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코난에 관한 짧은 고찰

헤어질 결심이 필요해

by 이지와


나는 원래 일종의 강박을 가지고 있다. 뭐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봐야 하는 것. 앨범 하나를 들어도 트랙 리스트 순서대로 재생해야 하고, 블랙 미러처럼 아무 회차나 골라 봐도 되는 옴니버스 단편선이어도 1화부터 차례대로 봐야 한다. 아무리 30년간 연재되고 있는 인기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경우라 해도 다르겠는가. 1기 1화를 볼 때까지만 해도 내가 1,000화를 훌쩍 넘기는 막대한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전부 보겠다는 구체적 다짐이 없었다. 재미있네? 하다 보니까 몇 기 지나 있고. 와 이거 미쳤네? 하다 보니까 몇 기를 더 보는 식이었다. 꾸준히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보길 반복했더니 돌연 재미없어지는 시점이 왔다. ―나 혼자만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코난이 완결을 질질 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발생한 현상이다, 참고로 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무조건 정배 속 시청자이다― 허나 이제 와 하차하거나 처음으로 돌아가기엔, 난 너무도 긴 길을 와버린 것이다.


여러분은 63빌딩에 5층 남겨두고 계단을 헉헉대면서 올라왔는데 그걸 전부 없던 일로 하실 수 있겠어요? 끝을 봐야 할 것 아니야, 끝을 봐야지.


몇 년 동안 그 고생을 하면서 명탐정 코난을 정주행한 덕에 난 이제야 2020년대에 들어섰다. 2022년 회차분을 막 보기 시작했고, 최신 방영 목록에 도달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4년 치뿐이다. 이미 1995년부터 27년을 휘감은 입장으로선 가소로울 뿐이다. 동시에 불안하기도 하다. 아오야마 고쇼 센세가 검은 조직 떡밥을 해결하면 명탐정 코난이라는 작품 자체가 끝나버리고, 그러면 소년선데이의 메가 히트작을 떠나보내는 셈이 되고, 출판사 직원들의 밥줄이 끊기고, 반동 효과로 지구까지 멸망하나 보다.


그렇지만 본디 사람의 손으로 창작하는 문화예술 작품이란 건 끝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아오야마 고쇼는 헌터X헌터 작가처럼 크게 아프지도 않으니 휴재할 핑계가 없다. 그는 완결을 향해 연재를 달려야 한다. 그의 옆 나라 독자인 나는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완결을 향해 마라톤을 따라잡고 있다. 내 기준, 전개에 치명적이라고들 하는 웬만한 스포일러는 시청함으로써 전부 섭렵했다. 한동안 떡밥 줄 게 없었는지 TMS 엔터테인먼트는 돌림노래를 반복하다가 최근에 경찰학교 편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다시금 나는 깨달았다. 중심부 전개에 하등 쓸모없는 곁다리 중에서도 곁다리 이야기를 끌어다 몸집을 부풀리고 있구나. 코난이 원래 몸 되찾는 데 작중 이미 죽은 경찰들 얘기가 왜 필요하냐고. 그 때문에 안쓰럽기도, 허탈하기도, 당황스럽기도 한 감정을 느낀다.


밥 먹여 주지도 않는 나의 강박 때문에 진작에 코난인지 재난인지에서 하차하지 못한 것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가장 다디단 물을 쪽쪽 빨아 먹자마자 미련 없이 껌을 뱉지를 못한다. 비유하자면 단물 빠진 지는 한참 지났는데, 원래 씹던 껌을 뱉지도 못했는데 절대로 그 껌을 뱉으면 안 된다며 누군가가 인공 착향료를 내 입안에 열심히 틈입하는 감각이랄까.


대외적인 나의 최애 캐릭터는 하이바라 아이(홍장미) 그리고 쿠도 신이치=에도가와 코난이지만, 인물 하나하나의 매력 포인트에 집중하며 착즙하는 나이는 지났기에 나는 그저 작품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장르’ 박스에 명탐정 코난을 살포시 얹어놓기 위하여 나는 아름다운 완결이 필요하다. 막상 떠나보내자면 얼떨떨하겠으나, 헤어질 결심하고 싶다.


그래야 이 사랑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