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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진 May 13. 2022

돌아온 부부의 시간을 위하여

인테리어 마인드 (6) 멀티룸

맥주 한 잔, 콜!?


남편과 나는 연애 때부터 대화할 때 죽이 잘 맞았다. 기본적인 가치관도 비슷했고 대화의 티키타카도 잘 맞는 편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얘기 듣는 걸 좋아하는데, 남편은 이야기보따리 장수인 마냥 매일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준다. 게다가 모든 이야기를 넘치거나 부족한 것 없이, 듣는 사람 수준에 맞춰 전달하는 재주가 있는 남편이다.


이런 우리의 대화에 거의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하나 있으니, 바로 맥주다. 연애할 때부터 맥주 마시는 걸 둘 다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맥주를 '탐'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옥토버페스트를 다녀오고 난 후다. 한국 맥주와는 달리 진하고 걸쭉한 헤페-바이스비어(Hefe-weissbier)를 맛본 우리는 한동안 전문 보틀 샵을 찾아다니며 독일과 체코, 벨기에 맥주에 흠뻑 빠졌다. 값비싼 맥주를 경험해보는 것은 물론, 집에서 맥주를 마실 때도 브랜드별 전용잔에 따라 마시며 맛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기를 즐겼다.

드디어 제자리를 찾은 맥주 전용잔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모든 패턴이 바뀌었고 분위기는커녕 사실상 맥주 한 잔 마음 놓고 나눌만한 시간도 없어졌다. 한 잔 하려고 해도 잔 부딪히기 무섭게,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졸기 일쑤였고 그마저도 아이가 아파서 기침이 심한 날엔 모든 일상이 멈추었다. 한동안 대화도, 맥주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고 그저 엄마와 아빠로 충실한 하루를 보내는데 집중하며 살았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부부의 시간'이 다시 생기기 시작한 건, 아이가 6세가 넘어가면서부터였다. 그동안 아이는 자라면서 면역력이 세졌는지 그동안 아팠던 거에 비하면 자주 아프지도, 크게 아프지도 않았고(마스크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부부 역시 엄마와 아빠로서의 경험치가 쌓여서인지, 점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신혼 때가 '결혼: 제1막', 아이의 탄생이 '제2막'이라면 이제 세 가족으로 각자 라이프가 어느 정도 구분이 되고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제3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침실을 제외한, '부부를 위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해왔다. 보통은 방 3개 구조라면 부부 침실-아이방-드레스룸 이렇게 구획하기를 많이 선호하지만, 나는 과감히 드레스룸을 안방으로 넣기로 마음먹었고 그 자리에 '부부'가 중심이 되는 '미니멀 거실'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 그게 바로 멀티룸이다. 거실을 '공유 오피스'처럼 쓰기 위해서 작은 방을 TV와 소파가 있는 미니멀 거실로 만든 건 맞지만, 그 작은 거실은 '부부'를 위한 공간이길 바라며 디테일을 구상했다.

우리 부부의 아지트


다시 전용잔에 정성껏 맥주를 따라 즐기고 싶은 공간. 함께 스타워즈 시리즈를 정주행 하며 수다 떨고 싶은 공간. 양가 대소사에 관해 의견 조율이 필요할 때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 매일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공간.


그래서 벽지도 내가 좋아하는 톤으로 다크하게, 분위기도 차분하게, 소품도 '부부의 소품'들로 채웠다.


가장 먼저 이 방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맥주 전용 냉장고'였다. 남편은 기쁜 마음으로 매일 냉장고를 살피며 맥주가 떨어지지 않게 채우는 담당을 자처했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 온 맥주 전용잔들은 이제야 유리장 안에서 자태를 뽐낼 수 있게 되었고 작은 소파는 적절히 붙어 앉아 쑥덕쑥덕 수다 떨기에 딱이었다. 자그마치 12년 차인 tv는 멀티룸에서만큼은 마치 90인치 tv인 양 여전히 짱짱한 성능으로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멀티룸의 단점은 아직까지 우리 부부에겐 없다. 하지만 아이에겐 있었다. 엄마 아빠가 멀티룸에 모여서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니, 나만 빼고 무슨 얘길 했냐며 자주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그럴 때 우리는, 아이를 멀티룸 작은 소파로 초대한다. 예전에는 아이가 우리 사이에 쏙 들어와서 안기고 비비며 장난쳤는데, 이제는 그것도 버거울 만큼 아이의 몸집이 제법 커졌다. 그런데 반전이 있으니… 그렇게 소파에 끼여서 서로 옴짝달싹 못하는 걸 아이는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잦아졌으니, 이걸 과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나 싶기도 하다.


아이를 재우러 방으로 들어가는 길에 남편이 옆구리를 쿡 찌른다. 그리고 손을 들어 입쪽으로 꺾는 시늉을 하며 눈빛 발사!  나는 신속하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대답한다.


‘맥주? 콜!’


낮에는 작은 거실, 밤에는 부부의 아지트인 그 곳. 우리집 멀티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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