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와 후원 10년 차

10년째 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

by 요우


오늘 회사 메신저에서 연말 정산 얘기가 나왔고, 기부금 관련된 얘기도 나왔다. 그 대화 이후 뭔가를 글로 남겨봐야겠다 싶었다. 뭘 쓰고 싶은지는 잘 몰랐지만, 어느덧 내가 기부를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단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써본다.


2025년 연말정산에 찍힌 내 기부금은 418만 원이었다. 작년 안동 산불 때 별도로 200만 원을 더 기부해서 올해는 유독 더 많이 찍혔다.


2025년 연말정산 기부금 항목


숫자만 보면 적잖이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가끔 스스로 돌아볼 때,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었나' 싶을 때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일정 금액의 기부금은 자연스러운 지출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10년 전 작은 어린이


기부를 처음 시작한 건 약 10년 전, 대학교 4학년 즈음의 여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이미 졸업 전 중소기업 취업을 해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던 상황이었다.

어느 날의 사소한 생각을 계기로 굿네이버스를 통해 매달 3만 원씩 결연 아동 후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다섯 살짜리 꼬맹이였던 그 아이는 이제 열여섯 살 소녀가 됐다. 10년이 그렇게 흘렀다.


3906일. 5살이 16살, 25살이 36살이 되는 기간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방글라데시 결연 아동도 추가로 후원하기 시작해 결연 아동이 2명이 되었다. 새로운 결연 아동과의 날짜는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날 시작했고, 올해 "후원 아동이 성인이 되어 후원이 종료됩니다"라는 안내를 받았다.


엄청 오래 후원을 이어온 것도 아니었는데, 막상 그 연락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이인데, 어느새 어른이 된 거다. 오래되진 않았지만, 멀리 어딘가에 딸이 있는 기분이었다.


2025년을 끝으로 후원이 종료된 결연아동의 굿바이레터


성인이 되어 한 명의 아이가 내 후원에서 빠졌고, 굿네이버스에서 르완다의 6살 아이로 승계되었다. 그렇게 지금도 두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어린이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괜히 한번 더 생각이 난다. 정기 후원 외에도 특별 기부금 같은 방법이 있어서 매년은 아니더라도 생각이 날 때마다 한 번씩 전달했다.


10만 원으로는 정말 많은 것들을 살 수 있다.

올해 어린이날에도 좋은 선물을 주는 먼 타국의 아저씨가 될 예정이다.




애란원 이야기


굿네이버스와 함께 꾸준히 후원하고 있는 곳이 하나 더 있다. 애란원이다.


애란원은 미혼모복지시설이다. 정기 후원을 시작한 지 벌써 7년에서 8년 정도 됐다. 처음엔 월 3만 원이었나 5만 원이었나, 그렇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월 10만 원씩 후원 중이다.


2018년의 애란원 소식지의 후원자 목록. 그 "유재석" 님이 맞다.


내가 왜 애란원에 기부하게 됐는지, 그 배경은 명확하다. 결심을 하게 된 계기도 분명히 있다. 다만 그 이야기는 꽤 개인적이고, 충분히 풀어내려면 글 하나를 따로 써야 할 것 같다. 언젠가 그럴 준비가 됐을 때 따로 써보려 한다.


시작 계기가 어찌 됐든, 그리고 비록 큰 금액은 아니지만 어느덧 7~8년을 함께 이어온 곳이 됐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회사 내에 친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메신저 방에서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했다.


"님이 벌고 있는 돈을 다 짊어지고 관짝에 같이 들어갈 것이 아니라면, 나의 기부 생활을 본받으시길 바랍니다. 껄껄"
(주식 얘기 이후) "당신이 손실 나도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모를 그 백만 원이,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하는 더욱 가치 있는 곳에 쓰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내가 오만과 자만이 깃들기 쉽고, 욕심도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나 자신에게 경각심을 준다.


기부는 어쩌면 내가 나를 다잡는 방식 중 하나일지도 모겠다.


지금은 무교지만 10대의 나는 분명한 기독교인이었다. 더 이상 종교가 있다고는 스스로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의 뭔가가 내 안에 남아 무의식적으로 '예수'와 같은 삶을 지향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내가 '예수'와 같은 희생적인 삶을 살 수는 없다. 비록 딸깍 몇 번이지만 이렇게라도 살아가려 한다.


(아직은) 혼자 충분히 먹고 살만큼 벌고 있고, 기부나 후원을 더 한다고 해서 사는데 지장 없다. 결국 마지막에는 다 두고 갈 텐데, 필요한 사람들에게 좀 더 일찍 쓰는 것뿐이다.





아직도 못 한 것


10년 가까이 기부를 이어오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 번도 몸을 써서 봉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로 직접 몸으로 하는 자원봉사는 해본 적이 없다. 애란원은 언제고 꼭 한 번 직접 가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년째 하고 있다. 진지하게 오프라인 봉사 문의까지 남겼던 적도 있다.


그런데 그때는 마침 봉사를 한동안 받지 않는다 했고, 몇 년 뒤엔 코로나가 터졌고, 또 그 뒤엔 내가 경기 남부로 이사하면서 서울 위쪽에 있는 애란원까지 가기가 더 어려워졌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그렇게 유야무야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돈으로 때우는 선의는 솔직히 어렵지 않다. 클릭 몇 번이면 된다. 하지만 자신의 시간과 몸과 능력을 써서 행하는 선의가 진짜라고 생각한다. 그게 훨씬 더 어렵고, 그래서 더 값지다.


기부 10년 차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것처럼 들리지만, 나는 아직도 그 '진짜 기부'에는 닿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해져서, 그런 기회에 닿기를 바란다.


ㅋㅋ 아주 먼 옛날 2013년의 여름. 몽골의 한 보육원에서
2026년 1월 15일 초안을 작성하다.
2026년 4월 5일 식목일에 다시 써서 발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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