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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뷰 Jul 18. 2016

"유명해지고 싶은 게 아니에요"

[내친구의생애사⑤] 크리스, 외국인 배우 노동의 고충을 말하다

청년을 다루는 수많은 기사들,
틀 하나를 먼저 정해 놓고, 그 틀에 맞는 청년들을 찾아서 끼워맞추기 바쁩니다.
우리는 순서를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예전에는 '친구'이기만 했던 그를 '청년'으로 바라보며,
내 바로 옆에 있는 그 청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청년view가 만난 우리 시대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특별한 내 친구들의 생애사를 소개합니다.




좋아하는 음식 : 브라운라이스와 찐 야채를 곁들인 닭가슴살, 아메리칸 BBQ, 고등어구이

연관검색어: #연기 #한국 #촬영 #street art


28살, 크리스는 수업 시간에 적극적인 대학생이다. 외국인의 모습을 하고 거침없이 한국말로 발표하는 그의 모습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크리스에 대해서 더 알게 될수록, 그가 더 궁금해지게 된다. 그는 교환학생이 아닌 정규학생이고,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현재는 외국인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머리를 막 새로 하고 인터뷰에 왔다는 크리스, 그는 마치 이미 알던 사이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의사소통이 잘 될까하던 걱정은 그의 정확한 존댓말로 바로 해소되었다. "어렵겠지만 한국말로 열심히 해볼게요."


*기사에 사용된 크리스라는 이름은 인터뷰이의 가명입니다.



"그냥 해보고 싶었어요"


"미국에서 떠나기로 한 건 미국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그 때 너무 힘들어서 맥주 한 잔을 마지막으로 하고 딱 미련 없이 한국으로 왔어요."


크리스는 11명이나 되는 대가족에서 자랐지만, 그가 18살 때 아버지가 2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후 그가 한국으로 건너온 것은, 당시 만나고 있던 여자친구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살면서 우리말에 점차 익숙해졌고, 그때의 여자친구는 지금의 아내가 되었다.


원래 크리스는 요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대가족 안에서 누군가는 요리를 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란 터라 자연스럽게 직업도 그렇게 택하게 됐다. 16살 때부터 셰프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도 이태원에 있는 레스토랑과 미국 대사관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했지만, 얼마가 지난 후 그는 셰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요리를 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한국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게 힘들기도 했고요. 제 상사가 한국말을 못하는 미국인이었는데 그래서 제가 온갖 잡일까지 떠맡아야 했거든요."


셰프를 그만둔 후, 그는 외국인 배우로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되었다. 배우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직업이다. 크리스는 형제자매가 많아서 부모님의 관심을 받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어렸을 때는 자존감도 낮은 편이었다. 그런 이유로 크리스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었다. 한국에 와서 대학에 입학하기로 결정한 것도, 어려운 대학 공부를 하면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진짜 배우가 되어야지 하고 결심한 계기가 아주 특별한 것은 또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그냥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냥 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원래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크게 고민하지 않는 편이에요.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우선 해봐요. 해보면 알아요. 사람들은 '나도 ~가 될 수 있었어'라고 자주 말하잖아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도를 해봤어야 '될 수 있었어'죠.




인터뷰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


"왜 외국인은 주인공 친구가 될 수 없죠?"


"지금은 물론 자신감이 많습니다. 오디션도 많이 보고 맡아본 배역도 매우 많아요." 


그는 이러한 말을 수줍게 웃으면서 했지만, 크리스가 하는 말들을 통해 그가 외국인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고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외국인들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크리스는 여기에 대해 매우 할 말이 많다는 듯 서둘러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저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저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저도 사실 그 프로그램에 출연 제의를 받았었어요. 그런데 거절했어요. 왜냐하면 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대본을 읽기만 하는 건 싫었어요. 그건 제 진짜 모습이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저를 TV 속 캐릭터로 보기를 원하지 않아요. 사람 크리스로 먼저 봐주고 훌륭한 배우라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 유명해지고 싶었다면 저는 지금 아무 프로그램이나 출연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 목표는 훌륭한 배우이기 때문에 지금은 여러 배역을 맡아 연기 하는 것이 목표에요."


