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요우와 그냥 요우의 흘러가버린 2025년 회고
새해는 늘 비슷하게 시작한다.
달력이 바뀌고, 사람들에게 새해 복과 관련된 인사말을 전달한다.
2025년이 끝나고, 2026년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모두가 "올해는 작년과 좀 달라야지"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로 무언가 정리되는 것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나서다.
지난해 흘러가버린 것들이 뒤늦게 마음에 되새겨지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흘러가버린 것들이 문장으로 남는다.
아무튼, 그래서 올해 역시 조금은 늦게 2025년을 다시 되돌아본다.
작년의 회고글은 여러 편으로 기획했지만, 결국 한 편밖에 작성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흘려보냈다.
써야지 써야지 생각만 하다 보면 결국 또 안 쓴다. 한방에 몰아서라도 꾸역꾸역 키보드를 잡아본다.
누군가 그랬다. 회고는 새해가 시작되고, 설 연휴 전에만 작성하면 유효하다고.
2025년 4월, 회사 내부에서 조직을 옮겼다. 내가 원해서 옮긴 내 선택이고, 그 선택은 아주 바쁜 일 년으로 이어졌다. 2024년이 일과 개발에서 조금 멀어졌던 해였다면, 2025년은 다시 일과 개발 한가운데로 들어간 해였다. 다시 말하자면, "치열한 최전방 격전지"로 옮겨간 해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항상 서비스 최전방에 가까운 조직을 선호했다. 올해 옮겨간 조직이 정확히 그랬다. 컨택 포인트가 늘어났고, 그만큼 커뮤니케이션은 복잡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복잡함 속에서 오랜만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감각"을 느꼈다. 일이 밀도 있게 굴러가고, 사람들이 얽히고, 우선순위가 부딪히고, 그 와중에 무언가가 만들어질 때만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일을 조율하고, 사람들과 협상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무언가를 해낼 때마다 "아, 나는 아직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과거의 감각을 하나씩 깨워나갔다. 어찌 보면 2025년의 나는 일 속에서 일종의 도파민에 취해있던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의 회사에서는 손꼽을 만큼 치열하게 일한 해 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치열함은 단지 내가 느끼는 감정일 뿐이고, 그 치열함에 대한 평가는 조직의 이성적인 논리이다. 이 회고글을 처음 작성하기 시작할 때는 아직 2025년의 업무 평가가 발표되기 전이었다. "내가 느낀 치열함이 조직에서는 어떻게 읽힐까"를 약간의 기대와 조금의 불안이 섞인 채로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은(지난주에) 그 결과가 나왔다. 나에 대한 평가와 등급이 내게 전달되었고, 100%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던, 조금은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 머리로는 어느 정도 납득되었지만, 아직 치열했던 작년을 기억하는 마음으로는 아쉽다. 단순히 '더 높은 등급,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는데' 보다는, 내가 겪었던 치열함이 조직의 이성적인 논리로 분명하게 인정받는 경험을 기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서는 분명 큰 파도가 쳤는데, 밖에서 돌아온 건 생각보다 잔잔한 수면과 같은 느낌. 그 간극이 남았다.
물론, 내가 치열하게 일했다고 해서 그것이 남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거나 어떤 평가를 받게 되는지는 전혀 다른 얘기다. 몇 년 전에도 "치열하게 일했다"라고 느꼈던 어떤 해의 결과를 전혀 반대의 평가로 받은 적도 있다. 나의 치열함이나 결과가 "어떻게 읽혔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읽히게 만들 것인가" 올해 내게 주어진 숙제다.
이 글을 다시 작성하고 있는 지금은 마침 오랜만의 휴가 기간이다. 딱히 휴가 생각은 없었다. 마침 중국 여행을 잡아둔 지인들이 있었고, 1월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되는 리프레시 휴가도 남아 있었다.
덕분에 휴식 기간을 가졌고, 오랜만에 한 발자국 떨어져 지난해를 되돌아보고,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 속에서 떠올린 몇 개의 키워드들이 있다.
1. 업무 통제력
단순히 '일을 더 많이 하는 능력'이 아니라, '일을 내 의도대로 굴리는 능력'에 가깝다. 무엇을 잡고, 무엇을 놓을지, 무엇을 내가 직접 해결하고, 무엇을 시스템과 조직에 맡길지, 그리고 내 리소스를 정말로 어디에 태워야 가치가 생기는지. 결국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치열하게 일하는 것과 그 치열함이 성과로 남는 것은 다른 얘기다. 나는 분명 고삐를 단단히 잡고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보기에는 방향 없이 속도만 내는 사람처럼 보인 순간들이 있었나 보다.
