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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와우 Jul 31. 2019

여기 뉴욕 맞아? 지하철이 왜이래?

-뉴욕 지하철-편

이게 진짜 뉴욕이야


뉴욕에 처음 도착하면 누구나 지하철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뉴욕은 경제적으로 풍부하고 부자들 많은 도시 아니야?'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게 되는 뉴욕 지하철의 맨얼굴을 마주하면 당장 집에 가고 싶어진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깨끗한 최첨단 지하철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더더욱 적응하기 힘들다. 느리고 더럽지만, 복잡하기도 하다. 뉴욕에는 25개의 지하철 노선이 트랙을 공유하고 있다. 처음 이용하는 사람에게 익숙할리 없다. 나는 뉴욕 첫날부터 호된 지하철 신고식을 치뤘다.


브루클린 에어비앤비에서 첫날 밤을 보내고 맨해튼 서쪽 할렘에 위치한 학교 옆으로 짐을 가져다놓기 위해 캐리어 2개를 들고 지하철을 탔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왜 택시를 안탔었는지 모르겠다. 1,2,3번 트레인 중 아무거나 타서 116번가에 내렸다. 코끝을 찌르는 지린내에 '윽, 여기 학생들도 술을 진탕 마시나?' 라는 말도 안돼는 생각을 하며 거리로 나갔다. 부와아아앙-. 주말 대낮, 나는 그곳에서 오토바이 폭주족을 만났다. 6차선 도로에 한 열댓명이 오토바이 앞바퀴를 세우며 달리고 있었다. 거리는 온통 흑인들로 꽉 차 있었고, 한 번 지나갔던 폭주족은 다시 방향을 바꿔 왔다갔다를 반복했다. '레이싱 경기 중인가?' 라는 순진한 생각도 잠시 해보았지만, 차들은 빵빵- 경적을 울려댔다. '어떻게 된 거지? 여기가 어디지?' 동공이 흔들리고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캐리어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쳐다보는 흑인들과 눈을 마주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최대한 태연하고 익숙한 척 하며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 택시 아저씨는 빛의 속도로 나를 학교에 내려 주셨다. 택시 안에서 찾아보니 나는 할렘 한복판에 서있었다. 경로를 공유하던 1번 트레인과 2,3번 트레인이 북쪽에서는 갈라진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그렇게 할렘을 경험했다.



살랑이는 더운 바람에 밀려오는 지린내.

뉴욕의 지하철역에는 긴 트랙을 따라 걷다 보면 냄새가 나는 곳과 냄새가 안나는 곳이 있다. 냄새가 나는 곳 근처에 서 있다가는 지하철이 들어올 때 바람과 함께 밀려오는 지린내를 맡게 된다. 그 냄새를 모른다면 뉴욕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고 봐도 좋다. 억만장자의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겠지만, 뉴욕에서 나름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는 중상류층 사람들도 지하철을 많이 이용한다. 맨해튼은 주차할 곳도 찾기 힘들고, 그 비용도 비싸고, 위반 단속에 엄격하며, 맨해튼 통행 부과료가 붙기 때문에 여러모로 자동차를 끌고 도시로 나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득, 격차가 심하다고 생각했던 뉴욕이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그 지린내를 공유했으니까!


구정물에서 첨벙거리는 회색 쥐.

뉴욕에 관심 있는 당신이라면 지하철에 쥐가 있다는 사실은 많이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한다. '으... 뉴욕 지하철 왜 이렇게 더럽고 오래된 거 같지? 저 바닥에 시커먼 것들은 다 먼지인가? 청소 좀 하지...'라고 생각하며 트랙 밑을 보고 있으면 뭔가 슉- 하고 움직인다. 내가 처음 지하철 쥐를 보았던 곳은 타임스퀘어(42nd Street)였다. 관광객 모드였던 나를 포함하여 지하철역에는 관광객들이 많았었는데, 트랙에 쥐가 지나가자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 들며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은 지하철의 쥐마저도 좋은가보다... 뉴욕에서는 이제 쥐도 관광객 필수 코스가 되어버렸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뉴욕 지하철이 발전할 수 없는 이유 중에는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얘기가 있다. 떠도는 가설일 뿐이지만 나름 그럴싸하다. 뉴욕 지하철이 가끔 정전이 될 듯 말 듯 깜빡깜빡 거리는 데, 이 또한 정확한 출처는 모르겠지만, 그게 테러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적응 훈련이라고 들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뉴욕 지하철은 지하에 있지만 지상과 뚫려 있거나, 지상으로 다닌다. 그래서 지하철 역은 자연스럽게 '외부'가 된다. 즉, 여름에는 열이 빠져나가지 못해 후덥지근하고, 겨울에는 얼어 죽을 듯이 춥다. 또한 뚫려있기에, 비나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마비되기 일쑤이다. 뉴욕의 날씨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데, 간절기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쏟아졌다가 해가 쨍쨍 해졌다가를 반복하기도 한다. 어느 초겨울, 예상보다 빠른 첫눈이 맨해튼의 교통을 마비시켰다. 그 날 평균 퇴근시간은 3시간이었다. 그나마 지하철이 빨랐고, 버스와 택시는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주말이면 자주 바뀌는 노선.