크리스는 자신이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아니라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그리고 자신의 확실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배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1년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단역까지 포함해 출연한 작품이 꽤 많다. 그는 자랑스러운 듯 자신이 출연한 작품의 제목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한국말로 연기한 영상들을 바로 핸드폰으로 찾아 보여주었다. 노력으로 이룬 결과들이라 그런지 더욱 작품들에 대한 애정이 많아 보였다.


"처음에는 방송사 사람들이 저한테 못생겼다고 했어요. 살도 빼야한다고 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외국인 배우를 하려면 잘생긴 외모를 가지는 것 보다 한국말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한국말 연기를 열심히 연습했더니 이제는 먼저 불러주더라고요."


이런 노력과 성취의 이면에는 당연히 외국인 배우로써의 고충도 자리하고 있다. 첫째로, 크리스는 외국인 배우들에게는 매번 '마피아, 교수, 여행객, 군인' 같은 한정된 역할만 주어지는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외국인인 크리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외국인과 한국인이 서로 절친한 친구인 상황을 많이 볼 수 있지만, TV에서 외국인 배우를 주인공이나 주인공 친구로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도 저는 백인이라 나은 편이에요. 동남아시아 계나 흑인들은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더 제한되어 있거든요."


둘째로, 크리스는 외국인 배우들이 처한 노동 조건에 대한 문제를 말했다. 그는 배역을 맡을 때 '사정이 어려워서 그래, 보수가 적어도 이해해줘'라는 말을 듣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배우 에이전트에서는 몇 대 몇으로 보수를 나누는지에 대한 계약서도 적지 않는 것이 관행이고, 에이전트가 주는 대로 받고 급여에 비해서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긴 것이 문제다. TV에 나오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많기 때문에,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항의를 하거나 현실을 개선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방송국에서는 언제든지 '말을 안 듣는' 외국인 배우는 다른 배우로 갈아치워버리면 그만이다. 크리스는 다른 외국인 배우들을 위해, 평균적인 근무시간과 보수를 정리해서 개인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이런 정보공유마저도 제한되는 것이 현실 상황이다. 배우 에이전트가 크리스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포스팅을 내리라고 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임금 문제랑 일하는 시간, 이건 정말 법적인 도움이 필요해요. 한국에도 점점 외국인 방송인이 많아지는 만큼 관련법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친구의생애사] 공통질문

1. 사람들이 너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어?

- 타인에게 영향을 준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유명한 사람이 아니고 배우이며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 착한 사람으로.

2. 너에게 완벽한 하루란 뭐야?

- 햇빛이 비치는 방에서 일어나서, 너무 덥지 않은 날 조깅을 한 후, 오디션 전화들이 걸려오고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는 하루입니다.

3. 오늘 인터뷰에 얼마나 솔직했다고 생각해?

- 100%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곤란한 질문들이 나오지 않아서 100% 솔직할 수 있었어요.


인터뷰이의 자화상

"인생에서 큰 목표가 언제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셰프에서 배우로 직업을 바꿀 때 그랬어요. 배우라는 큰 목표가 있고, 큰 목표를 위해 다른 작은 목표들을 세우는 거죠. 배우를 하고 싶은데 당장 먹고 사는 게 문제면 동시에 다른 일도 하고 이런..."


크리스는 노력파답게 올해를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워두었다. 일단은 외국인 배우들끼리 모여서 한국말로 연기하는 영상을 올리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예정이다. 배역은 영상마다 랜덤하게 정해질 예정이다. 이 채널을 운영하면서 크리스는 배우로서 한국말 연기 실력도 늘리고, 제작자로서는 외국인이 맡을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개발해볼 작정이다. 잠깐의 유명세를 원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배우로 자리 잡고 싶어 하는 크리스는 목표가 굳센 만큼 확신에 차 있었다.



청정넷-기자단 청년view [내친구의생애사] 인터뷰 연재
: 글/사진. 엄채린 기자 (suzaneom93@korea.ac.kr)
: 편집. 김선기 (fermata@goham20.com)
: 일러스트. 허지나 (raptyw@naver.com)
: 문의. 이성휘 (seoulyouth20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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