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2024) 시작하는 것

20250506 관람

by 이지와

HAPPYEND(2024)




오프닝 시퀀스가 열리자마자 화면을 가득 채우는 빨간 점들이 산발적으로 반짝거린다. 더불어 웅장한 영화음악이 내 귀를 사로잡는다. 나는 그 적색 빛을 띠는 점들을 목도하는 즉시 일본의 지진 발생 지형 그래프를 떠올렸다. 그것은 내가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로서 ‘떨림’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품고 갔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점들은 반짝거리다가도 어느 순간 깜빡거렸다. 그것들은 떨리고 있었다. 맥박과도 같이, 이 영화의 탄생을 지켜볼 관객의 마음과도 같이.


해피엔드가 시작되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청춘물이 흔히 미화하듯 다섯 명의 고등학생은 다시 없을 죽마고우처럼 지내며 배정받은 학교 내 동아리방을 꾸며서 음악연구부로 사용하고 있다. 쿵쿵 울리는 테크노의 리듬을 매료된 그들은 급기야 교복을 입고 클럽에 입장하길 바라는 만행을 저지르고, 개중 두 명의 남학생이 맥주를 옮기는 척하며 클럽 뒷문으로 입장하는 데 성공하기까지야 한다. 낯선 이들이 DJ가 이끄는 음악에 따라 맞춰 몸을 움직이고 있을 무렵,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어떠한 불정직한 일도 벌어지지 않을진대 왜. 인즉슨 이곳은 가까운 미래의 일본. 윤석열이 계엄에 성공했다면 벌어졌 상황을 재연하는 것도 같다. 경찰의 탈을 쓴 “부자와 권력층을 위한 고위 관료들”은 단순히 시민을 한 명 지정하여 그의 얼굴을 촬영하는 것만으로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신원 감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다만 말이 좋아 신원 감별이지, 경찰들은 클럽에 입성한 두 명의 소년 중 하나가 재일한국인이라는 정보를 습득하고서는 영주 증명서를 보여 달라 강압한다. ‘코우 짱’ 내지 ‘박 상’이라 불리는 그 소년은 일본에 거주한 지 4대째이며 (그렇다, 그는 자이니치 4세이다) 영주 증명서를 휴대할 의무가 없음을 명료하였는데도 경찰들의 손에 이송되어야 한다. 아마도 재일한국인 전형으로 추측되는 코우 짱의 대학 장학금 산정을 위해서라면 어딜 가든 고개를 조아리는 자기 어머니의 속을 썩이게 될 줄 예감한 것일까. 그는 작금의 전체주의적 일본이 낯설지 않은 듯하다.


현재 기점 일본의 현실과 사뭇 다르면서도 비슷해 뵈는 작중 상황은 극우의 지지를 얻으며 당선된 것으로 보이는 가상의 인물, 키토 총리로부터 뻗어나가는 정책이 낳은 결과물이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한 사람의 주장은 영토 전체에 펼쳐진다.


그러므로 작중의 일본이 낯설지 않은 인물은 코우 짱뿐이 아니다. 유치원 불알친구가 끌려가게 생겼는데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소년, 유타가 있다. 코우 짱과는 다르게 순수한 일본 태생이라는 까닭으로 경찰들의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유타는 마찬가지로 오인방의 일원인 동시에 우리 다섯 졸업하고 나서도 영원하자는 말을 남기거나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코우 짱에게 아이시테루, 하며 소리치는 등 수험생의 전형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았을 때 흔히 만나곤 하는 무기력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유타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친다면 똑같이 대우받아야 할 자신의 친구를 위해 가타부타하지 못한다니. 유타가 자신의 무능을 서서히 체감해 갈 그쯤.


건물 전체의 전기가 소등된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틈을 타, 지금이야. 뛰어!


클럽에 입장하지 못했던 밍, 아타리, 톰의 활약을 믿고 있었는지 코우 짱과 유타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 직후 죽을 힘을 다해 달린다. 교복을 입고 있는 다섯 청소년의 그림자가 일렬을 맞춰 바람을 가로지르고 머리카락 가닥가닥이 나부낀다. 오인방이 아주 커다란 초록 나무를 지나칠 적 프레임이 몇 초간 멈추면서 해피엔드라는 자막이 띄워졌다. 난 그게 좋았다. 나는 감히, 벌써 이 오인방의 행복한 결말이 찾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현실은 바람보다 쓰고 떫지 아니한가?


상황의 수준은 예상보다 심각해진다. 우선 오인방으로 대표되는 유타 혼자만의 기행은 교장 선생님의 스포츠카를 가로 아닌 세로로 세워둘 만큼 소꿉놀이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청소년들이 사고를 치면 얼마나 치겠어 하며 유타의 실행력을 얕잡아보고 있던 것이다. 당연히도 교장은 길길이 날뛰고 범인을 찾겠다며 전체 학생을 면담하지만 누가 자기가 한 일이라고 나서겠느냐는 말이다.


