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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중력지대 성북 Sep 30. 2021

성북천에는 공룡이 산다

#ESSAY

무소식은ㅡ

무중력지대 성북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4호 : ESSAY


정대훈, 「성북천에는 공룡이 산다」


 당신은 포켓몬과 디지몬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가? 나는 디지몬을 더 좋아한다. 포켓몬에는 매력적인 몬스터가 많다. 특히 캐터피, 거북왕, 이상해씨, 탕구리, 뮤와 같은 1세대 포켓몬이 내 취향이다. 하지만 이들로는 부족하다. 내가 진정 원하던 몬스터는 디지몬에 있다. 그것이 바로 '그레이몬'이다. 그레이몬은 티라노사우르스를 닮은 공룡이다. 비대한 몸통에 꽂혀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짧은 팔을 가지고 있다. 이 기묘한 비율이 나에게는 ‘간지’ 났다.


 디지몬에는 여의도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레이몬이 내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레이몬처럼 철로 된 바가지를 쓴 공룡이 아니어도 좋다, 공룡을 볼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사실은 지구공동설처럼 지구 깊은 곳 어딘가 공룡이 살아있지 않을까? 혹은 문명과 단절된 밀림에서는 무시무시한 이빨과 토실토실한 몸통을 가진 공룡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공룡은 멸종했고 이제는 화석으로나마 그 증거를 찾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공룡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이 공룡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신화적 존재로 남았다는 점에서 공룡은 멋있었다.


 그러나 사실 공룡은 멸종하지 않았다. 생물학적으로 공룡은 엄연히 이 지구에서 인간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조류, 다시 말해 새는 공룡이다. 공룡이 진화해서 새가 된 것이 아니다. 새가 공룡 '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최근에 이를 알게 되었다.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니! 출퇴근길, 나는 매일 성북천을 오간다. 성북천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산다. 성북천에서 해오라기, 왜가리, 청둥오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멸종한 줄만 알았던 공룡이 사실은 성북천에서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었고, 나는 공룡을 출퇴근길마다 만나고 있던 것이다.


 다시 만난 공룡과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왜가리와 해오라기가 '힙'하게 생긴 것은 맞다. 그러나 그레이몬만 하겠는가? 그들은 더 이상 공룡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남아있었다.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공룡은 멸종했다는 말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에. 장구한 진화 과정을 거쳐, 어쩌면 지금의 새도 언젠간 그레이몬처럼 멋진 모습을 가진 공룡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보지 못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꿈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 어른이 되어, 어린 꿈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 있을까? 때로는 그 꿈이 나와 늘 함께 하고 있었음을 자각하고 안도할 수 있을까? 비록 그것이 나 자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달라져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성북천에는 공룡이 산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 공룡들이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쨌든 공룡은 공룡이다.




발행 무중력지대 성북

해당 에세이는 '2021『무소식』생활 수필 원고 모집'을 통해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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