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임에도 울림을 주는 이유 (넷플릭스 영화/에디 레드메인)
최근 미국 대선이 있기 약 3주 전, 1968년 시카고의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사건을 주제로 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 개봉했다. 영화을 감상하면 알 수 있겠지만, "트럼프"와 "바이든"이 매우 강력한 대척점에 있던 대선 시점에서 이러한 영화가 나타났다는 것은 매우 교묘한 타이밍의 포착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분명 1968년에 발생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당시 시대적 배경을 잘 알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이 스토리가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역사는 결국 반복된다는 말이 있듯이, 민주주의의 의미를 망가뜨리고 있는 '트럼프'가 집권 중인 2020년의 미국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 역시도 <1987>, <변호인>, <택시운전사>를 비롯한 민주화 운동 시절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많았기에 권력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굉장히 와닿을 수 있었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1968년, 시카고에서 있었던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시위를 벌인 젊은 운동가들 중 경찰과 국가에 대한 폭력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7명의 피고인과 그들을 억압하는 정치권력의 대립이 치열한 법정 싸움을 통해 진행된다. 7명의 피고인이 된 이들은 각기 다른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나 당시 미국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베트남 전쟁의 종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개혁의 목소리를 냈고, 이들을 범죄자로 만든 경찰과 사법세력은 치졸하고 비인간적인 수법까지 써가며 이들을 옥죄어간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그야말로 '정치 재판' 그 자체였는데, 미친 개의 횡포와도 같은 모습을 보이는 편향적이고, 뻔뻔하기 그지 없는 판사는 시종일관 답답함과 분노를 유발했다. 길어지는 법정 싸움과 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각종 한계들로 인해 이들이 불러온 혁신의 목소리가 실패하는 것은 아닌가 여러 차례 위기가 다가오지만, 시카고의 젊은 7명의 개혁가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당당하게 맞선다. 더럽혀진 민주주의의 이름을 되찾기 위하여.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앞서 말했듯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을 배경으로 한 국내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시대상이 지닌 가치관이나 개혁의 목소리가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절반은 낯설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이 작품은 당시 시대상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을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와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로 나누지 않는다. 함께 데모에 나선 운동가들은 모두 종전과 개혁에 대한 꿈을 꾸고 있지만, 이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은 않았다. 젊은 대학생으로 대변되는 '톰 헤이든', 자유로운 히피와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은 빈곤층에 해당하는 '애비', 그리고 사건과 관계가 아예 없음에도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연루되어 있는 흑표당의 '바비 실'까지. 이들은 각자 대표하는 계층이 다르고, 그들의 집단이 놓여있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진보주의자임에도 서로 다른 정치신념과 방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고 하여 분열하지 않고, 열띤 토론과 소통을 통해 각기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공통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연대의 길로 나아간다. 즉, 서로 다른 목소리들을 존중하며 힘을 합칠 수 있는 운동가들의 성숙한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비슷한 작품을 다룬 여타 국내영화들과 매우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톰'과 '애비'가 공모 사무실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주냐며 감정적인 말다툼을 이어가는 장면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같은 좌파 내에도 다양한 물결이 존재한다는 것을 매우 자연스러운 상징을 통해 표현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을 가진 많은 영화들이 대개 좌파는 무조건적으로 선함, 우파는 악함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같은 분파 내에서는 비슷한 정치신념을 가진 사람들만이 존재한다는 평면적인 구성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아 관객으로 하여금 거부감과 부자연스러움을 유발하는데, 이 작품은 굉장히 자연스럽고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주장하는 바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도,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영화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밝은 배경음악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부터 끝까지 굉장히 빠르고 복잡하게 흘러가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시대적 배경이나 인물 관계를 잘 모르는 관객들은 스토리 전개가 상당히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정도였다. 솔직히 초반 30분 정도는 영화를 이해하고, 인물들의 특성을 놓치지 않고 파악하기 위해 상당한 인지적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빈틈없는 전개는 관객의 몰입감과 흡입력을 높여주었고, 속도감 있는 스토리를 통해 고조되는 감정선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법정 씬이 굉장히 많은만큼 배우들의 대사량도 쉴새 없이 쏟아지는데, 배우들의 명연기와 리듬감을 살린 연출로 인해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 퓨 굿 맨>, <머니볼>, <소셜 네트워크> 등을 쓴 '에런 소킨' 감독의 저력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관람한 많은 사람들이 '애비'와 '컨슬러' 변호사를 연기한 두 배우의 캐릭터를 가장 감명깊게 본 것 같다. 확실히 법정에서 이성을 지키되 피고인을 변호하기 위해 분노와 억울함의 감정을 중간중간 시원하게 터뜨려주는 '컨슬러' 변호사를 연기한 '마크 라이런스'의 연기는 극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내 주관적인 감상으로는 '에디 레드메인'이 연기한 '토마스 헤이든' 캐릭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토마스'는 민주사회학생회를 이끄는 대표인데, 7명의 피고인들 중 가장 이성적이고, 반사회적 성향이 가장 적은 것처럼 그려진다. 극 초반에는 법정에서 판사의 심기를 건드리는 동료들의 행동을 지적하고, 저항의 의미로 판사가 퇴장할 때 일어나지 않는 동료들과 달리 홀로 일어서는 등 혁신 의식이 가장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연출되는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점잖고 이성적인 줄만 알았던 '토마스'는 친구 '레니'가 공격을 받자 가장 격노하며 '시카고 전체에 피가 흐르게 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군중에게 외친 장본인이었고, 이는 재판에 악영향을 줄 정도로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정적인 대응이었다.
'토마스'는 아직까지 불완전한 사고와 신념을 갖고 있는 매우 현실적인 혁신가의 모습을 대변해준다. 솔직히 항상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개혁가 주인공의 모습은 지나치게 영웅미가 넘치고, 비현실적으로 정의롭다. 오히려 간혹 권력에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감정적으로 폭발해 가장 열렬한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모습이 더욱 현실적이다. 실화 바탕이라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토마스'에게 그러한 비현실적 주인공 보정을 넣지 않고 다양한 모습들을 부여하며 캐릭터의 입체성을 부여하여 더더욱 그 인물이 이 작품의 후반부에서 빛날 수 있었다고 본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분명 50년도 더 된 1960년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52년이 지난 2020년 현재, 미국, 그리고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사법권력의 모습은 크게 변화하였을까? 굳이 미국까지 안 가고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5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달라진 점이 없다면, 퇴보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다고 본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보면 오로지 좌파와 우파로 갈라져 진영논리만을 앞세우고, 진정한 민주주의나 민생을 생각하기보다는 상대편의 입장을 깎아내리고 무너뜨리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작품 속 운동가들보다도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모습을 포털의 정치뉴스만 봐도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발전하는 기술에 맞춰 그럴 듯하게 외양만 변화하고 있을뿐 사회에 깊숙이 박혀 있는 정치의 근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극의 대사를 그대로 인용하면, 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아름다운 제도를 가져다 줬지만, 여전히 많은 나쁜 사람들이 이 제도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시끄럽고 난잡한 시국 속에서 정녕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여기 이 7명의 피고인들이 제대로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