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류 Sep 28. 2022

회사에서 가끔 시 한 편을 읽어라

신입 사원 후배에게 보내는 어느 사수님의 편지 

신입사원 때 나의 첫 사수님이 직접 써주신 편지


회사에서 가끔 시 한 편을 읽어라.

인터넷보다는 물 한잔을 떠놓고 한 모금씩 음미해라.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역사를 물어라.

개인의 역사. 생활의 역사.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들어라.

힘들 때는 1초. 1분씩 끊어라.

호랑이굴이라고 생각하고 정신을 집중해라.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라.

그 인간이나 저 인간이나 비슷하지만

누가 겁을 내고 누가 겁을 안 내는지 봐라.

겁을 안 내는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찾는다.

지금의 능력을 배반해라.

아니 인정해라. 능력은 자란다.

눈에 안 보인다 하루아침에 큰 차이가 없다.

그래도 믿어라.

3달 뒤를 생각해라. 걱정 말고 너를 거기 던져라.

절실함이 모든 것을 커버해준다. 나는 믿는다.

잘할 수 있다고.






내 인생에는 두 명의 사수님이 있다. 신입 사원 때 만난 첫 번째 사수님은 인생의 스승님이자, 도인 같은 느낌의 사수님이고 선임 정도의 연차가 되어 만난 두 번째 사수님은 10년 동안 우여곡절을 함께 겪으며 거의 소울 프렌드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사수님이다. 두 분의 공통점은 재밌다는 것. 같이 있으면 즐겁고 시간이 엄청나게 빨리 가며 웃을 일이 많다. 생각해보면 웃을 일이 많으니 즐거울 수밖에 없고 그러니 시간이 빨리 갈 수밖에 없는 선순환 구조를 가진 관계다. 


그간 두 사수님들이 사주셨던 수많은 맛집 요리들(어렸을 적에는 엄마의 음식이었겠지만, 성인이 되어 나를 키운 음식의 8할은 두 사수님들 덕이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으며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들과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조언들, 그렇게 울고 웃으며(물론 우는 건 나만 울었지만)같이 보낸 시간들... 아무튼 그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밥벌이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두 분 중에 먼저, 신입 사원 때부터 지금까지 14년째 사수-부사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나의 첫 번째 사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금은 어느 대기업 광고회사의 임원이신 나의 첫 사수님은 내가 신입 사원일 당시 국장 카피라이터였다. 나와 띠동갑 차이가 나서 20대 초반의 내가 본 국장님은 정말 하늘 같은 선배님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그 나이쯤이 되고 보니 아, 그때 국장님도 30대의 젊은 나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장님과는 재밌는 일화들이 정말 많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라디오 광고 카피를 쓰고 녹음실에 갔는데 카피라이터가 직접 가녹음을 해봐야 감을 익힐 수 있다며 녹음실에 집어넣고 녹음까지 시켰다. 너무 떨렸지만 막상 하다 보니 열정이 생겼다. 내가 쓴 카피의 뉘앙스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나는 수십 번 녹음을 했다. 그렇게 수십 번을 외쳐댔던 'OO주유소~'라는 그 주유소 징글의 음(音)은 아직까지 잊히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해보고 나니, 정말로 성우에게 녹음 디렉션을 주는 일이 훨씬 더 수월해졌다. 음가에 따라, 억양에 따라, 띄어 읽는 것에 따라 아주 미묘한 차이로 카피의 뉘앙스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몸소 배웠기 때문이다.


또한 경쟁 PT(presentation)가 있을 때면 새벽에 끝나거나 밤을 많이 새웠는데, 젊은 나이에 이렇게 일을 해대면 답답하다는 걸 아셨는지 편집실, 녹음실을 가는 길에 항상 자신의 스포츠카를 오픈카로 만들어주셨... 아, 쉽게 말해 차의 뚜껑을 열어주셨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새벽에 푸조 스포츠 카를 타고 그루브 아마다의 [Hands of time]을 들으며 아무도 없는 한강변을 달리던 그때가. 마치 영화 [콜렉트럴]의 한 장면처럼.

그 당시, 일이 너무 많아서 국장님의 차를 타고 외주 업체로 이동할 일이 참 많았는데 "조수가 매일 조수석에 타서 조수석 점유율 90%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내가 말하자 국장님은 "그래 네가 지금 이 차 옆자리 점유율 90%야. 이거 나한테 엄청난 지분이다."라며 웃었다. 그렇게 나는 힘들지만 유쾌하게 일했다.


국장님은 신입사원인 나에게 항상 맛있는 음식들을 사주시며 ‘나중에 내 실버타운이 돼라’는 말과 함께 계산한 영수증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클립으로 모아 다 가지고 있는데, 10년이 지나고 나니 색이 바래고 빈 종이만 남아있더라는... 그렇게 증거물은 사라져 가는 듯하지만... 내 몸과 마음에 그 음식과 그날 나누던 대화들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사실 영수증 같은 증거물은 필요 없다. 



지금 이곳에서 일하고 연차가 쌓이는 것을 놀이동산 티켓이라고 생각해라. 
1년 차는 입장권만 겨우 얻는 것이다. 아무 놀이기구도 탈 수 없다.
2년 차는 빅3 정도 얻는 것이다. 그걸로는 몇 개 타지 못한다. 
선택권이 별로 없으니 타고 싶은 것을 맘껏 타지 못한다는 말이다.
딱 3년만 버텨라. 3년 차 이상이 되면 자유이용권을 얻는 것이다.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어디서든지 놀 수 있다.


나는 사수님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사원 생활 3년을 버텼고, 경력직으로 더 좋은 곳에 이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당시 국장님만큼의 연차인 14년 차가 되었고, 그때의 국장님처럼 나와 띠동갑 차이가 나는 후배도 생겼다. 이 무슨 기막힌 우연인지? 나는 종종 후배들이 일에 관한 질문을 하거나 조언을 구할 때면 국장님이 나에게 해줬던 것들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그 좋았던 말씀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글로 기록하며 정리해두려고 노력한다. 문득, 나의 사수님의 말씀이 나에게서 내 후배에게 그리고 그 후배의 후배에게...  업계에 대대로 전파되는 상상을 해본다.

  '옛날에~ 내 사수의 사수의 사수님이 그랬대...' 

작가의 이전글 작가는 아닙니다만,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