여기에서 사건이 종결되었다면 좋았으련만. 때마침 익숙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캐비닛 위 올려두었던 주전자가 떨어지고 벽에 걸쳐두었던 대걸레들이 마구잡이로 쓰러지고 교실 창문에 설치한 커튼이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린다. 학생들은 익숙한 상황이라는 양 머리를 필두로 한 자신의 신체를 책상 아래에 욱여넣고 철제 다리를 붙든 채 이 파동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한차례 지진은 큰 인명 피해를 남기지 않았으나, 현대 예술적으로 전복된 교장 선생님의 스포츠카를 선물한다. 그것은 꼭 배를 까뒤집은 벌레의 형상으로 보였다. 권력자의 만행이 시작되리라는 예고를 하듯.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지금부터 전개된다. 학교 중앙 외벽에 커다란 스크린을 설치하여 이곳저곳에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는 카메라들의 시야를 비춘다. 복장 불량이라면 벌점 1점. 카메라에 대고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면 벌점 2점. 벌점 10점을 채우면 부모님께 연락이 가거나 벌칙으로 청소해야 하고, 그 영광의 첫 번째 마이너스 10점 주인공은 제일 먼저 중지를 다섯 번이고 들어 보인 아타리. 학생들은 처음에는 화면에 아타리의 불량 행동이 포착된 상황을 보고선 깔깔 웃으며 즐거워하지만, 잠시만. 이것이 진짜로 웃고 넘길 일에 불과한가.


안 그래도 바깥에서는 썩어빠진 세상에 회의하여 키토 총리는 물러나라며 절박하게 외치는 길거리 시위가 부지기수로 진행되는 중이다. 연막탄이 비폭력 시위대의 시야를 가리면 기동대들이 닥치는 대로 무고한 시민을 잡아 과잉 진압하는 일이 빈번하다. 교실 뒷문 바로 앞자리에 앉아 권력자들의 횡포를 저지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여학생 한 명은 이미 시위대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이다. 어떤 쪽에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코우는 그녀에게 감화되었고, 유타는 그런 코우를 당최 이해할 수 없다. 학교 속 학생은 당연하게도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지 않았듯, 이처럼 어떤 사회적 조직에 속했건 시민들의 구체적인 일상은 직간접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국제 학교에서 감시카메라와 공존하는 일도 자유의 침해라는 관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강압적인 시스템의 횡포에 반응하는 경우의 수는 다음과 같다. 몇몇은 순응하고, 몇몇은 맞서 일어선다. 순응해야 할지 맞서 일어서야 할지 고민한다. 체제에 굴복하려다가도 문제점을 인식하거나, 반사적으로 화를 냈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최후의 순간에는 침묵하기도 한다. 공통점은 결국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설지, 한발 물러설지, 방조할지, ‘행동’과 ‘행동하지 않음’ 전부 선택의 영역에 있다.



영화의 중심에 우리의 주인공들이 있었다. 톡톡 튀고 참신하여 종종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을 안겨다 주기도 하는 유타의 생각은 원체 다섯의 친구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처음에 유타는 음악연구부의 열쇠와 장비를 빼앗긴 것에만 관심을 두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분노하지 않는다. 유타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의 시선이 가장 오랫동안 머무른 곳은 아마도 코우와 음악, 하여 둘이다.


유타는 떨리는 온 지면과 수면에 안달복달하며 불안감에 떨기보다는 이 순간 즐기기를 선택한다. 평소대로 얼굴의 모든 표정 근육을 다 써가면서 시원하게 웃으려면 떨리는 테크노 음악이 필요하고, 그 순간 유타의 옆에는 코우가 있어야 하니까. 코우가 이따금 본인의 자리에 앉아 다리를 떨 때 등에서까지 그 진동이 전해진다. 유타는 코우의 옆자리에 앉아 자신에게 있어 땅의 흔들림보다 더 커다란 그 진동을 목격하고 있다. 진동은 점차 세기를 부풀려 서로 정반대의 행보를 걷는 코우와 유타 사이에 균열을 일으킨다.


행인이 거의 지나가지 않는 길거리에서 두 소년이 음악 장비를 가운데에 두고 대치하던 그 밤, 나는 왜 지금, 이 순간에만 즐길 수 있는 십 대 청춘의 전유물을 유타가 가져서는 안 되는지 의문했던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유타가 왜 이 순간을 그 자체로 즐겨서는 안 되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을 온전히 포착하여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이에 반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책임을 떠맡는 선택까지도 전부 유타의 행보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유타는 끝까지 거시적 사회를 포기하려는 태도를 고수할 수도 있었다. 다만 유타는 그러지 않았다. 유타는 어떠한 선택을 했다. 코우가 엄마의 잔상을 눈앞에서 지워 버리지 못하고 교장에의 항의를 멈추었듯이. 중국말만 하는 아버지와 원만한 사이를 구축하기 시작한 밍과 같이. 스스로 개량한 교복을 졸업식에 입고 가 교장 몰래 웃음을 준 아타리와 같이. 졸업과 동시에 아버지의 고향인 미국행을 택한 톰과도 같이. 자신의 인생을 걸어나가면서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 세상에 하나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도록. 비록 불운하더라도. 매번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혼자의 경계를 넘어 우리 다섯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 서로만이 벌일 수 있는 행위를, 그에 따라 져야 할 책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시작하는 것이다. 해피엔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