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바스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딱히 없었다. 접점이라고 해 봤자 소품으로 잠깐 몇 번 마주친 것밖에. 그런데 왜 하필 타바스코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고민을 해 보기는 했다.
습관적으로 접속한 텀블벅에서 우연히 소스에 관한 책을 보게 됐다. 여러 가지 소스의 일러스트를 삽입하고 그것의 활용법을 간단히 적어 놓은 책이었다. 펀딩을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끝날 때까지 하지 못했다.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였나. 그 뒤로 이상하게 내 주변 어딘가에 있는 소스들이 눈에 밟혔다. 그러다가 갑자기 타바스코가 떠올랐다. 맛이 특별하게 기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색이나 병의 디자인이 예뻐서 그냥 저것을 가지고 싶었거든. 세상에 존재하는 예쁜 것은 다 내가 가지고 싶은 욕구에서 기인한 거겠지.
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흐르는데, 그러다 보니 예전에 마트에서 봤던 인상 깊은 장면이 떠올랐다. 소스 코너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몰려 있어 새로운 요리 재료에 대한 니즈가 확실히 커졌구나 감상했던 그날. 그래서 다시 되짚어 생각해 보니 최근 들어 매운맛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뽐내는 사람들이 주변에도 많아졌다는 결론까지 도달했다. 한참 전에는 분명히 우리 엄마밖에 없었는데. 그 시작이 엽기떡볶이의 등장인지, 불닭볶음면의 흥행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한 건 처음보다 그런 자극적인 맛에 사람들은 더 열광한다. 이 사회가 주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그런 짜릿하고도 강렬한 자극으로 해소시키는 걸까. 나 이렇게 힘들고 아프고 고통받고 있어요, 라는 말을 그렇게 자기 자신의 통각을 학대하면서 승화시키려는 걸까. 뭐가 됐든 곪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예전에는 알코올을 들이켜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바늘로 몸을 찔러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되었다. 이상하게 바늘이 내 몸에 상처를 내며 그림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바늘의 바운스를 느끼며 통쾌해하고 있는 것이다. 혀의 통각 세포를 그렇게 자극시켜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과 비슷하겠지.
아무튼 이런 이유로 타바스코가 첫 번째 스토리로 선정되었다. 아주 오래 품에 품다가 이제 세상에 내보내서 그런지 몇 번을 반복해서 살피게 된다. 그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것, 아쉬운 것들이 새롭게 들어와서 역시 처음은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언제쯤 잘하게 될까 생각하게 만든다.
잘 가, 타바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