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피드,그세 번째 인터뷰.김강민.
뇌병변 장애를 가진 일반 고등학생 김강민 인터뷰.
장애인. 이 단어를 보면 특수한 상황이 떠오른다. 휠체어를 끄는 사람, 목발을 짚는 사람, 말이 어눌한 사람, 장애인 안내견과 함께 걷는 사람.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들은 비장애인과 다를 뿐, 특별하지 않다. 장애와 비장애가 함께 공존하고, 자유로움을 꿈꾸는 사람. ‘나’라는 사람이 불릴 때, 내 앞의 ‘장애’라는 단어가 아닌, ‘나’라는 단어가 먼저 오길 바라는 김강민님의 이야기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뇌병변 장애를 가진 일반 고등학생 김강민입니다.
강민님이 좋아하는 건 어떤 건가요?
제가 코로나 터지기 전에는 노래방을 진짜 자주 갔어요. 제가 들어갈 수 있는 노래방을 발견했었거든요. 혼자 노래 부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아요. 주로 뮤지컬 노래를 불러요. 뮤지컬은 상황을 상상하면서 부를 수 있어요. 집에서 많이 부르는 게,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 이에요. 다른 애들처럼 운동할 수도 없고,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으니까. 할 수 있는 건 앉아서 노래를 자주 불러요.
휠체어를 타고 노래방을 간다는 게 비장애인에겐 생소할 것 같아요.
제가 노래방을 자주 갔던 이유가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서에요. 친구들이 한 번도 장애인과 노래방을 간 적이 없으니까, 노래방 가자 하면 “어 네가 어떻게 가?” 이런 말을 많이 해요. 자기들이 간 곳은 다 계단이고 턱이 있고 그래서 전혀 갈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장애인도 노래방을 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열심히 갔었어요.
인스타에 쓰신 글 중에 장애라는 단어가 앞장서기보다, 나라는 단어가 먼저 오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의미일까요?
단지 장애가 있어서, 활동에 제약이 있다 뿐이지 무언가를 좋아하는 건 똑같거든요? 저도 PC방 가서 게임하는 거 좋아하고,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해요. 그런데 이런 걸 자주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어느 정도 내가 하고 싶다 할 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을 담아서 이 글을 쓴 것 같아요.
강민님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림자라고 생각해요. 그림자는 햇빛이 있을 때만 나오잖아요? 저도 날이 좋을 때만 밖으로 나와서 그림자라고 생각해요. 또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함께 가는 거잖아요? 지금 당장 내 그림자가 안 보인다고 하여, 내 그림자가 없는 게 아니니까. 장애도 지금 당장 내 주변에 안 보인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그러면 강민님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건가요?
영화관에 가도 장애인석이 있고, 놀이공원에 가도 장애인 우대권이 있어요. 우대권을 가지고 있으면, 비장애인 줄이 많아도 바로 앞에 가서 탈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놀이기구도 줄 서서 타고 싶어요, 비장애인들처럼. 장애를 가졌다고 나만 특별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장애인 우대권을 가지고 놀이공원에 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돼요. 그런 시선을 맨날 받아야 하고, 그런 시선이 싫어서 놀이공원을 안 가게 돼요. 그런 부분에서 자연스럽고 싶어요. ‘장애는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 안에서 보통 사람들하고 섞여서 살아야 한다고.
‘장애는 자유로워야 한다’ 이 말이 강민님이 말하고 싶은 개인의 메시지인 걸까요?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라고 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거든요?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만 노력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같이 노력하면 더 빠르게 온다고 생각해요. 자유로워야 일단 그런 환경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유로워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위해서는 앞으로 어떤 활동들을 계획하고 계세요?
