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자 성씨의 일일
2023년에 가장 잘한 일은 운전을 시작한 것이다. 면허는 2016년에 땄었는데, 여유가 없어 계속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을 했었다. 가는데 한 시간 반, 오는데 한 시간 반 남짓이면 매일이 세 시간씩이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정말 고행 그 자체였다.
‘아아, 제발 혼자 있고 싶어!’를 수천 번 수만 번 외치며,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몸을 밀어 넣는다. 넘어지거나 갑자기 멈추기라도 할지라면 그 자리에서 즉사할 경사를 지닌 에스컬레이터를 두어 번 정도 탄다. 넘쳐나는 인파 속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또다시 다른 노선의 만원 지하철로 재빨리 갈아탄다. 하나 놓치고 나면 마냥 기다려야 하므로 배차 타이밍은 생명이다. 지하철을 타면 둘 곳 없는 시선은 책이나 휴대폰에 겨우 둔다. 대중교통 타는 중요한 팁 중 코 밑에 핸드크림을 바르라는 말과, 이미 전철은 지하에 다니는 걸레짝이다, 와 같은 말들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인간을 대하는 직업을 가질 것, 그리고 매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할 것. 이 두 가지를 충족하면 인간혐오의 길로 이를 수 있다는데 나는 그렇게 7년 정도를 다녔다. 지하철은 량은 늘리지 않고 노선만 계속해서 늘리는 통에, 점점 배차간격은 늘어나고 사람도 계속해서 늘어났다. 지하철에도 버스에서도 늘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꽉꽉 서서 간다.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고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무 죄도 없는 바로 옆 사람에게도 환멸감이 느껴진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다리를 벌리고 앉나, 저 사람은 왜 앞문으로 타지 않고 뒷문으로 타나, 저 사람은 왜 나를 미나,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시끄럽게 영상을 보나. 1분 1초 쉬지 않고 일하다, 출근길 퇴근길까지 시달려서 오가다 보면, 이미 집에 와서는 녹초가 되어있다. 그렇게 겨우, 겨우 몸을 뉘인다. 쉬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하기 위해 쉬는 기분이다.
그러다 드디어 올해 봄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여름과 짧은 가을이 지나고, 이제 겨울. 지나와보니 지금 드는 생각은, ‘와 세상에. 아니 도대체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했나!’
시간이 남고 에너지가 남았다. 매일 세 시간씩을 이동하기 위해 가졌던 시간이 하루 한 시간으로 줄었다. 누군가에게 시달리지 않고 혼자만의 독립적인 공간에 있는 것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소음을 견디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음악을 듣기 위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옷차림도 달라졌다. “왜 그렇게 꽁꽁 싸매고 다녀요?”라는 질문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통근자에게 하지 말지어다. 새벽에 출근하고, 해가 져서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정말 으슬으슬 너무 추워 무장을 하고 다닐 수밖에 없다. 운전을 하니 비가 와도 싫지 않았다. 우산 펼친 것을 접고, 다른 사람에게 물방울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온통 꿉꿉하고 축축한 곳에 몸과 우산 모두를 구겨 넣지 않아도 된다.
특히 뿌듯했던 일은 소중한 이들을 태워줄 때였다. 근교 미술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처음으로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외식을 할 때는 처음으로 엄마 아빠 두 분 모두 술을 드실 수 있었다. 사랑하는 강아지를 데리고 병원이든 반려견 놀이터든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운전하는 게 꽤 재미있기도 하고,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할 수 있다는 게 나름의 기쁨이 꽤 컸다.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 새삼 그동안 나를 한 번이라도 차에 태워주셨던 분들의 따순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를 태워준다는 것은 정말 그 자체로‘마음’이었다. 옆에 누군가 타게 되면 더 세심하고 차분하게 신경 써 운전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전에도 수고로움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은 있었지만, 운전을 하게 되고 보니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가 더 느껴져 마음 한켠이 찌르르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어느 선 이상의 공감을 하려면 정말‘내가 직접 해 봐야’더 잘 안다.
언젠가 80세 가까이 되신 이모할머니께서‘내가 여자로 태어나 가장 잘한 것이 운전’이라며, 얼른 하라고, 언제 할 거냐고 재차 권하셨던 것을 왜 그러셨는지도 이제야 알았다. 그래서 나도 초보운전자이면서, 아직 운전을 하지 않는 주변 친구들에게 운전하니까 정말 너무 좋다고 자꾸 강력 추천을 하게 되었다. 영업은 성공해서 친구 한 명은 올 가을 면허를 따고 운전하기 일보직전이다. 그래 우리 같이 운전하자! 삶이 바뀌는 커다란 경험, 인생의 스팩트럼이 넓어지는 경험들 중 하나가 ‘운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어쩌면 꽤 오래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기에 그 기쁨과 뿌듯함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진정 좋은 것은‘자유로움’이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 자체가 정말 진정 진짜 너무나도 좋다. 내가 나를, 내가 원하는 다른 곳에, 내가 데려다 놓아줄 수 있다.
아직 혼자서 운전해서 아주 멀리까지 가보는 여행은 해보지 못했다. 올 겨울부터는 내가 나를 좋은 곳으로 많이 데려가 주고 싶다. 깊은 숲 속에서 창문을 다 열고 피톤치드를 가득 마시며 달려 보고싶다. 빗소리를 들으며 운전을 하다, 어느 호젓한 까페에 가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책도 보다 오고 싶다. 운전이 익숙해지면 어느 자동차 광고의 꼬불꼬불한 드라이빙 코스도 가보고 싶다. 바다가 보이는 해안 도로에서 운전하다 풍경 좋은 곳에 멈추고 멍도 때리고 싶다. 또 언젠가는 끝이 안 보이는 지평선 드넓은 외국 평원에서도 씽씽 달려보고도 싶다.
내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줄까. 무척이나 궁금하고 기대되며 설렌다. Driver Sung, Drive for me. Go Go !
글 2023.11. 성지연
그림 Grant Haff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