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시대, 나의 얼굴은 누구의 것인가

초상권

by 유영



어느 화요일 오후, 나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톰 행크스가 치과 보험 광고에 등장했다는 뉴스를 읽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톰 행크스는 그 광고에 출연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얼굴이,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딥페이크라는 기술을 통해 그곳에 있었을 뿐이다.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신의 얼굴이 자신의 것이라고, 당연하게 믿어왔다. 마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같은 사람이라고 믿는 것처럼. 하지만 기술은 그 당연함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존재의 증명, 혹은 얼굴이라는 경계

법원은 초상권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그 밖에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해 함부로 촬영되거나 영리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건조한 문장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중요한 무언가가 담겨 있다. 우리의 얼굴은 단순한 생물학적 구조물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인격의 외피이자, 존엄의 시각적 발현이라는 것.


음성권 역시 같은 맥락이다. 스칼렛 요한슨이 OpenAI의 'Sky'라는 AI 음성 비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가 느꼈을 기묘함을 상상해 본다. 자신이 발화하지 않은 말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듣는다는 것. 마치 도플갱어를 마주친 듯한, 존재론적 불안감.

법은 이것을 '인격권'이라 부른다. 유명인이든 무명인이든,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부여된 권리. 돈으로 환산할 수 없고, 양도할 수도 없는, 그런 종류의 권리.


이름값이라는 이상한 화폐

그런데 세상에는 또 다른 종류의 권리가 있다. 퍼블리시티권. 1953년, 미국의 한 껌 제조사가 유명 야구선수들의 사진을 둘러싸고 벌인 소송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이 권리의 핵심은 간단하다. 유명인의 얼굴과 이름에는 '이름값'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치는 재산처럼 거래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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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 화이트라는 미국의 방송인이 있다. 그녀는 '행운의 바퀴'라는 게임쇼의 진행자였는데, 삼성이 VCR 광고에 금발 가발을 쓴 로봇을 등장시켰다. 얼굴은 똑같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바나 화이트를 연상시키는, 그런 캐리커처였다. 법원은 이것도 권리 침해라고 판단했다.

흥미로운 건 한국의 변화다. 과거에는 '수지 모자', '유이 꿀벅지' 같은 상품명에 대해 법원이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부정경쟁방지법에 관련 조항이 생겼고, 민법 개정안에서는 '인격표지영리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논의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전환이다. 이 권리는 유명인만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부여되는 권리를 지향한다. AI가 일반화된 시대에, 누구든 자신의 정체성을 도용당할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창작의 순간, 권리의 탄생

저작권은 다른 지식재산권들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특허권이나 상표권은 특허청에 등록해야만 권리가 생긴다. 식당 벽에 붙은 "감자탕 레시피 특허 출원 중"이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출원'은 그저 심사를 신청했다는 뜻일 뿐, 아직 권리가 발생한 건 아니다.

반면 저작권은 창작하는 순간 자동으로 발생한다. 내가 지금 이 문장을 쓰는 순간, 별도의 등록 없이도 저작권이 생긴다. 마법 같은 일이다.


물론 모든 것이 저작물이 되는 건 아니다. 법원은 창작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기준은 생각보다 낮다. "남의 것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고 저자 나름대로의 정신적 노력이 담겨 있는 것"이면 충분하다. 세 살배기 아이가 그린 그림도, 베낀 게 아니라면 저작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작권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저작인격권. 작품을 공개할지 결정하고, 이름을 표시하고, 내용을 함부로 바꾸지 못하게 할 권리. 이건 평생 창작자에게 속한다. 양도할 수도, 상속할 수도 없다.

다른 하나는 저작재산권. 복제하고, 배포하고, 공연할 권리. 이건 다른 재산처럼 거래할 수 있다. 가수 임창정이 "돈이 없어 <소주 한 잔>의 저작권을 팔았다"라고 했을 때, 그가 판 건 바로 이 권리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노래의 '저작자'이고, 저작인격권은 그에게 남아 있다.


경계에 선 우리

결국 이 모든 권리들은 경계에 관한 이야기다.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 인격과 재산 사이의 경계. 창작물과 아이디어 사이의 경계.


초상권과 음성권은 모든 사람의 인격적 존엄성을 지킨다. 퍼블리시티권은 유명인의 경제적 가치를, 이제는 모든 사람의 정체성 이용권을 보호하려 한다.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는, 인격권과 재산권이 혼재된 독특한 권리다.


AI가 만든 내 얼굴이 광고에 등장하고, 내 목소리가 내가 하지 않은 말을 하고, 내가 쓰지 않은 글이 내 문체로 쓰이는 시대. 우리는 이제 이 경계들을 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오후의 카페는 여전히 평화롭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얼굴이, 목소리가, 창작물이 허락 없이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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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성원영 교수님의 '문화예술저작권'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가 개인적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