물론 작년 중간에 조직에 합류했으니 그에 대한 아쉬움이 없진 않다. 다만 그 차이를 메우는 게 업무에 대한 통제력이라는 점을 작년의 평가가 꽤나 날카롭게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내가 잡아야 할 일과 놓아야 할 일을 늦게 구분했다는 것이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통제하라고.
2. 리더십 훈련
단순한 직함의 문제가 아니다. 영향력의 문제다. 작년 최전방 조직에서 일하며, 대부분의 문제가 코드보다 코드 바깥의 "합의되지 않은 것들"에서 더 많이 발생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코드와 논리가 완벽하더라도,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삐걱거리는 순간들이 있다. 기준이 없으면 우선순위가 매번 흔들리고, 우선순위가 흔들리면 일정과 책임이 흐려진다. 책임이 흐려지면 갈등이 쌓이고, 결국 결과가 흔들리고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 필요한 건 결정을 앞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행동력과 영향력이다.
거창한 카리스마 따위가 아니다. 문제를 같은 언어로 정의하게 만들고, 기준을 세워 선택지를 좁히고, 의견이 다르다면 정리해서 결정하도록 하고, 누군가(혹은 내가) 제대로 일을 진행시킬 수 있게 길을 닦는 힘이다. 누군가를 지배하는 능력이라기보다, 팀이 문제를 위해 움직이게 만드는 능력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개발자이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코드를 잘 작성하는 것만으로 부족한 순간들이 늘었다. 문제를 고차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으로 팀의 인식을 맞춰야 하는 순간들이 계속해서 생긴다는 의미다.
2025년은 그 훈련을 억지로라도 받게 만든 해였고, 아마 올해도 그러할 것이다.
3. 희소성
더욱 노골적인 단어다. "나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내 경쟁력은 약해지고, 나는 더 쉽게 대체될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 능력들을 어떻게 조합해야 할까?
기술의 깊이, 서비스 맥락의 이해, 커뮤니케이션과 조율, 실행력과 파고드는 집요함 등 희소성은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나의 여러 능력이 특정한 형태로 결합된 '나만의 모양'이 되어야 한다.
내가 느꼈던 치열함을 단순한 소모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모양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2025년을 빼놓고 AI를 말할 수 없다. 2026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1. 일과 일상에 더욱 밀접하게
어느 순간 AI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운 도구"가 아니라, 개발자로서의 내 생활이나 업무 스타일 자체를 바꾸고 있다. 당장 회사의 개발자 동료들을 보더라도, 모니터 한쪽에 ChatGPT, Cursor, Claude 등을 띄워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AI를 통해 회사 업무 외적으로도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보았다. 개인 홈 서버에 RTX 5070 Ti를 달아 로컬 LLM 서버를 굴려보기도 하고, 그 서버에 n8n을 올려 무언가를 시도해보기도 하고, 온갖 AI 구독형 서비스를 써보면서 AI 작곡과 AI 뮤직비디오 제작과 같은 개발과 무관한 것도 해봤다. 2025년 12월, Claude 종량제 API를 미친 듯이 쓰다가 한 달 요금이 900$가 찍혔을 때는 아차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기한 것은, 이런 과몰입이 결국 '무언가를 만드는 쪽'으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오래전부터 생각만 하던 서비스를 실제로 구현해보기도 하고(Yowu's Developer Tools), 사내에서 지원 종료되는 성능 테스트 도구를 대체할 새로운 도구를 AI를 사용해 이틀 만에 프로토타입으로 공개해보기도 했다. 내 개발자 커리어에서 이렇게 까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산성이 넘쳤던 해가 있었나 싶다.
AI는 이제 효율을 위한 도구라기보다, 누군가를 제작자로 밀어붙이는 환경이 되고 있다.
2. 부스트캠프 리뷰어
올해 하반기에도 네이버 부스트캠프 웹/앱 10기 백엔드 리뷰어 활동을 했다. 다만 이상하게도 올해는 내가 여기서 하는 활동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ChatGPT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온갖 AI 도구들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불과 2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이제 캠퍼(부스트캠프 수강생)들이 AI를 사용하여 학습을 하고, 개발 과제를 진행하는 것은 당연한 기본 값이다. 예전에는 리뷰어가 "모르는 내용"을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그 자리에 AI 가 위치한다. 기본적인 질문은 AI를 통해 한번 물어보고, 해결이 안 될 경우에만 사람에게 온다. 그래서인지 캠퍼와 리뷰어 사이의 대화 자체가 눈에 띄게 줄었다.
