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구의생애사④] 칭따오에서 온 22살 중국인 친구의 감정노동 성장기
청년을 다루는 수많은 기사들,
틀 하나를 먼저 정해 놓고, 그 틀에 맞는 청년들을 찾아서 끼워맞추기 바쁩니다.
우리는 순서를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예전에는 '친구'이기만 했던 그를 '청년'으로 바라보며,
내 바로 옆에 있는 그 청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청년view가 만난 우리 시대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특별한 내 친구들의 생애사를 소개합니다.
*중국에서는 알바나 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힘든 경험을 비교할 수는 없고 그냥 ‘헬조선’이라는 단어, 상황에 얼마나 공감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언제든지 복잡한 명동 한복판에서 칭따오를 만났다. 그날 처음 만나는 사이었지만 인터뷰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뛰어온 칭따오는, 바쁘게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칭따오는 금세 차분하게 특유의 '외국어스러운' 악센트로 띄엄띄엄,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칭따오에게서 여느 한국의 청년들과 다를 것 없는 친숙함이 느껴졌다.
*칭따오는 칭따오에서 온 인터뷰이의 가명(!)입니다.
#중국 그리고 #집
뽀얗고 복숭아 같은 외모에 단발머리. 전혀 외국인으로 보이지 않는 외모이지만 칭따오는 칭따오에서 온 중국인이다. 18살, 중국에서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1년 후, 아버지가 일하고 계시던 한국으로 건너와 3년째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입시전쟁이 우리나라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 않은 중국 한족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일단 한국에서 취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칭따오는 조선족이고 한글이 낯설지 않은 길림성 마을에 살았음에도, 어려서부터 집에서 가까운 한족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한국 문화보다는 중국의 문화가 더욱 익숙했고, 한국어보다는 중국어가 편했다. 때문에 한국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칭따오의 홀로서기는 시작되었다. 혼자 책으로 한국어 공부를 하고, 가장 등급이 높은 취업비자를 취득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 "물론 힘들었지만 지금까지에서 제일 잘한 거 같애." 칭따오의 한국어는 어눌했지만, 그가 느낀 뿌듯함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칭따오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중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직은 많이 그립다. '가족'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칭따오는 좀 전까지와는 다르게 말이 빨라지고 얼굴이 더욱 복숭아처럼 되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가족들을 못 본지는 반년 정도 됐어. 칭따오를 저번 가을에 갔었거든. 중국에 있는 친구들이랑 엄마랑 동생이랑 다 보고 싶어. 내 동생은 7살이야. 나랑 다르게 생겼는데 까맣고 조그맣고 동그랗고 귀여워. 너무 예뻐. 사진도 있어! 조선족은 동생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
(과거 1가구 1자녀 정책을 시행했던 중국이지만, 조선족의 경우 2자녀가 허용되었다.)
잠깐씩 가는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벌어지는 이별의 상황들이 떠오른 것이다. 특히 7살짜리 동생이 언니가 떠날 때마다 너무 슬프게 우는 모습이 떠올라 항상 중국의 집을 나서자마자 보고 싶어진다고 했다. 칭따오에게 가족은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존재다. 중국에 있는 엄마와 동생, 그리고 한국에 있지만 거제도에 계셔서 중국에 있는 가족들만큼 자주 볼 수 없는 아빠. 칭따오에게, 바로 곁에 있지는 않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가족인 것이다.
"나는 나를 가장 많이 의지해."
문득 칭따오가 한국에서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일지가 궁금했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칭따오가 3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혼자서 많은 일들을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일하는 것 이외에 많은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만날 기회도 없었다. 본래 마음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잘 안 하고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더욱 익숙한, 조용한 성격인 것도 큰 이유인 것 같다고 했다.
"엄마한테 힘든 이야기를 하면 힘들어 하는 거 아니까, 나 잘 있고 보고 싶다는 거만 말하지. 진짜 힘들고 혼자 생각하기 어려우면 중국에 있는 중국인 남자친구한테 말해. 그래도 남자친구도 바로 곁에 있는 거는 아니니까 내가 잘 생각하고 이겨내야지."
누구보다 어린 나이에 중국, 그리고 집을 떠나 타국으로 온 칭따오는 아무래도 혼자 이겨내는 게 가장 익숙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꺼내기 어려운 일과 고민들을 혼자 이겨내는 게 익숙하다는 칭따오에게서 타국에서 온 외국인의 느낌보다는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한국 20대 청년들의 모습이 느껴졌다.
