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내 창작물을 가져간다는 것

문화예술저작권_업무상저작물

by 유영


화요일 저녁, 한 디자이너가 카페에서 말했다. "제가 야근해서 만든 디자인인데, 회사 거래요." 그의 목소리에는 허탈함이 스며 있었다. 밤새 고민하고, 주말을 반납하고, 혼을 담아 만든 작품. 하지만 법은 말한다.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고.


이것이 '업무상저작물'이다.


창작자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지금까지 명확한 원칙을 배워왔다. 창작한 사람이 저작자가 되고, 저작자가 모든 권리를 가진다고. 원숭이가 셔터를 눌러도 저작권이 없는 이유가, 인간만이 창작의 주체이기 때문이라고. AI가 그림을 그려도 인간의 개입이 없으면 저작물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 원칙에는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업무상저작물.


법은 이렇게 규정한다. "법인·단체 그 밖의 사용자의 기획하에 법인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업무상 작성하는 저작물." 쉽게 말하면, 회사에 다니는 당신이 업무 중에 만든 창작물은 회사의 것이 된다는 뜻이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만들었는데, 내 이름으로 서명했는데, 내 밤과 주말을 쏟아부었는데. 하지만 저작권은 회사에 있다. 더 기묘한 것은, 저작재산권만 넘어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저작인격권까지 회사가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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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인격권. 우리가 배웠던 그 권리. 일신전속적이어서 양도할 수 없고, 상속도 불가능하고, 오직 창작자 본인에게만 속하는 그 권리. 그런데 회사원이 업무로 만든 것은? 법이 그냥 회사의 것이라고 선언해버린다.

이것을 '의제(擬制)'라고 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법이 그렇다고 가정하는 것. 일종의 법적 픽션.



롯데월드의 롯티는 누구의 것인가

1989년, 롯데월드가 문을 열었다. 그곳의 마스코트, 롯티와 로리. 사랑스러운 너구리 캐릭터들은 수십 년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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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캐릭터를 실제로 디자인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한 디자이너가 롯데월드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롯티를 창작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캐릭터라고 주장했다. 법원에 갔다.


법원의 판단은 명확했다. 업무상저작물이므로 저작권은 롯데 측에 있다고.


디자이너는 항변했다. 회사가 명시적으로 지시한 게 아니라, 자신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법인의 기획'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법원은 '묵시적 기획'도 인정했다. 명시적으로 "이렇게 그려라"고 지시하지 않아도, 조직 내 보고 체계에 따라 상급자에게 보고되고 승인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디자이너가 야근하며 스케치하고, 주말에 수정하고, 자기 영혼을 담아 완성한 롯티. 하지만 법은 말한다. 그것은 롯데의 것이라고.


미국의 다른 풍경

흥미롭게도, 미국에는 'Work Made for Hire'라는 제도가 있다. 우리의 업무상저작물과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미국에서는 직원뿐만 아니라 프리랜서가 위촉받아 만든 작품도 업무상저작물로 인정될 수 있다. 계약서에 명시하기만 하면.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한 음악감독이 한국 영화사와 계약을 했을 때의 일이다. 할리우드 변호사가 보낸 계약서 초안에는 당연하게도 'Work Made for Hire' 조항이 들어 있었다. 모든 저작권을 영화사에 양도한다는 내용.

한국 영화사 측은 당황했다. 한국에서는 보통 음악감독이 저작권을 보유하는데?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이것이 표준이다. 콘텐츠 산업의 수도에서, 유통과 수익화를 위해 선택한 방식. 넷플릭스가, 디즈니가, 모든 제작사가 저작권을 가져간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차이일 뿐.


중국도 마찬가지다. 법인 또는 비법인 조직의 주관으로, 법인의 의지대로 창작하고, 법인이 책임을 지는 저작물. 한국과 거의 똑같은 조항이 중국 저작권법에도 있다.


저녁이 내리는 사무실

화요일 저녁, 디자이너는 여전히 사무실에 앉아 있다. 모니터에는 새로운 캐릭터 스케치가 떠 있다. 회사 신제품의 마스코트가 될 캐릭터.

그는 안다. 이것이 완성되면, 저작권은 회사에 속한다는 것을. 자신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는 계속 그린다. 선을 다듬고, 색을 입히고, 표정을 조정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일이고, 그것으로 월급을 받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창작한다는 행위 자체가 그를 살아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업무상저작물. 창작자 원칙의 유일한 예외. 법적 픽션.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중국에서는, 한국에서는. 모두 비슷한 시스템을 선택했다. 유통과 수익화를 위해. 명확한 권리 귀속을 위해.


롯티는 디자이너의 것이 아니라 롯데의 것이 되었고, 수많은 캐릭터와 디자인과 프로그램들이 창작자가 아닌 법인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간다.

이것이 좋은가, 나쁜가? 정답은 없다. 다만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고,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구조일 뿐이다.

오후의 사무실은 여전히 밝다. 형광등 불빛 아래, 누군가는 디자인을 하고, 누군가는 코드를 짜고, 누군가는 기획서를 쓴다. 그들이 만드는 것은 회사의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쏟아지는 땀과 고민과 창의성만큼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

그것만은 온전히 창작자 본인의 것이다.



참고: 법률 정보 요약 (제1편)

업무상저작물의 정의

법인·단체 그 밖의 사용자(이하 '법인 등')의 기획하에 법인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업무상 작성하는 저작물

법인 등의 명의로 공표되는 저작물 (저작권법 제2조)


업무상저작물의 저작권 귀속

저작자: 법인 등 (창작자 원칙의 유일한 예외)

저작재산권: 법인 등에 귀속

저작인격권: 법인 등에 귀속 (법적 의제를 통해)

일신전속적 권리인 저작인격권도 예외적으로 법인이 보유


업무상저작물 성립 요건

법인의 기획: 명시적 또는 묵시적 기획 포함

업무에 종사하는 자: 정규직, 계약직, 파견직 등 포함

업무상 작성: 직무와 관련된 창작

법인 명의로 공표


'법인의 기획' 해석

명시적 기획: 구체적인 지시나 명령

묵시적 기획: 조직 내 보고 체계에 따라 상급자에게 보고되고 승인된 경우도 포함

자발적 창작이라도 업무 체계 내에서 승인되면 기획 요건 충족


개인사업자의 경우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대표)도 '사용자'에 해당

직원이 만든 업무상 저작물의 저작권은 개인사업자에게 귀속


주요 판례: 롯데월드 롯티 사건

디자이너가 창작한 캐릭터 '롯티'에 대한 저작권 분쟁

법원 판단: 업무상저작물로 인정, 저작권은 롯데 측에 귀속

묵시적 기획도 '법인의 기획' 요건 충족 가능


국제 비교

미국 'Work Made for Hire': 직원뿐 아니라 위촉받은 프리랜서 작품도 포함 가능

중국: 한국과 유사한 업무상저작물 제도 운영

할리우드: 저작권의 제작사 귀속이 표준 계약 조건


핵심 원칙

업무상저작물은 창작자 원칙의 유일한 예외

실제 창작자가 아닌 법인이 저작자 지위 획득

유통과 수익화의 효율성을 위한 제도적 선택


이 글은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성원영 교수님의 '문화예술저작권'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가 개인적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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