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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뷰 Nov 10. 2016

너무나도 일상적인, '경쟁'

"청년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아."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한 번도 우리의 이야기를 누군가 제대로 들어준다거나,
우리의 목소리로 무엇인가 해결되는 경험을 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들어보려합니다.
청년view가 만난 우리들의 목소리, 거리에서 만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경:쟁(競爭)

같은 목적에 대하여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룸.   



한국의 청년들은 경쟁을 자연스럽게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이면서 성장한 세대라고 이야기한다. 2010년 청년들을 가리키는 하나의 세대론으로 등장했던 ‘G세대’ 담론에 따르면, 청년들이 경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즐기면서’ 경쟁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과도하지 않으면서 공정한 경쟁이라면 개인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한국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이러한 미덕에 부합할까? 무한경쟁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청년들은 경쟁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을까? 많은 대학생들이 활보하는 신촌,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무덤인 노량진, 그리고 많은 청년들이 여유를 즐기는 한강에서 다양한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뫼비우스의 띠


한국사회는 경쟁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쟁은 우리 일상 속 깊숙이 들어와 있고, 청년들도 경쟁을 체감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올라가는 입시도, 취업을 향한 관문도 경쟁이고 전쟁이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기업에 입사하려면 스펙을 쌓아야 한다. 즉,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들은 대개 자신이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꼭 도달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경쟁력은 스펙, 경력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지원자들 속에서 얼마나 성실한가 파악하는 기준이 스펙같은 경쟁력이 아닐까요?”


신촌에서 만난 한 경영학 전공 대학생도 그랬다. 그는 지금 학업 외에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외활동은 경력을 더 쌓기 위해서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전공, 자신의 대외활동, 자신의 꿈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었는지 묻자 확실하게 답하지는 못했다. 이상적인 경쟁은 그것을 통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과 연결되어야 할 터인데, 경쟁의 끝에 있는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불확실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은 당연해요. 경쟁에 대한 생각이 변하기는 힘들죠. 저 하나 변화한다고 바뀌는 부분도 아니고요.”


한강 둔치에서 만난 IT회사에 다니는 31살 청년은 경쟁이라는 환경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말했듯이, 우리들은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더 열심히 해야지, 더 노력해야지’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한다.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자신의 의지로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경쟁에 몰입하는 우리들은 자신의 옆사람보다 더 나은 보수, 주변사람보다 더 나은 미래를 그린다. 한 사람을 이기면 또 다른 누군가가 나와의 경쟁을 시작한다. 마치 쳇바퀴를 돌듯 경쟁 속에 뛰어들고 그런 경쟁에서 다시금 성공을 거머쥐면 또 다른 경쟁에 빠지는 우리 사회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보는 듯하다. 경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벗어날 수 없도록 우리 삶을 옭아맨다.   

 


이기면 갑, 지면 을?


“저는 항상 저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사람을 목표로 잡습니다. 그 사람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죠. 최근에는 저보다 위에 있던 사람보다 승진을 먼저 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이제는 새로운 목표를 잡아야죠.”      


노량진에서 요리사 일을 하고 있는 한 청년을 만났다. 그는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의지, 다른 이보다 뛰어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경쟁에는 잔인한 배면이 존재한다. 제로섬게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지 못하면 내 것마저 빼앗기는 상황에서 경쟁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닌 상대적인 개념이 되어버린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승자는 존재하기 어렵다. 끊임없는 경쟁에서 모두 이길 수는 없다.      


“학교에서 몇 명만 뽑는 프로그램 때문에 스터디 그룹을 들은 적이 있어요. 학점과 외국어 자격증 등 필요로 하는 조건이 많아서 준비하는 동안 굉장히 힘들었어요. 근데 그 스터디 그룹에서 저만 합격을 했었어요. 그동안 힘들었던 것보다 성취 후에 기쁨이 더 크다고 느꼈어요.”  

  

한강에서 25살 취업준비생을 만났다. 그는 경쟁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그 경쟁을 이겨낸 이후에 사라졌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많은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앞에 언급했던 IT기업에 다니는 회사원도 남들을 따라서 자격증 공부를 할 때는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불만을 가졌다. 하지만 막상 취업을 하고 나니 그런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들은 모두 다 크고 작은 경쟁에서 이겨본 경험이 있다. 경쟁에서 이긴 뒤의 짜릿한 성취감은 잊을 수 없다. 하나의 경쟁이 끝난 이후에 이미 승리한 경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을의 입장일 때 부당하다고 느꼈던 경쟁의 과정을 갑이 되고 나서는 지나간 일로 여긴다. 변화가 불공정한 경쟁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날개 없이 미궁 속을 헤매는 이카루스


“경쟁은 대학에 가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만,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것’을 생각하니 사회의 시스템에 맞춰 원하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경쟁 속에서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유럽에서 쓰인 책을 읽고 있는 학생이 눈에 띄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이 경험했던 경쟁에 대해서 묻자 그는 위와 같은 답변을 했다. 그는 경쟁 사회에 지쳐 ‘다른 나라로의 이주’, 탈조선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서 이카루스와 함께 탈출한다. 이카루스가 다이달로스에게 날개를 받지 못했다면 지금까지도 미궁 속을 헤매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한국이라는 경쟁사회에 놓여 있는 청년들이 ‘날개 없이 미궁 속을 헤매는 이카루스’가 아닐까. 경쟁을 왜 하고 있는지, 그 끝에는 행복과 만족이 있는지 물을 시간도 없이 경쟁을, 또 다시 경쟁을 한다. 그리고 때로는 환멸감을 느낀다.

     

기사를 처음 기획할 때, 길에서 만난 청년들의 인터뷰를 통해 획일화된 경쟁이 아닌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대안적인 가치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조금은 희망적인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청년들에게 경쟁력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대부분의 청년들은 스펙이 곧 경쟁력이라고 답했다. 더운 날씨에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의 10분 남짓한 시간에, 10명도 채 되지 않는 표본으로 인터뷰를 진행했기 때문에 인터뷰 결과가 모든 청년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통해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시대 청년들은 경쟁을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얻기 위해, 당연하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청년들은 자의 혹은 타의로 사회가 요구하는 시스템에 맞춰 경쟁한다. 경쟁의 문제를 체감하고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과열된 경쟁은 이미 너무나 일상적이면서 거대하고 복잡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을 사회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혹은 기존과는 ‘다른’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참 어려운 것이 되었다. 과열된 경쟁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일생 동안 반복하며 그럭저럭 합리화된 ‘경쟁’은 더욱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감수해야만 할 무엇이 되어가는 것 아닐까? 우리의 기사가 일상적이고 경직된 전형적인 경쟁과는 다른 의미의 경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청정넷-기자단 청년view [거리에서 만난 이야기] 인터뷰 연재
: 글/사진. 박경화, 이성우, 이준태, 이현정, 정유민
: 편집. 김선기 (fermata@goham20.com)
: 문의. 이성휘(seoulyouth20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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