예전에 비장애인 학생을 봉사활동에 연계한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어요. 대학교 학생들을 모아서 휠체어를 직접 체험하고,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이 뭔지 확인하고, 직접 해결하는 활동이었어요. 그때 제 친구 한 명을 껴서 했었어요. 비록 한 명이었지만, 그 친구가 그 활동을 하고 굉장히 바뀌었어요. 그 한 명의 친구가 그런 활동을 하니까, 다른 친구한테 알리고, 또 알리고, 또 알리고 해서 애들이 모이더라고요. 앞으로도 누구도 경험해 보지 않고, 학창 시절에 경험할 수 없는 활동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요.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은 어디든 가서 내가 도움된다면 도움 닿는 데까지 도움을 주고 싶어요.
비장애인이 함께할 때, 더 효과적이라고 들리는데요?
내 경험을 나 혼자만 갖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공유하고 그런 게 많아지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해요. 물론 장애인 분들이 소리 내서 바뀌는 것도 있겠죠. 하지만 비장애인 본인이 겪은 장애인의 어려움을 말해줘야 바뀌어요. 비장애인 분들의 도움이 조금 필요해요. 어떻게 해서든 비장애인 분들의 함께함이 있어야 생기는 변화예요.
사회는 비장애인에 맞춰진 게 많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이어서 겪는 대표 사례가 있을까요?
약속을 잡을 때, 주로 카페나 음식점을 가잖아요? 저는 휠체어가 있어서 카페나 음식점에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약속 장소에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부분이 어려워요. 대중교통이나 기타 활동을 할 때 기본적으로 비장애인 분들보다 2배의 시간이 걸린다고 보시면 돼요.
학교 활동 참여에도 허들이 많을 것 같아요.
만약 현장체험학습을 간다고 하면, 저는 그 장소를 미리 가봐요. 사전 답사죠. 내가 불편한 건 없는지, 내가 도움받아야 할 건 없는지를 미리 알아봐요. 기존에는 수동 휠체어라 이것도 힘들었는데, 고등학교 입학 후 전동 휠체어로 바꿔서 체험학습이나 야외활동을 하면 미리 답사하는 편이에요.
체험학습이나 야외 활동 시에 학교 측에서 강민님의 상황을 많이 고려해 주나요?
이런 부분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왜냐하면, 장애 학생을 담당하는 특수학급 선생님이라 해도, 일반 학교 특수학급 선생님들은 발달장애 학생 위주로 상대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의 어려움이 뭔지는 모르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그런 부분을 디테일하게 못하시는 것 같아요.
그럼 체험학습 등이 있으면 강민님은 무조건 답사를 가야 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언젠지 물어보고, 장소 물어보고, 뭘 할 건지 물어보고 답사를 가요.
사전 답사를 갔는데, 강민님이 활동하시기에는 부적절하다 하면 어떻게 하세요?
그런 상황일 때는 현장학습에 가되 활동에 참여를 안 해요. 어찌 되었든 계단이나 턱이 있으면 못 들어가는 건 똑같으니까요. 선생님께 “저는 그럼 밑에 있을게요.”라고 말하고, 끝나면 따라다니겠다고 해요. 친구들과 함께 참여는 못하죠.
그렇게 했을 때 선생님이나 주변 반응은 어때요?
안타까워하세요. 사전에 이런 부분을 선생님들이 알아봤어야 하는데, 못 알아봐서 미안해하시고. 사실 저도 제가 갈 수 있는 곳 찾기가 어려워요. 하물며 선생님들은 어떻겠어요. 그런 부분을 잘 모르시니까 어쩔 수 없죠. 선생님들이 미안해하실 일은 전혀 아니에요. 그냥 어쩔 수 없는 상황 같아요.
어느 정도 장애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받아들이시는 건가요?
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조금씩 바꿔 나가려고 여러 활동을 하는 것 같아요.
언제부터 바꾸는 시도를 하신 거예요?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부터요. 학교에서 장애 이해 교육을 하면 제가 같이 있어요, 비장애인 학생들하고. 보통 교육을 영상으로만 해요. 그 영상 속 장애인은 단지 도움을 받아야 했고, 비장애인이 동정해야 하고, 안타까운 사람이라고 정의하더라고요. 그 영상을 보는 친구들한테 저는 여전히 특별해야 하고, 안타까운. 사람인 거예요. 저는 제가 특별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특별해 보여야 한다는 게 싫어요. 그래서 저를 명확히 알리자 싶어서 직접 강의 자료를 모으고, 피피티로 제작해서 직접 교육을 했어요. 처음에는 아무 지식 없이 답답한 마음에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그때부터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공부해서 알렸던 것 같아요.