아이러니한 부분도 있었다. 캠퍼들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결과물이 더욱 빠르게 쌓이고, 리뷰어가 봐야 할 코드의 양은 압도적으로 늘었다. 결국 리뷰어들도 캠퍼들의 늘어난 코드들을 효과적으로 리뷰하기 위해 AI를 사용한다. 그 누구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캠퍼들이 AI로 작성한 코드를 리뷰어들이 AI로 리뷰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코드를 마주치는 순간들도 있었다. 다만 그런 상황조차 "이 정도는 잘 훈련된 AI Agent로 리뷰를 반복하면 줄어들지 않을까?" 예전에는 캠퍼들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적인 내용들이나 설계들을 리뷰어에게 기대는 순간이 많았는데, 개발 업무 전반에 AI가 보편화된 지금은 그 대상이 사람에서 AI로 옮겨갔다. 결과적으로 리뷰어 혹은 멘토의 중요성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올해는 프로젝트 멘토 직책이 사라졌다. 캠퍼들이 멘토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을 억제하고, 스스로 방향성을 세우게 하겠다는 취지로 전달받았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기계적인 코드 리뷰의 비중은 AI가 가져갈 수 있지만, 프로젝트 협업 관점에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다루는 역할은 오히려 필요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부스트캠프 리뷰어를 왜 맡아왔을까? 적극적으로 성장하려는 캠퍼들을 보면서 개발자로서의 초심이나 내 가치관을 환기시키고 싶고, 나 역시 캠퍼들을 위해 더욱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려는 모습이 있었는데, 올해는 이러한 내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캠퍼들과의 대화가 줄어들었고, 관계가 얇아졌다. 나는 점점 "주말마다 쌓인 코드를 기계적으로 리뷰하는 사람"에 가까워졌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험이고,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예전만큼 이 역할이 필요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마 이런 이유로, 올해부터는 부스트캠프 리뷰어 포지션은 지원을 하지 않게 될 것 같다. 이제는 개발자 커뮤니티나 후배 개발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서, 내게 충분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다른 활동을 생각해 봐야겠다.
3. 밋업 발표
2025년 10월에는 잡코리아에서 주최한 AI 밋업에서 연사로 발표가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단순하다. AI는 분명 많은 개발자들의 삶과 커리어를 바꿀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결국 "적응하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지금은 무조건 많이 써보고, AI에 익숙해지는 개발자가 살아남는다는 생각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바둑기사 이세돌이 남긴 말이 떠오른다. AI가 만들어내는 개인 간 격차는 이미 벌어지고 있고, 활용하는 사람의 성장 곡선은 더욱 가팔라진다는 얘기였다. 바둑계만의 얘기는 아니라고 본다. 직업, 교육, 경제 등, 이제 AI 활용 능력은 선택지가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 기술에 가깝다.
4. AI 시대에 IT 업계 한복판 현역으로서
개인적인 사견으로, 가까운 시점에는 개발자의 역할 재정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계적인 코딩의 영역은 크게 줄어들고, AI의 결과물을 판단하는 감리, 감독의 영역으로 크게 이동할 것으로 예상한다. 비단 나만의 얕은 경험으로 내린 판단은 아니다. 외부 개발자 네트워킹이나 다른 IT 회사 개발자들과의 대화, 회사 내의 개발 업무와 개발자로서의 개인 경험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예상이다.
이제는 프론트엔드 개발자, 백엔드 개발자처럼 역할을 뚜렷하게 구분하기보다는, 모두가 Product Engineer(제품을 끝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엔지니어)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느낀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얼마나 코드를 잘 짜는가" 보다는 "무엇을 왜 만들지 결정하고, 그 결과물을 관리하고 책임질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후의 시대에 필요한 역량은 AI의 결과물을 검수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방향을 정하고 학습과 결과를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할 수 있는 능동적인 엔지니어링이다.
2025년은 IT 업계 한복판에서, 그걸 머리뿐만이 아니라 오감으로 선명하게 체감한 해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AI 도구와 기능이 출시되고 있고, AI로 인해 업계 트렌드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일단은 올해도 꾸준히 더 다양하게 많이 써보면서 따라가는 척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가 개발자 유용우로서의 2025년 회고였다면, 아래로는 그냥 사람 유용우로서의 회고다.
