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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Mar 04. 2023

글 쓰던 사람 맞나요?

무슨 일이 있어도 중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글을 쓰겠다는 나와의 약속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일이 내 맘대로 되게 가만 놔두질 않는다. 


글쓰기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말로만 듣던 번아웃이 나에게 왔다. 야근행렬이 연일 이어지고 주말까지 일하게 되면서 내 영혼은 탈탈 털리게 되었고, 일하지 않을 때는 좀비처럼 늘어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휴~시간이 없다고, 글을 쓰지 못하는 걸까? 설마,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글 한편 쓸시간이 없는 걸까?


내가 글을 쓰지 못한 건,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서이다. 글이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 주지 못해서이다. 내 마음과 내 머리는 일로 꽉 차버렸고, 조금이라도 글쓰기에 곁을 주지 않았다.  사실 일거리가 꽉 찬 그 상황을 글감으로 쓰면 될걸… 모든 영혼을 끌어 일을 하고 싶은 욕심에 그것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퇴근하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마감 하려는 숫자가 날아다녔고, 정리하지 못한 서류의 잔상들이 스크레치처럼 남아 있었다. 내가 책임감이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닌데 왜 이리 열심히 일을 하는지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아무리 야근이 많아도, 시간이 없어도 마음 한 구석에 글감이란 씨앗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요 몇 주간 일감이 글감을 밀어내었다.  


이제 회계마감도, 인수인계도 끝났다. 발령지도 작은 초등학교라서 번아웃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글을 다시 써야 할 때가 왔건만, 왜 그럴까.


한번 일로 꽉 찬 내 머리가 다시 글로 채워지지 않는다. 내 몸은 책상보다 침대를 좋아하고, 내 눈은 내 글보다 유튜브를 보고 싶어 한다.  지친 마음을 글로 달랠 수 없다. 여기서 글쓰기를 이어갈 끈을 놓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이 고민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글 하나를 이렇게 엮어 낸다. 이제 끈을 놓지 않고 엮었으니 계속 이어나가야겠다.


새로운 일터에서 새로운 업무로 다시 바쁘게 되었지만, 그 핑계로 머리를 일 로만 채우지 않으려고 한다. 내 영혼을 끌어다 일을 시켜도, 일주일에 한 번은 제자리로 갖다 놓고 글 쓰기를 시켜야겠다. 일은 60세까지만 할 거지만, 글쓰기는 평생 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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