직접 강의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어요?
짜증스러운 반응이 많았어요. 왜 굳이 네가 하려고 하느냐, 학생이 학생을 교육한다고?, 특수학급 전문 선생님이 할 일을 왜 네가 사서 고생하느냐, 라면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그래도 한다고 계속 우겨서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그때부터 매년 바꿔가면서 계속한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봐주신 분들은 없었나요?
특수학급 선생님들이 더 반대하셨어요. 본인들이 더 전문적이고, 지식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신 것 같아요. 굳이 우리한테 맡기면 될 일을, 자격증도 없고, 청소년인 네가 아이들에게 하려고 하느냐는 반응이었어요.
그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화도 났고, 답답했어요. 무언가 변했으면 좋겠는데, 그 방법은 잘 모르겠고. 아이들은 여전히 고정관념과 편견이 있고. 똑같이 반복되는 환경이어서 장애인 당사자로서 머리가 아팠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도 있고, 이런 활동을 하는 인맥과 연락망도 있어서,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받고 그래요. 시작은 허술했지만, 하나씩 발전해 나가면 더 내 생각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에 교육했을 때 어떤 걸 했는지 기억나세요?
당시 교육을 할 때 친구들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병신’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어요. 그리고 조금 성적이 높지 않은 친구들을 보고 ‘너 특수학급 가라’라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했어요. 저한테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장애인 당사자로서 듣기는 불편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부터 바로 잡아야겠다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던졌던 이야기가 병신이나 특수반으로 가라는 말을 할 때는, 조금 더 생각을 깊이 하고 하는 게 좋다는 말이었어요.
강의 말고는 어떤 걸 하고 계세요?
장애인 이해 교육에 미디어도 필요해요. 하지만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비장애인 분들도 살다 보면 장애를 가질 수 있고, 내 주변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런 사람들이 장애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경험하고, 익숙해지면 조금 더 장애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교육환경, 시간을 고려하면 미디어로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일상 속에서 친구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시켜주는 편이에요. 체육시간에 제 수동 휠체어를 태워주고, 저는 뒤에서 밀어주고. 그럼 저는 운동을 하고, 친구는 경험을 해서 1석 2조에요.
친구들의 반응은 어때요? 달라진 점이 있나요?
휠체어를 태워줘서 부끄러워하는 게 있어요. 한 친구가 휠체어를 타고 있으면, 다른 친구가 “아 너는 왜 그걸 타냐, 장애인도 아닌데. 부끄럽지도 않냐.” 이런 말이 수시로 오가요. 그러면 타고 있던 친구가 부끄러워서 내리거나, 저와 점점 사이가 멀어지기도 해요.
그런 부분이 불편하진 않나요?
불편하죠. 옛날에는 그런 것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그런 게 있을수록 친구들한테 더 말하고 경험시켜주려고 해요. 오히려 이런 게 더 필요하다면서. 지금은 부끄럽고 창피할지 모르지만, 이런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해요. 누군가는 경험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도, 그 누구도 할 수 없다면,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작은 거라도 시도해야 나아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들이 강민님을 움직이는 원동력일까요?
저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했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려고 할 때,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급도 엘리베이터도 없다는 이유였어요. 엘리베이터도, 특수학급도 만들어 줄 수 없으니, 특수학교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럴 이유가 없었어요. 집 앞에 초, 중, 고가 다 있는데, 굳이 멀리 있는 특수학교에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럴 이유도 없고.
입학부터 어려움이 있었네요.