2025년의 삶에서 일과 본업이 다시 커진 만큼 다른 영역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2024년에는 매 분기마다 정기 공연에 올라갔던 밴드활동이 2025년에는 사실상 없었다. 연말에 겨우 1개 팀으로 1년 내내 합주한 5곡을 공연한 게 전부고, 2024년에 큰 마음먹고 구입한 펜더, 에피폰 일렉 기타 2대와 엔야 카본 통기타 1대는 먼지만 쌓인 채 줄이 녹슬어가고 있다. (기타는 가끔 혼자서 치긴 하지만)
2024년에 20kg를 감량하면서 재미를 붙였던 운동들도 조금은 멀어졌다. 물론 완전히 놓지 않기 위해서 동네 탄천이라도 뛰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운동하려 했지만, 분명히 2024년과는 비교할 수 없다. (덕분에 +10kg 정도가 다시... 더 이상은 안돼... 정신 차려...)
여러 취미 활동과 멀어졌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다. 나는 예전부터 일과 삶의 밸런스를 엄격하게 나누지 않고 살던 사람이다. 일도 내 삶의 일부이고, 일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것 역시 또 다른 종류의 일이라고 느낀다. 그러므로 아직은 이 둘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 어떤 삶의 태도가 정답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미 2025년을 그렇게 보냈다.
돌이켜보면 정말 쉬지 않기도 했다. 조직을 옮기기 직전인 3월 말에 짧은 휴가를 사용하고, 그 뒤로는 휴가를 떠난 기억이 없다. 개인 사정으로 하루짜리 휴가는 몇 번 썼지만 휴식이라고 보긴 어렵다. 결국 휴가를 5일인가 6일인가 남긴 채 2025년을 마무리했다.
9월에는 편도선 절제 수술로 2주간 병가를 썼었다. 진통제와 함께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던 기억뿐이라 휴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마저도 2주를 다 사용하지 않고, 업무 때문에 조금 일찍 복귀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다. 병원에서 "2주 이상 안정을 취하세요" 권고했지만, 서비스 출시 때문에 그걸 자진해서 버리다니. (그래도 편도선 수술은 하길 정말 잘했다. 10년은 일찍 했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매년 생각만 하고 잘 지키진 못하지만, 2026년은 좀 다르게 지내고 싶다."쉬어야지" 보다는 환기를 시키고 싶다. 새로운 것들을 느끼고, 나만의 리듬을 만들고, 조금 더 좋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달릴 수 있는 그런 환기가 필요하다.
2026년을 맞아 어느덧 예전 나이로 36세가 되었고, 개발자로 밥 벌어먹고 산지도 10년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처음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한 25세 때의 나와 지금 36세의 나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크게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후배들이나 신입 개발자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그 간극을 확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셀프 착각이었던 걸로...)
연차가 낮을 때는 어린 나이라고 무시당하기 싫어서 빨리 일과 개발에 능숙해지고 싶었고, 빨리 다양한 경험을 겪고 연차를 쌓고 싶었다. 그래서 괜히 시니어 개발자들의 행동이나 화법, 스탠스를 따라 해보기도 했다. 그러면 더 빠르게 익숙해질까 봐. 그런데 막상 연차를 슬슬 먹어가고 있다 보니, 더 먹기가 싫어진다. 참 나도 간사한 인간이다.
그래도 "연차를 헛먹었다"는 말은 절대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더욱 조급해지고, 더 치열하게 살아가려 하고, 스스로를 더 몰아붙이는지도 모르겠다. 20대 때도 비슷하게 몰아붙였지만, 느낌은 조금 다르다. 그때는 쫓아가기 위해 몰아붙였던 것이라면, 지금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몰아붙인다는 느낌이다.
사실, 지금의 조급함은 단순히 연차 때문이 아닌 책임감 때문에 느끼고 있다는 걸 안다. 적절한 조급함은 도움이 된다. 다만 그 조급함 속에서도 충분한 여유와 환기는 분명 필요하다.
2025년의 환경이 바뀌고, 내 생활의 범위가 달라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의 사람들도 바뀌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반대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과 조금 멀어진 경우도 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나를 길러준 분을 잃는 상실도 겪은 해였다.
누군가 "인연이 멀어지는 것과 그로 인한 상실을 아쉬워할 줄 아는 건 어린것들의 특권"이라고 말했던가.
나는 여전히 사람들과 멀어지거나 관계의 상실을 아쉬워한다. 다만 예전만큼 쓰라리지는 않다. 아쉬움이 남아도, 그 감정에 휩싸여 스스로 망가뜨리지는 않게 되었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이라고 한다면, 2025년은 그것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된 해이기도 하다.
올해도 책을 가까이 두려 노력했지만, 결심에 비해서는 많이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읽은 것들 중 유독 기억에 남은 것들이 있다. 책이라는 게 그렇다. 읽은 양보다는 그때의 내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어떤 문장들이 마음에 걸려 오래 기억에 남는다.
