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고 익숙해도 감동을 잃지 않는 공식 (장항준 감독/안재홍/농구영화)
감독: 장항준
출연: 안재홍, 이신영, 정진운, 김택, 정건주 등
장르: 드라마, 스포츠
상영시간: 122분
개봉일: 2023.04.05
우리 팀은 오합지졸이나 다름 없었다. 농구에 대한 관심이 아닌 오로지 친목에 의해 형성된 조합이었고, 하나같이 강사님의 말을 잘 안 듣고 말썽이나 부렸다. 그런 우리가 정식 대회를 나가게 됐다니 참가 사실만으로 얼떨떨하긴 했으나 의외로 다들 승부욕을 조금씩 갖고 있었다. 나는 농구 초짜 팀에서도 최약체나 다름 없었다. ('리바운드'에서 '재윤'에게서 괜히 동병상련을 느낀 게 아니었다.) 패스를 받아 몇 발 자국 드리블을 이어가기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였고, 그나마 골대 밑에서 공을 받아 슈팅을 할 때만 최소한의 몫을 해냈다. (이 또한 장신들의 수비에 막히면 답이 없었지만) 워낙 운동신경이 없었고, 대회 참가가 확정된 후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해도 실력이 늘지 않아 좀처럼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경기에서큰 점수 차로 깨지는 것보다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두렵기도 했다. 스스로가 답답하고 실점을 기록할 때마다 힘이 쭉쭉 빠졌다. 친구들이 착해서 매번 '괜찮다'라며 기운을 북돋아주었지만, 나 자신이 계속 작아지기만 한다는 기분을 느끼는 상황에서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도 기적이란 게 펼쳐졌다. <리바운드>처럼 언더독의 반전을 다룬 스포츠 드라마를 볼 때면 늘 클리셰 범벅인 스토리라고 생각하곤 했다. 의외로 그런 뻔한 이야기는 현실에서 종종 일어나는 법이었고, 때로는 리얼리티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는 사실을 직접 겪고서야 알았다. 1인분도 제대로 할 줄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교체 없이 친구들과 함께 모든 경기를 뛰었고, 아이들이 활약해 준 덕분에 4강까지 올라갔다. 이제는 꽤 오래된 기억이지만 메달이라는 결과물이 내 곁에 남아준 덕분에 그 순간이 비교적 선명하게 떠오른다.
서론이 길었다. 오합지졸 농구부의 감동 실화를 다룬 <리바운드>를 보니 과거 잠시나마 농구와 닿았던 인연이 새록새록 떠올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농구는 싫었지만 친구는 좋았던 그 시절. <리바운드> 역시 여느 언더독 스포츠 영화처럼 예상 가능한대로 줄거리가 흘러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긴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만큼은 전형적이라 소재의 ‘실화’ 여부는 썩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열악한 환경에서 팀 하나가 만들어지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코치는 누구보다 열정이 가득하고,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던 팀원들은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돈독한 팀워크를 다지게 된다. 많은 스포츠 소재의 영화에서 보았을 법한 구조인데, <리바운드>도 철저히 이와 같은 흐름으로 전개된다.
그럼에도 관객의 마음을 자극하는 울림이 있고, 대회 경기 장면에서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유발한다. 이야기는 뻔한 공식을 따르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감동을 만드는 결정적인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보잘 것 없는 팀이 하나하나 난관을 헤치고 승리를 향해 나가는 과정은 내용을 알고 보더라도 그들의 고군분투에 마음이 찡해지는 법이니까. 장항준 감독은 고루한 신파를 비롯해 감정을 과잉되게 활용하지 않는 대신 코미디와 드라마의 담백한 조화로 평이한 이야기에도 몰입할 수 있는 힘을 발휘했다. 최약체던 팀이 결승전까지 진출한다는 내용은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할지라도 제3자에게 설득력을 구하기 힘든 소재다. 결국 개연성보다는 감정적인 요소에 많이 기댈 수밖에 없는데, 개개인의 안타까운 서사나 부모-자식 간의 관계 같은 배경적 요소가 아닌 오로지 ‘농구’와 ‘팀워크’ 자체에만 집중해 부산중앙고의 연승 과정을 최대한 억지스럽지 않게 그리려 했다.
