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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May 04. 2020

0. 그래서 나는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왜 '이곳'은 항상 무료하고 권태로우며, '저곳'은 항상 설레고 낭만적인가


 수많은 사람들은 반복적인 일상을 숨 가쁘게 살아가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대학생들은 종강만을 기다리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악착같이 절약하고 직장인들은 공휴일과 주말 사이 절묘하게 위치한 날짜에 황금 같은 휴가를 기꺼이 투자한다. 연간 음원차트에는 항상 여행을 다룬 가사의 곡이 순위에 들고 유튜브를 포함한 각종 sns 채널에서는 여행 관련 컨텐츠가 차고 넘친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질문하면 대부분 행복한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짓다가 그럴듯한 이유를 여러 가지 나열한다. 하지만 열거한 내용들이 과연 굳이 여행을 떠나야만 이룰 수 있는 것들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그렇지 않은가. 여행에서 쓰는 만큼의 돈을 서울 시내에서 쓰고, 매일 맛있는 음식과 멋있는 풍경을 보러 다니고, 하루를 살면서 가장 큰 걱정과 고민이 당장 내일 뭐하지 저녁은 무엇을 먹지 따위의 것들이라면. 상상만으로 행복해지지 않나요.

 

 하지만 여행이 주는 것, 그리고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쾌가 아니다. 낯섦이 주는 이질감과 새로움이 주는 설렘의 오묘한 조화 속에서 온전히 나 자신과 그 순간에만 집중하는 경험은 여행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이 형용할 수 없는 마약 같은 감정이 사람들을 그렇게 공항으로 이끄는 것이다.




필연적 결심과 우연한 기회


 여행이 주는 새로운 감각 경험을 쫓아 여행을 다닌 것도 어느덧 4년 차가 되었다. 여타 대학생들처럼 학기 중에는 과외를 통해 정신없이 돈을 벌었고 매 방학마다 캄보디아, 마카오와 홍콩, 일본 등 친구들과 삼삼오오 어디선가 들어본 유명한 관광지를 향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다녀올수록 무언가 충족되지 않는 갈증이 계속해서 마음에 자리 잡아 점점 깊어져 갔다. 그 정체는 미지를 향한 근거 없는 기대, 막연함에 대한 이유모를 설렘이었다. 21살 여름에는 브루나이와 말레이시아 국경을 해가 진 후 해로를 통해 건넜고 겨울에는 홀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랐다. 22살 때는 쏟아지는 별 아래서 보드카를 마시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몽골에 다녀왔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미지를 향한 기대는 확신에 찼고 막연함에 대한 설렘은 끝을 모르게 커져갔다.

 

 이런 내가 아프리카에 갑작스레 꽂히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매번 새로운 곳을 추구하던 나에게 다음 여행 버킷리스트는 아프리카가 되었고 바오밥나무를 보고 싶다는 소리를 입이 닳게 해 왔었다. 하지만 동시에 실현 가능하다고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래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에 아직 나는 대학생이니까 괜찮아- 라는 치기 하나로 다녀올 만한 곳은 아니지 않은가. 또 경비를 위해 별 볼일 없는 능력까지 일거리에 쏟아부어야만 했다.  스스로에게 느끼는 불안과 부담도, 또 내 주변 사람들의 애정이 담겼지만 한심한 시선이 적당히 어린 조언들도 모두 무시해야 할 판이었다. 결국 나도 모르게 당연히 한동안은 갈 수 없을 것이라 판단을 내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우연한 곳에서 찾아왔다. 절친한 친구의 이름만 몇 번 들어본 친구가 무려 짐바브웨에서 한 학기 동안 인턴을 해왔고, 인턴이 끝난 기념으로 귀국 전까지 남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프리카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을 잘 알던 절친은 나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었고, 이미 말레이시아와 몽골을 함께했던 우리는 흔쾌하게 아니 흥분해서 여행 제안을 받아들였다. 또한 이미 아시아를 횡단하고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던 지인과 연락이 닿았고 원래 이집트에서 배낭여행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지인은 우리와 함께 남아프리카에서 집결하는 것으로 계획을 선회했다. 이렇게 4명의 (서로 잘 모르는) 대학 동기 여행 팟이 결성되었고 계획은 일사천리였다.


정신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황열 주사를 맞다가 끙끙 앓고, 주변에 급하게 여행 소식을 알리고, 구글 지도와 에어비앤비에 예약 장소들을 표시하고, 잘 나오지도 않는 리뷰들을 찾아보며 설레 하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출국 당일이었다. 3주간의 아프리카 자유여행, 짐이 많아지는 게 싫었던 나는 결국 한겨울에 패딩도 포기하고 인천공항을 향해 묵직한 캐리어를 끌었다.




유나야 너 또 '그런 곳' 여행 가?


 나 방학 때 아프리카 가기로 했어. 친한 친구들에게 잔뜩 신난 말투로 자랑을 할 때 들었던 대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다.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너무 모호한 표현으로 정확하게 내 여행 성향을 짚어내서.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 모두가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런 곳만 여행하냐는 질문에, 미지를 향한 기대와 막연함에 대한 설렘 때문이라는 (나는 진심이지만 듣기에) 뜬구름 잡는 식의 대답은 하고 싶지 않았다.

 

 도시와 인프라는 이미 서울 한복판에서도 충분해. 소매치기와 인종차별에 대한 걱정은 넌더리가 나. 블로그와 유튜브에 도배된 유명 관광 스팟에서 수많은 한국인들과 부대끼는 경험도 딱히 유쾌하지는 않더라. 그리고 무언가를 '다 봤다'는 느낌이 드는 게 싫어. 특히 멋진 도시나 유명한 유적지를 가서 한 바퀴 돌고 나면 드는 느낌 같은 거 말이야.


  한편 이러한 답변들은 '그런 곳'을 향하는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냥 그렇지 않은 곳들을 여행하기 싫은 구차한 이유일 뿐이었다. 역시 내가 '그런 곳'을 여행하는 이유는 결국 막연함이니 설렘이니 따위의 현실에선 씨알도 안 먹힐 낭만적 자아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내면의 낭만주의는 생각보다 강력해서, 여행 전의 나는 그저 아프리카에 간다는 사실 하나에 너무 설렜고 다신 없을 기회라는 생각에 온갖 걱정과 막연한 불안감을 모두 무시하고 비행기에 올라 버린 것이었다.


 결론은 뭐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는 뜻이다.) 어땠냐고? 글쎄 '즐거웠다'같은 류의 범용적인 말로 여행을 수식하는 것은 3주의 경험들을 퇴색시킬 거 같아 하고 싶지 않다. 우선은 그저 우연한 기회를 충동적으로 잡아낸 것이 전혀 후회되지 않을 정도라고 요약하고 싶고, 자세한 순간들의 경험과 감정은 이제와서야 하나씩 써내려 보려 한다.

 

코로나로 인해 어딘가로 떠난다는 상상 자체가 사치가 되어버린 사람들

어린 왕자와 연금술사를 읽고 자라며 낭만을 키워온 사람들

대학 동기 4명이서 호기롭게 다녀온 우당탕탕 여행기가 궁금한 사람들

모두에게 앞으로의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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