맞아요. 그래서 부모님이 저를 1년 미루셨어요. 1년을 쉬고, 늦게 입학해서 동생들이랑 같이 공부해라.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줄 때까지, 아빠가 어떻게든 노력하겠다. 그러니 조금만 참고, 동생들 입학할 때 같이 입학해라.”라고. 결국, 그렇게 해서 입학을 했어요.
입학 이후에는 어땠나요?
어렵게 학교에 갔어요. 하지만 가서도 2년 동안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이용했고, 특수학급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2년 동안 체험학습을 못 갔어요. 애들하고 어떤 기억도 없어요. ‘우리 학교에 이런 애가 있다.’라고만 알려졌지, 아무도 내구 누군지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특수학급과 엘리베이터는 저 때문에 만들어졌어요. 중학교에선 특수학급은 이미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없었는데, 저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졌어요. 고등학교에는 그 두 개가 이미 다 있었고요. 제가 들어감으로 인해서 그런 변화가 생긴 거니까. 어쩌면 나 때문에 생긴 상황이라 부모님께 미안했고, 이걸 위해 노력해준 분들께 미안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런 건 굉장히 불합리하다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그런 걸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시도하는 중이에요.
어릴 때부터 쌓였던 불합리함이 쌓이고 쌓이다, 이걸 말해야겠다 싶어서 지금 하고 계신 거잖아요? 실질적으로 강민님을 통해서 특수학급도 만들어지고, 그런 경험들이 강민님이 활동을 지속하는 개인적인 원동력인 걸까요?
네, 왜냐하면 지금도 제가 겪었던 환경이 반복되고 있거든요. 예전에 성동구에 특수학교를 짓지 말라고 난리가 난 적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굉장히 저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처음에 학교 들어갈 때 반대를 했고, 학부모가 반대했었으니까. 이렇게 반복되는 상황을 보니까, 그런 걸 변화시키고 싶어서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장애인에겐 사라지지 않는 벽이니까. 내가 이런 활동을 한다고 해서 누가 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줄 때까지 혼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계속 이야기하면 언젠가 벽이 허물어질 거라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허물어지지는 않겠죠. 하지만 누군가 계속 이야기하면 뒤에는 남지 않을까 싶어요.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계속 저의 이야기가 남아서, 바뀌지 않을까. 바뀌면 좋은 거고, 안 바뀌면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거고. 아빠도 이런 일 하는 걸 싫어하세요. 다른 활동가들 많은데, 왜 굳이 학생인 네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냐고.
그럴 때 강민님은 뭐라고 답하세요?
옛날에는 대답을 못했어요. ‘아 진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지금 아빠가 다시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내가 더 나은 세상을 살고, 더 나은 사회 속에서 살려면 이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구도 만들어 줄 수 없다면, 내가 만드는 게 나중 삶을 위해서도 효과적이지 않겠냐.”라고 말할 것 같아요. 장애 당사자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야기할 수 없어요. 물론 장애를 많이 가진 분들이 틀은 잡을 수 있어요, 하지만, 섬세하게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장애인 당사자이기 때문에 꾸준히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또래 청소년들이 이 인터뷰를 본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시도는 해봐라. 장애가 됐든 비장애인이 됐든 서로에 대해서 거리낌이 심해요. 서로에 대해 경험이 없어서 그래요. 서로가 어떻게 다가가야 하지?라는 숙제가 있어요. 그런데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도 먼저 시도를 안 하면 제자리예요. 그러니까 시도를 해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람들이 저한테 항상 그랬어요. ‘내가 안 되면 너도 못해, 포기해.’라고.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나중에는 시도는 해보고 포기하자 싶더라고요. 저는 짚라인도 타봤고, 클라이밍도 해봤고, 마라톤도 해봤어요.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했던 일들을 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시도해야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으니까 시도를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어떤 게 하고 싶고, 꼭 해야 한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그 시간을 쓰면서 시도해보고 포기하는 게 자기를 더 발전시켜 나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흥미가 있으면 무엇이든 꼭 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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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아동, 청소년에게 차별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표현하며 상호 공감할 수 있는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과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삶이 존중받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미션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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