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계획적으로 탕진하기 ②
'바나 힐'로 향하는 그랩 택시 안, 나와 동행인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기사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한국에서 오셨나요?"
"어.. 네!"
그 대답과 함께 택시 안을 가득 채우던 현지 라디오 음성이 '프리스타일 - Y'로 전환되었다.
"한국 너무 좋아요. 노래 좋은 거 너무 많고, 드라마도 봐요."
흘러나오는 K-POP마다 정확한 음정과 박자로 흥얼거리는 기사님의 모습이 신기했다. 타지에서 보고 느끼는 우리나라 문화가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장금이 알죠? 장금이 봤나요?"
기사님의 물음에 문득 간밤의 숙소 텔레비전에서 본 우리나라 예능 방송이 떠올랐다. 머나먼 타지에 와 전원을 켠 텔레비전에서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을 맞닥뜨릴 줄은 몰라 놀랐던 전날 밤의 일이었다.
낯선 것으로 가득한 곳에서 마주하고 있는 우연의 연속에 어느덧 긴장감이 풀리고 있었다.
Ba Na Hills
바나 힐 케이블카가 다니는 입구와 정상까지의 거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구간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게 체감으로도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됐다. 높이 또한 아찔했다. 사방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케이블카 안에서 광활하고도 아득한 자연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중간쯤 넘어갔을 땐 잠시 현기증이 일기도 했다.
도착한 바나 힐은 마치 깊숙한 자연 속에 숨겨진 또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들인 순간의 묘한 기분, 벅차올랐다.
감탄과 함께 골든브릿지로 향했다. 사진을 통해 줄곧 구경했던 거대한 손. 비로소 직접 눈에 담게 되었다. 드넓은 전경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아름다웠다.
기념 사진을 남기고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말벌의 등장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찍지 못했다.
White Rose
유명한 베트남 맛집이라는 포슈아를 가려고 했다. 그리고 포슈아에 도착한 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건, 포슈아인 줄 알고 간 이곳이 포슈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더위를 먹었던 걸까?
우리는 그날, 쌀국수와 함께 다소 생소한 메뉴였던 화이트 로즈를 주문했다. 화이트 로즈는 우리나라 물만두 같은 음식이었다. 쌀국수는 아는 맛에서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맛있었다.
La Siesta Hotel & Spa
베트남 호이안에 위치한 숙소, 라 시에스타에서 모든 밤을 묵었다.
푸릇한 초록 식물이 곳곳에 많아 공기가 유독 맑은 느낌이었다. 숙소 건물이 두르고 있는 한가운데에는 넓은 수영장이 위치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았던 덕택에 하루 저녁은 이곳 수영장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기도 했다.
가벼운 물장구나 치는 게 전부였지만, 가만히 물속에서 야경을 바라보는 일만 해도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호화로운 행복이었다. 물속을 한껏 유영하며 나른한 기분을 만끽했다. 현실에 치여 잔뜩 일그러지고 찌든 생각이 단숨에 희석되는 것 같았다.
미리 예약해둔 마사지 타임이 가까워지면서, 아쉬운 걸음을 해야 했지만 충분히 즐겼으니 됐다!
라 시에스타에서는 마사지 서비스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굉장히 고대하고 있었다. 후기도 꽤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숙소 선택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마사지는 크게 마사지 종류와 부위별로 나누어져 있었다. 나는 relaxation 마사지를 선택했다. 부위는 어깨를 집중적으로 요청했다. 앞선 선택을 마치면 여러 종류의 향이 놓인다. 또 다시 선택의 순간이 오는 것이다. 나는 그중 적당히 부담스럽지 않은 향으로 택했다. 여기까지 끝내면, 다시금 직원의 안내가 있기 전까지 기다리면 된다. 맛있는 차와 과자를 먹으면서.
마사지 룸은 은은한 조명으로 단출하게 꾸며져 있었다. 아늑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마사지를 받는 내내 졸음이 밀려 들었다. 그대로 딥슬립을 했다.
몽롱한 정신으로 일어나 마무리 샤워를 한다. 나는 눅진해진 몸을 끌고 방으로 향했다. 마사지가 이렇게 좋은 건 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 다음 베트남에 다시 한 번 방문하게 된다면, 다시 오고 싶다. 그날 나는 그간 이뤄본 적 없는 생애 첫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