물론 ‘감동’을 선택한 대신 이야기가 미흡하다는 점도 함께 뒤따른다. 오합지졸 농구부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회에서 선전한다는 중심 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재미를 주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과 같은 주제의식 외에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는 게 흠결이다. 가령, 극 초반부에 ‘양현(안재홍)’이 농구에 왜 이렇게까지 열심인지 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캐릭터에 공감이 잘 안 갔오, 누가 봐도 실력이 한참 부족해 보이는 이들이 어떻게 계속해서 승전보를 울릴 수 있던 건지 그 비결 또한 베일에 감춰진 듯했다. 팀워크와 청춘, 우정만으로 모든 과정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승리의 영광으로 이어지는 주인공들의 피, 땀, 눈물은 분명 감동적이나 ‘그래서 어떻게 결승전까지 갈 수 있던 건데?’라는 근본적인 의문점까지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때문에 마지막 경기 장면에서 ‘Fun.’의 ‘We Are Young’이 울려 퍼질 때, 울컥하는 심정이 피어오르면서도 왠지 모를 찝찝함이 한켠에 남았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팀’과 ‘우리’를 강조한다. 주인공들은 다른 팀들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 놓여있는만큼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게 중요했고, 작품은 이와 같은 팀워크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여섯 명의 캐릭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경기의 주역으로 삼은 점이 바로 그러한 대목이다. 부상을 입었음에도 팀원들의 밝은 앞날을 위해 끝까지 온몸을 불사지르는 ‘규혁(정진운)’, 리더로서 상대는 물론 동료들의 움직임까지 한 발 앞서 읽는 ‘기범(이신영)’, 최약체임에도 불구하고 골을 넣는 기적을 보여준 ‘재윤(김민)’까지. 어느 캐릭터 하나 병풍으로 만들지 않는 연출에서 감독의 선함이 돋보였다. 특히 ‘안재홍’과 함께 극의 중심인물로 활약한 ‘이신영’과 ‘정진운’은 스크린 경력이 적음에도 청춘의 투지와 열정, 그리고 소년들의 따뜻한 우정을 인상 깊은 연기로 표현했다. 두 배우의 살아있는 눈빛은 <리바운드>가 굴러가는 동력 중 하나였고, 특히 ‘이신영’은 첫 주연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존재감을 남겼다.
<리바운드>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스포츠 영화의 정통 공식을 그대로 따랐음에도 전반적으로 호평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연출이 좋았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섣불리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특히 매 경기마다 결정적인 승리의 장면을 화면에 직접적으로 담지 않는 연출을 반복한 것은 박진감 넘치던 순간 갑자기 맥이 빠지게 만들기도 했고, 승리의 짜릿함도 덜했다. (왜 중요한 순간마다 화면 전환을 하고, 경기 결과는 전화나 대사로만 전하는가.) ‘안재홍’과 단역 캐릭터 위주로 소소한 웃음을 전달하기 위한 개그성 대사를 남발하기도 했는데, 이 또한 자연스러운 웃음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마 <리바운드>의 기적 같은 이야기는 실화 소재의 영화라는 이유로 작위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인물들의 감정선에도 비교적 쉽게 이입하게 만들 수 있던 것 같다. 크고 작은 결함에도 영화가 바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건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할 것이다. 마치 우리가 농구팀의 일원이 된 것처럼 경기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였고, 인물들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괜시리 뿌듯하고 벅차오르는 감상을 유도했다. 물론 감독의 좋은 이미지가 작품평에 어느 정도 보정 효과를 주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K-스포츠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벗어나려고 한 노력이 엿보이나 여전히 큰 틀은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