것은 세대차이, 계층이나 계급의 차이에도 있겠지만 가장 크게는 생각의 차이에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뻘인 지역 단체 분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해봤는데, 당산동에 있는 포차에 50~60대는 못 들어간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세대에게도 그런 불편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어요. 한 지역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소통이 없구나, 이런 점을 요즘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을 때도 홍비씨는 “지역 안에서 소통이 더 일어나게 하는 일을 저부터 다니면서 조금씩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지원씨는 “거대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부담 없이 시도하고 해결해 볼 수 있는 작은 의제들부터, 소소한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직장 다니느라 바쁜 청년들도 어떻게든, 많은 시간 아니더라도 같이 활동할 수 있도록 방법을 만들고 싶다”는 효준씨는 같이 하고 싶은 사람 연락 달라는 것이냐고 묻자 웃으며 “맞다”고 답했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두 시간 가까이 훌쩍 지나갔다. 카페 밖으로 나오니 늦은 오후다.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니 세 사람은 평소 모습인 양 웃고 떠들며 골목길 풍경에 금방 녹아들었다.

그 주변으로 저녁 장사를 시작하는 식당들, 매대를 정리하는 공방, 기계가 시끄럽게 돌아가는 공업소들이 얽혀 있다. 문득 고개를 드니 저 멀리 높게 치솟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한 프레임 안에서도 지극히 복잡 다양한 곳, 영등포라는 지역이 쉽지 않아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여기 사니까, 이 지역을 사랑하게 되잖아요?”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니 뭐든 못할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라는 연구 주제를 가지고, 일로써 연구를 하고 있는 독립 연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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