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월간무지랑 : 다양성「김비 작가 인터뷰」
월간 무지랑은 다양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하루 네트워킹 모임입니다.
무중력지대 성북과 각 분야의 전문가, 그리고 취향껏 모여보고 싶은 청년 기획자가 함께 협력파트너로서 「월간무지랑」을 만들어 갑니다.
낮은 문턱을 넘어서, 멤버십 누구나 함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새로이 만나고 싶은 저녁에 가볍게 놀러 오세요. 매월 매번 다른 주제로 만나요.
월간무지랑은 낮은 문턱으로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곳이에요. 가끔은 그 누구나에 당신도 물론 포함된 다는 것을 열심히 티낼 필요도 있더라고요. 누구나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며 2021년의 마지막 월간무지랑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숨기고 싶거나 혹은 내가 아직 모를 뿐이죠. 이를 지지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한결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진행한 '당사자와 앨라이들의 글쓰기'. 이 과정을 함께해주신 협력파트너 김비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월간무지랑 : 다양성《당사자와 앨라이들의 글쓰기》
- 장소 : 무중력지대 성북 모임방, 무지랑 거실
- 일시 : 2021년 12월 10일 / 12월 12일
- 협력파트너 : 김비
- 참가자 : 5명
'당사자와 앨라이들의 글쓰기'(이하 워크샵) 잘 마무리되었네요. 진행하면서 기대했던 게 충족되었나요?
퀴어 당사자들이나 엘라이를 위한 글쓰기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벽을 허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벽은 비성수자나 퀴어가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쌓인 적 없는, 퀴어이기에 맞닥뜨려야 하는 그런 벽인데요. 퀴어에게는 소통 자체가 쉽지 않은 사회이다 보니 벽이 자신 안에서 계속 단단해지기만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얄팍한 말들은 오히려 더 입을 닫게 하고, 그렇다고 나도 뾰족한 수가 없고, 그렇게 조금씩 벽을 등진 채 조금씩 자신 쪽으로 무너져내리는 벽을 직시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게 경계를 뛰어넘는 시선과 또 용기인데요. 짧은 시간에 그걸 제 것으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겠지요. 내면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어루만질 수 있는 글쓰기나 예술 프로그램들이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회차뿐이라 해주고 싶은 말은 많고, 그럼에도 우리들의 깊이를 말해야 할 것 같고, 꼭 거기에 가 닿기를 바라며 수업을 준비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참여하신 분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품은 거대한 벽을 잠깐이나마 흔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최초의 용기를 품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워크샵을 하면서 기억에 나는 순간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머뭇거림’과 ‘미소’가 기억납니다. 각자 자신이 어떤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지, 나에게는 어떤 글쓰기 재료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분의 얼굴엔 자기만의 설렘을 말하느라 온 얼굴을 뒤덮는 미소가 있었고 또 다른 분에게는 무언가 해야 할 말들을 차마 하지 못했던 머뭇거림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두 가지 표정의 격차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길 위에 있고 내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삶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처럼, 머뭇거림만으로도 환한 웃음만큼이나 큰 ‘직면하는 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하지 않겠다는 것도 퀴어에게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지,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어떤 감정들, 인식들, 마음들이 있더라도, 회피하거나 움츠러들지 않고 내가 여전히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 나는 언젠가 나만의 방식으로 쓰고 말하겠다는 그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도 아주 멋진 시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퀴어 당사자나 주변의 엘라이들의 그런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또 한 사람의 퀴어 당사자인 저에게는 모두 설레는 일이었다고 믿습니다.
내 이야기를 쓸 때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히는 사람이 있잖아요. 글로 내 이야기를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문명화되어있고 인간은 사회화되게 마련인데, 개인은 충분히 개인화될 기회를 갖지 못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일부지만, 가장 먼저 ‘개인’으로 존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를 들여다보는 일, 내가 무엇인지, 내 욕망이나 사유가 왜 그런지 들여다보는 훈련이 잘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억압이기도 하겠지요. 항상 비교하게 만들고, 그걸 통해 더 낫게 앞으로만 내달리도록 만들면서, 개인의 불안이나 고독은 모른 체하는 것이, 외면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고 세뇌시키는 이 문명사회의 작동 방식이기도 하겠고요. 마움껏 울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우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내가 ‘나’이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 이미 매일 나를 보고 있지만 그래도 더 깊은 나를 계속 불러주는 일, 그래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 너에겐 자격이 있고 너를 위한 즐거움이 있고 그래도 된다고 말해줄 수 있을 때, 아마 그 순간이 되면 쓰지 말라고 해도 제 이야기를 마음껏 적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문학은 ‘수다’라고 말했듯이 앞뒤 없는 내 이야기를 마음껏 쏟아내는 것, 그래도 괜찮은 것, 그래서 더 신이 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될 때, 우리는 좀 더 쉽게 우리를 드러내고, 우리를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함께했던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모두 반가웠어요. 쓰고 있나요? 머릿속으로, 혹은 휴대폰에, 내 이야기를 계속 굴리고 ‘저장해’놓고 있나요?
이번 수업에는 일방적인 이야기를 주로 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음에는 바깥의 마스크, 내면의 마스크까지 모두 벗어 던지고 같이 웃는 목젖을 보일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 열심히 쓰고 저장하세요. 알았죠?
꼭 다시 봅시다!
당사자와 앨라이들의 글쓰기 모집 공지
당사자와 앨라이들의 글쓰기 후기
협력파트너. 김비
1997년부터 소설을 쓰는 중이며, 2007년에 <플라스틱 여인>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상을 받았다.
소설 작품으로는 <빠쓰정류장>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이 있으며, 2020년부터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달려라 오십호>를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