2025년의 나는 '기술'보다 '마음'과 '사람' 쪽에서 자주 멈춰 섰다. 유독 마음에 걸린 책들도 그러한 책들이다.
초역 부처의 말 (코이케 류노스케)
이 책은 복잡한 설명보다는 짧은 문장들로 마음을 건든다. 읽다 보면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아, 내가 지금 잡고 있는 결국 집착이구나"
관계에 집착하고, 평가에 집착하고, 내가 옳아야 한다는 감정에 집착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다 보면 결국 나와 주변을 상하게 만든다. 다만 문제는 그 흐름이 항상 반복된다는 점이다. 분명 2025년의 나도 그 불편한 익숙함 속에서 지내왔다.
그래서 이 책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겠다' 보다는 내가 쥐고 있는 걸 '조금만' 놓아보게 만든다. 욕심이 커질수록 불안해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손에 쥔 무언가를 잡는 힘을 조절하는 기술이다.
프로이트의 의자 (정도언)
이 책은 나에게 이상한 기준점 같은 책이다. 오래전 20대 초반 군인 시절 처음 읽었고, 20대 중후반 즈음에도 몇 번인가 읽었고, 30대의 중반이 된 작년에 또다시 펼치게 되었다.
매번 신기하게도 같은 문장이 새롭게 읽힌다. 내가 불편해하는 지점, 반복되는 패턴, 내가 예민해지는 순간들, 지나치게 방어적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양보해 버리는 순간들. 단순히 성격으로 치부했던 것들이 사실은 나를 지키기 위한 자기 방어의 수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은 자기 계발이라기보다는 자기 확인에 가깝다.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고, 그런 행동을 했지?"라는 질문을 덜 자책적인 톤으로 내게 되묻는다.
리더의 조건 (캐슬린 리어던 등)
이 책은 우연히 만났다. 대학 동기들과 놀러 갔던 펜션 책장에서 발견했고, 가볍게 집었다가 친구들이 잠든 뒤에도 몇 시간을 붙잡고 읽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생각이 나서 절판된 책을 온라인 중고로 어떻게든 구해서 읽게 되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작년의 내 상황과 맞물리는 내용들이 많았다. 업무 통제력, 리더십 훈련, 희소성. 물론 나는 대외적으로 리더가 아니다. 그렇다고 리더십이 남의 이야기도 아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설득하고, 우선순위를 조절하고, 갈등을 조율하고, 맡겨진 일을 나의 일로서 "되게 만드는 것". 그 과정이야 말로 지금의 내게 필요한 리더십이다.
이 책이 주는 결론은 단순하다. 리더십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하는 기술에 가깝고, 부족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부족한 만큼 더욱 의식하고, 연습해야 한다.
2025년이 내게 좋은 해였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는 못하겠다. 이 회고글에는 작성하지 못한 속사정들이 많다. 물론 좋은 일도 많았고, 즐거웠던 기억도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1년이었다.
특히 하반기, 개인적으로 멘탈이 크게 흔들린 이벤트들이 몇 번인가 있었다. 그 때문에 주변에 민폐를 많이 끼치기도 했고, 덕분에 잃은 것들도 많다. 많은 실수를 저지른 만큼, 많은 걸 깨닫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다. 내가 감당하지 못한 것들이 분명히 있었고, 그 책임을 피하지는 않는다.
"2025년의 나는 성장했는가?"를 내게 되물어보면서도,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과거의 내가 저질렀던 실수들을, 지금 또다시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성장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고 싶지 않다.
때가 되면 다 알게 되고,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
- Ramund -
2025년에는 치열했던 것도, 몰입했던 것도, 슬프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결국 내게 필요했던 시간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2025년은 "때가 되면 다 알게 되고,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를 그대로 실천한 해였다.
가까운 미래조차 제대로 계획하지 못했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때가 되었을 때 결국 다 알게 되었고, 일이 닥쳤을 때 해냈다.
누군가에겐 근시안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한 해를 정말로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면, 닥친 일을 끝내 '해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치열하게 살았다고 회고할 수 있는 사람만이 되물을 수 있는 질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러쿵저러쿵 더 말할 것 없이, 이제는 정말로 인사할 시간이다.
Goodbye 2025, Hello 2026.
2026년에는 좀 더 잘 살아보고 싶다. 더 잘 달리고, 더 잘 쉬고, 더 잘 환기하면서.
무엇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2026년 1월 12일.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초안을 작성하다.
2026년 2월 1일. 리프레시 휴가의 마지막 날에 발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