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하고 나면 기분이 좋지만, 시작하기 전엔 괜히 부담스러운 것이 있죠. 바로 숙제입니다. 어린 시절, 숙제를 잘 해내면 선생님께 칭찬받아 기분이 좋았지만, 미루다 보면 혼이 나기도 하고 또 다른 숙제가 쌓여 곤란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래서 학교만 졸업하면 이런 숙제는 더 이상 없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되어서도 매일 삶의 숙제를 마주합니다. 어른이 되면 끝날 줄 알았던 숙제는 매일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고, 때로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해내야만 하는 일들이 있으니까요.
오늘은 이런 숙제를 아이의 핸드폰, 게임 시간을 조절하는데 이용했던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방과 후 수업에서 코딩을 배우던 아이가 어느 날 “토끼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방향키와 스페이스 바를 이용해 토끼가 함정에 빠지지 않고 길을 헤쳐나가게 하는 간단한 게임이었어요. 아마 키보드 사용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수업에서 소개한 듯했어요. 나쁘지 않겠다 싶어 컴퓨터에 연결해 줬죠. 그랬더니 아이는 토끼처럼 깡충거리며 환하게 웃었어요.
물론,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딱 30분만 하자.” 평소 엄마 말을 잘 듣기로 소문난 제 딸이 “30분만 더!”를 외치며 결국 두 시간 가까이 토끼와 함께 뛰어다니더군요. 저는 뭐 했냐고요? 저 역시 소파에 기대어 ‘딱 30분만’이라고 다짐하며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죠. 그 시간은 우리 모두 토끼가 되어 자유롭게 들판을 뛰어다니듯 각자의 즐거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막 게임에 푹 빠져든 아이에게 갑자기 ‘그만하라’고 단호하게 말하기는 어려웠고, 시간을 계속 허용하기에도 부담이 되기 시작했죠.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숙제였습니다.
“박토끼, 엄마가 생각해 봤는데 게임을 잘하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할 거 같아. 그래서 레벨 15까지는 꼭 도달해 보자.”
이미 레벨 7, 8을 겨우 넘기고 있던 딸아이, 게임을 더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토끼처럼 동그란 눈을 반짝거리며 꼭 해내겠다고 약속합니다. 다음 날 저는 레벨 20을 목표로 제시했고, 그다음 날엔 단번에 레벨 30을 주문했습니다. 열 단계를 넘기려면 실패와 도전을 반복해야 하고, 실수가 쌓이면 부담이 되기 시작하죠. 그렇게 점차 박토끼도 지쳐가더군요. 그러더니 슬그머니 오늘은 그만하면 안 되냐고 부탁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그 말을 듣고 반색하며 좋아했을까요? 아니요. 아쉬운 척하며 “우리, 레벨 30까지는 가야 하는 거 아니었어?”라고 대답했죠. 그 후에도 딸아이는 레벨 30 넘기기라는 ‘숙제’를 이어갔고, 점점 게임숙제가 쉽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서서히 게임을 놓기 시작했죠.
- 숙제는 인생의 작은 축소판. 끝없이 밀리고, 늘 해야 하지만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랬습니다. 그렇게 재미있어하던 게임도 숙제가 돼버리니 아이는 게임을 스스로 멈췄습니다. 아이의 행동을 무작정 제지하기보다는, 숙제를 통해 그 행동을 스스로 조절하게 돕는 방식이 이렇게 효과적일 줄이야. “엄마는 다 계획이 있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