#명동 그리고 #일
명동의 거리들과 상점들은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한국 사람들, 중국 관광객들을 비롯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다른 목적으로 명동을 거쳐 간다. 한국에서 가장 정신없고 복잡한 곳이라고 해도 될 만한 명동에 칭따오는 2년 동안 매일같이 출근을 하고 있다. 아침마다 버스와 '지옥철'로 1시간 반을 걸쳐 명동 영플라자에 들어와 출근 카드를 찍고, 명동의 큰 백화점과 쇼핑센터들의 불이 꺼질 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게 22살 칭따오의 일상이다. 그래서인지 칭따오의 생각은 모두 '일' 중심이다.
[내친구의생애사] 공통질문
1. 사람들이 너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어?
- "나를 처음 보는 손님들이 내가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똑똑하다고 해야하나, 확실하다고 해야하나? 그렇게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나한테 나쁜 말하고 막 대하지는 않겠지?"
2. 너에게 완벽한 하루란 어떤 날이야?
- "매니저님이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안 혼나는날! 그리고 이상하고 못된 손님이 없고 착한 손님이 많아서 내가 말도 많이 할 수 있으면, 아 그래서 손님이 웃는다면 너무 행복한 날이야."
필자의 부가적인 질문이나 설명 없이 가장 먼저 나오는 칭따오의 대답은 모두 일이 기준이었다. 어찌 보면 이런 대답들은 고등학교 이후로 계속 한국에서 일해온 칭따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난 동료들, 손님들의 시선, 그리고 그들과의 경험들이 지금의 칭따오의 일상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명동 일터에서 칭따오가 만나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다. 한국인 직원, 중국인 직원, 한국인 고객, 중국인 고객, 외국인 관광객....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하루 수백 명씩 만나니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칭따오는 그 중에서도 까다로운 한국 고객님을 만나는 일이 가장 많다고 했다.
"중국인 관광객들도 너무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내가 중국어를 하니까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할 때도 있어.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더 까다로울 때가 많아. 가게에서 상품을 신어보고 싶다고 해서 새상품을 갖다드렸는데 양 신발의 신발끈 묶인 모양이 달라서 나한테 화를 내면서 안 산다고 한 적도 있어. 나는 분명히 창고 새 상자에서 꺼낸 새 상품을 갖다 준건데... 그리고 새상품을 잘 신어보고 나서 맘에 들어도 자기가 신었던 그 새상품말고 다른 새상품을 갖다달라고 할 때도 있어. 자신이 방금 한 번 신어봤으니 이제 더 이상 새상품이 아닌 거지. 명동에서 보는 중국 사람들도 말을 안 예쁘게 안하고 억지부리는 사람이 있어서 같은 중국인으로서 부끄러운 때가 많은데 '진상손님'은 한국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는 거 같아."
칭따오는 이런 '진상손님'들을 만날 때마다, 또는 그 진상손님들이 자신에게 나쁜 말들을 할 때마다 스스로가 정말 그 나쁜 말처럼 되는 것 같아 스스로 실망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래도 최근에 명동에서 일을 하면서 좋은 매니저님을 만났고 연지(필자에게 칭따오를 소개해준 지인)같은 좋은 동료를 만나 그래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곁에 생겼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칭따오는 타국에서 일을 하면서 혼자 이겨내는 것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의지해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한국 그리고 #꿈
어연 한국에서 지낸지 3년, 칭따오는 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다. 또한 한국에 와서 일을 한 것 자체에 대한 후회도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학교에 들어가 전문적으로 일을 배우고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최근에 조금씩 한국어 공부와 대학교 입학 자격을 얻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 일을 하고 있어서 많이는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칭따오가 필자에게 물었다.
"한국 대학교는 어떤 곳이야? 지금 들어가도 괜찮을까? 돈 안 비싸? 지금 내가 공부하는 거 말고 또 공부해야 되는 거 있어?"
한국의 여느 20대가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대학교에 다니면서 하는 고민을 칭따오도 하고 있었다. 칭따오는 4년제 대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늦은 나이와 4년 동안 필요한 학비가 가장 큰 고민이다. 그렇다고 2년제 대학교를 알아보니 따로 배우고 싶은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아직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칭따오는 일단 여름부터 일을 그만하고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공부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18살에 중국 떠나, 명동에서 일을 하며, 지금 한국 대학교에 진학하고자 결심한 칭따오는 다시 18살 때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일을 하기 위해 떠나온 그 때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으로서 겪은 경험, 그리고 한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외국인 취업자로서 생활한 경험들이 칭따오 스스로를 지금처럼 홀로 설 수 있게 해준 것처럼 칭따오는 스스로 계속 조금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청정넷-기자단 청년view [내친구의생애사] 인터뷰 연재
: 글/사진. 박경화 기자 (pakhwoa@naver.com)
: 편집. 김선기 (fermata@goham20.com)
: 일러스트. 허지나 (raptyw@naver.com)
: 문의. 이성휘 (seoulyouth20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