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을 내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다수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때, 그에 대한 반박을 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심지어 내 의견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내 의견에 대한 근거들을 머릿속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다가 그 반박할 타이밍을 놓쳐버려 다음 화제로 넘어간 적도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는 왜 상대방의 의견에 바로 반박하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반박하지 못했다.
첫 번째로 나를 향해 쏟아지는 다수의 반대의견에 나는 나 혼자 싸울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의견마다 일일이 반박해야 하는 것이 번거로웠다.
하지만 지금 이 두 가지 이유를 간단하게 하나로 통합해서 말하면 그냥 ‘나에게 피해가 갈까봐’이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가는 상황이 올까봐 그 당시 나또한 침묵을 지켰고, 이러한 나의 상황은 딱 ‘사냥꾼이 될 수 없으면 적어도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행동’이었다.
우리가 스스로의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 어릴 때부터 소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의 우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좋아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학교 놀이를 할 때에 비중이 큰 선생님 역할을 하고 싶어 했고, 유치원 재롱 잔치 때에는 주인공 역할을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심지어 신생아 때에도 부모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울어서 부모를 불러 원하는 것을 얻고는 했다. 그 당시에는 주변의 관심을 받으면 항상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성장과 동시에 크고 작은 사회들을 거치가면서 관심을 받는 것보다 오히려 침묵을 지키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알게 모르게 학습했다. 그리고 그 학습법을 우리는 지금도 요긴하게 쓰고는 한다. 나랑 의견이 달라도 나에게 피해가 안가기 위해서 침묵으로 다수의 의견에 묻어갈 때 말이다.
우리는 이것이 건강한 현상이 아닌 것을 알고, 인지는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말을 많이 하고 싶을 때에는 오히려 침묵을 지킨다. 왜냐하면 내가 사냥감이 되는 것보다는 그냥 다수의 사냥꾼이 되는 것이 마음은 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