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않아도 된다.

착함에 대한 다양한 정의

by youth in


착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항상 남들 눈치 보기 바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남들 눈치 보느라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참고 자제하며, 남들 눈치 보느라 내가 말하고 싶은 말들은 마음 깊은 곳 나만 듣고 볼 수 있는 마음의 쓰레기 통으로 던져버리고는 한다. 하지만 사실 다 같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남 눈치를 보고 사는 일은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오히려 이 사회에서 남 눈치 보지 않는 사람들은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처럼 계속 생각나고, 눈에 거슬리기까지 한다.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잘 따르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눈에 잘 튀지 않는 ‘착한’ 사람들과는 달리, 다른 이들의 입에 끊임없이 자주 오르내린다. 하지만 거기서 의문이 드는 점이 하나있다. 바로 ‘우리는 왜 꼭 착해야만 할까?’ 이다. 그리고 다르게 말하자면, ‘착하지 않은 사람’은 왜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나? 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자신만의 일이 있지만, 그것이 종종 주변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할까봐 말하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판단일 뿐이다. 막상 그것이 입 밖에 나온다면 주변에서 그것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지레 겁먹고 미리 자신의 판단에 의해 그것을 검열하고 판단해서 결국 실행하지 않는다. ‘착한 사람’으로 지내기 위하여 즉, 눈에 튀는 ‘착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을 피하고,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검열한 수많은 것들 중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의외의 반응을 받았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세상이 정해 놓은 ‘착한’ 틀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도, 착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 의견이 다른 것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을 그저 일차원적으로 ‘착하다.’라는 틀에서만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며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더 나아가 착함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알게 모르게 만들어서는 더욱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사회에서 우리를 ‘착한’울타리에 가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를 가둔 것은 사회가 아닌 나 스스로가 각자 자신을 ‘착함’의 울타리 속으로 몰아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제한하는 사람 하나하나가 모여 ‘착함’을 강요하는 사회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싶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위하는 행위는 착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착함은 절대적인가?

디자인에서 도덕은 필수적인가?

한 특정 디자인이 성공하면 그것은 착한 디자인인 될 수 있는가?

계획적 폐기에 대한 찬성과 반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