지하철은 뉴욕의 주요 교통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에는 여기저기서 공사를 한다. 안 다니거나, 일찍 끊기거나, 경로가 변경되거나, 연착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처음에는 약속 시간에 늦을 때마다 너무 화가 나서 '왜 하필 주말에 공사를 하냐!'라고 성질을 냈다. 아무래도 뉴욕은 '놀이'보다는 '일'이 우선인 도시여서 그런 것 같다. 평일 뉴요커들의 출퇴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새벽에 일터로 나가는 노동자들도 있고, 9-11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하는 직장인들, 여기저기 미팅을 다니는 프리랜서들, 오후 가게문을 여는 셰프들 등등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그래서 보수/수리 공사는 대부분 금요일 밤에 시작된다. 불편하지만 주말에는 평소보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지, 안 그러면 혼자 씩씩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럽다? 위험하기도.

뉴욕 지하철이 더럽기만 하면 다행인데... 위험하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난간이 없는 곳에서 취객 사고 등이 일어나기도 했었는데, 뉴욕은 더 잦은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트랙으로 뛰어드는 사건도 있지만,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서 사고가 나기도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세계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혹은 교내적으로 추모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학교에 펄럭이던 깃발들이 내려가곤 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 학교 지하철 역에서 아침에 우리 학교 학생이 철도로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있던 날, 지하철은 학교 정거장에 한동안 멈추지 않았고 어김없이 학교 깃발이 내려가 있었다. 또, 중국인을 혐오하는 사람이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착각하고 플랫폼에 밀었던 안타깝고 어이없는 사고도 전해 들었다. 미국판 셜록 <ELEMENTARY>에도 누군가를 플랫폼으로 밀어버리는 범죄가 발생한다. 그 이후부터 나는 언제나 '안전지대'를 찾고 핸드폰에 너무 빠져있기 않는 습관을 들였다. 뉴욕에서는 어떤 일도 예측할 수 없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홈리스는 지하철 역에만 있나? 안에도 있다.

뉴욕 홈리스(Homeless)는 쥐만큼이나 유명하다. 지린내의 근원이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지하철역 의자에서, 혹은 바닥에서 혹은 계단에서 자고 있거나 소리 지르고 있거나 째려보고 있거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솔직히 무섭고, 피하는 게 상책이다. 정말 가끔 서로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분들이 있는데, 대단하단 생각을 한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 주간이었다. 퇴근을 하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그 지하철역은 특이하게도 계단이 차단되어 있고 엘리베이터만 3대 운행되는 곳이었다. 화재 등의 위급상황 시 안전하지 않은 여건이라고 늘 생각해왔던 곳이다. 갑자기 방송이 울렸다. '어떤 미친놈(정말 crazy guy라고 했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들고 뛰어다니니 조심하세요. 사람들이 보이면 함께 모여있도록 하세요.' 거의 동시에 한 층 위 엘리베이터 내리는 쪽에서 비명소리들이 들렸다. 한 동양인의 왜소한 아줌마가 방송을 듣자마자 재빠르게 플랫폼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Come on!  Come on!" 관광객처럼 보이는 가족과 나, 다른 직장인이 모였다. 정적이 흐르고 혹시나 그 미친놈이 트리를 들고 뛰어올까 조마조마하면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1-2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는데 폐쇄적인 지하철역이어서 더 심장을 졸였던 기억이 있다.


뉴욕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그래서 지하철에서도 다양한 장면을 보게 된다.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낭독을 하거나,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이런 것도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데, 나는 괜찮았다. 처음에는 재밌었고, 나중에는 편안했다. 그런데 지하철에는 홈리스도 탄다. 심지어 인파가 많을 때에도 타서 소리를 지른다. "Please Help Me!"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배고프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다양하지만 모두 당당하다. 재밌는 것은 돈을 많이 받는 사람들의 태도는 정해져 있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껄렁껄렁한 사람들에게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자칫 뻔뻔해 보였던 당당하게 도와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도움을 받는다. 작은 목소리로 소심하게 '도와주세요...' 하는 사람은 모두 들은 척 만 척한다. 신기했다. 홈리스들의 프레젠테이션과 사람들의 반응에서 나는 '태도attitude'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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