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얼로그 출간 후기 2] 떠나보내는 마음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내 책이 읽히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세요!
오랜만에 A4 용지 한 장 가득 손편지를 받았다. 여중, 여고를 다녔던 학창 시절 추억에 잠기며, 나보다 내 책의 출간일을 축하해주는 그녀와의 인연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보다 언니지만 언니, 동생보다는 선생님과 과장님이라는 호칭으로 함께하는 우리. 승진과 출간이라는 비슷한 생애주기(?)를 갖고 든든한 사회생활의 동지이자 작가 선후배로 인연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 출간만큼은 상당히 많은 부분 그녀에게 공을 돌리고 싶다. 출간 200일이 지난 작가로서 첫 책을 만드는 경험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자, 원고가 책이 되는 과정에서 금쪽같은 조언을 해주었던 선배이기 때문이다.
일이 아닌 친구로서 이어지는 시간 안에서 어느 날 우리는 글이라는 관심사를 공유했다. 브런치에서 꽤 큰 구독층을 갖고 있는 그녀는 직장생활과 일을 하는 마음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다. 비슷한 시기에 출판사와 계약을 한 후, 친구의 책이 작년 11월 출간되었다. 마치 내 책이 나온 것처럼 너무 설레고 신나는 감정이 가득했다. 그때는 몰랐다. 책을 만든다는 것이 단순히 원고를 마감하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초고를 완료한다는 건 이제 시작점에 올랐다는 걸 의미하는지 친구의 꽃바구니를 고르던 그 시기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반면 내가 브런치를 활용하는 용도는 일상과 감정 공유가 아닌 그간 썼던 칼럼을 모으는 장소였다. 평소 살아온 이야기는 내 일기장 속에서만 긴 글로 존재한다. 그러기에 내게 전시와 도시 사이를 살아온 시간을 바깥세상에 전해줄 책은 더욱 나의 분신처럼 다가왔다. 출간을 준비하면서 출판사 팀장은 첫 책을 내는 작가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나의 분신처럼 품에 안고 있는 책과 거리두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책이라는 건 독자를 위한 것 같아요
마지막 저자교를 넘기며 시원섭섭한 느낌을 갖고 있던 내게 그녀는 여러 조언을 쏟아내었다. 나 또한 원고가 책이 되는 과정을 겪으며 출판이라는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한 터였다. 책을 짓는 이들과 책이 팔리는 게 중요한 출판 시장의 간극, 좋은 책이 항상 잘 팔리는 책은 아닐 수 있다는 다양한 출판계의 이야기. 정답이 없는 출판의 세계에 대해 선배인 그녀는 내게 무엇보다도 '떠나보내는 마음'의 중요함을 알렸다. 책을 짓는 것은 나의 글이 독자에게 닿을 수 있도록 작업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 안에서 나는 나의 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만들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과 나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만 하는 작가의 마음가짐을 말이다. 문제는 그 작별이 출간일이 아닌 출간을 하는 과정 중 어딘가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내가 썼지만 내 책이 아님을. 마치 엄마들이 말하는 '너는 내 뱃속에서 나왔지만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책을 대해야 하는 걸까. 노래 가사처럼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처럼 책과 썸을 타야 하는 걸까. 책과의 거리두기에 아리송하는 내게 그녀는 '운명에 맡기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마감에 녹초가 된 내게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책은, 또 쓰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 당분간 매일 내 책을 검색하며 독자들의 반응을 살펴볼 것 같다. 세상에 나간 책을 통해 만나는 독자들의 생각과, 책이 스스로 경험할 또 다른 세계까지. 내 손에서 시작되었지만 세상의 것이 된다는 몸의 일부만 이해한듯한 이야기를 내 눈과 귀로 확인해보아야겠다. 그 과정 안에서 조금은 낯설고 신선한 책, 나와 타자화되어 세상 속에 존재하는 책과의 만남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