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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Feb 27. 2021

[영화 리뷰] 프라미싱 영 우먼 (2020)

이토록 처절하고 전투적인 복수극 (캐리 멀리건/스릴러/골든글로브 후보)

캐리 멀리건의 새 인생작 탄생

 <프라미싱 영 우먼>은 7년 전, 가장 친한 친구가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죽음을 택해 고통과 증오 속에 살아가고 있는 한 여성의 치밀하면서도 처절한 복수를 그린 작품이다. <위대한 개츠비><서프러제트> 등의 '캐리 멀리건'이 원톱 주연을 맡은 작품인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연기에 대한 극찬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 감독인 '에머랄드 펜넬'의 첫 연출작인데, 골든글로브 감독상에 노미네이션 되며 첫 작품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중이다. 영화 완성도와 재미에 비해 국내에는 상영관 수가 너무 적고,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 그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7년간의 증오와 분노를 담은 복수

 '카산드라(캐리 멀리건)'은 매일밤 클럽에 찾아가 만취한 채 인사불성이 되어버린 여성을 연기한다. 그럴 때마다 자칭 nice guy들이 그녀에게 접근하여 성적 쾌락을 취하려 하고, 남자의 흥분이 극에 달했을 때 카산드라는 만취한 여성에서 깨어나 자신을 겁탈하려던 남성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녀가 이런 기이한 행동을 매일 같이 반복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7년 전 자신과 가장 절친했던 친구 '니나'가 파티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남학생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에 대한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카산드라는 친구가 술에 취해 윤간당한 순간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며 남자들을 응징하는 방식으로 복수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었다.

 한때 미래가 유망한 의대생이었던 카산드라는 친구의 비극을 겪은 이후 사람도 만나지 않고, 카페에서 의욕 없이 일을 하면서도 매일 같이 남자들을 만나며 위험한 복수의 밤들을 반복한다. 그렇게 암흑 같은 삶을 살고 있던 와중에 '라이언(보 번햄)'이라는 대학교 동기가 눈앞에 나타난다.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라 느껴졌고, 사랑과 행복이 필요했던 카산드라는 잠깐이나마 복수의 삶을 관두고 로맨스를 만끽한다. 잠시 친구의 아픔을 잊고 있던 사이, 그녀의 귓가에 끔찍한 이름 하나가 들어오게 되고 꺼져 있던 복수심은 극도로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카산드라는 처절한 복수극의 피날레를 준비한다.

통쾌하지 못한 복수, 씁쓸한 뒷맛

 치밀하고 완벽할 것만 같았던 카산드라의 복수극은 관객에게 끝내 통쾌함을 주지는 못한다. 이는 극의 충격적인 엔딩과 결부되는데, 극에 달한 복수심을 안고 범죄자의 파티 현장에 들어간 카산드라는 결국 복수를 성공하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밖으로 나온다. 주인공의 처절한 복수극이 순식간에 실패로 끝나버리니 통쾌한 한방을 기대했던 관객의 입장에서는 허망함과 찝찝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극에서 카산드라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결말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소 달라질 수 있다. 카산드라는 누구보다 친구의 비극에 격한 감정을 보였던 인물이지만, 복수를 꿈꾸는 한편 끔찍한 과거와 암흑 속에 매몰된 삶에서 진정으로 벗어나는 것을 꿈꿨을 가능성이 높다. 즉, 복수의 대상을 성공적으로 제거했더라도 정신이 갇혀있는 끔찍한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카산드라의 선택은 죽음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복수의 완성을 미리 준비하고 떠난 카산드라의 결말은 복수의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미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관객이 통쾌함을 느꼈다고 해서, 복수의 주체도 함께 그 기분을 느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카산드라의 입장을 헤아려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 의미가 있는 결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충격의 엔딩, 최악의 촬영기법

 하지만, 카산드라의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다 할지라도 그녀의 마지막을 다룬 카메라의 기법과 화면의 모습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캐리 멀리건'의 호연과 세련된 연출이라는 강점이 있음에도 이 영화에 백 퍼센트 만족감을 느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카산드라는 니나를 강간했던 남자를 침대에 묶어둔 채 복수의 최종 단계가 완성되기 직전까지 끌고 갔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녀의 복수는 실패로 돌아가고 니나를 죽음으로 몰았던 그 남자에게 아주 가학적인 방식으로 최후를 맞는다. 그런데, 영화는 이 폭력적인 장면을 무려 3분에 가까운 시간동안 스크린에 노출시킨다. 여성이 남성의 무릎에 짓눌려 죽는 장면을 장시간 화면에 전시하는 포르노적 카메라 기법에는 그 어떠한 윤리적 잣대도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의 의미와 감독의 의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될 정도로 최악이라 느낀 장면이다. 이 충격적인 엔딩이 가져다 준 불쾌감의 여운은 앞서 느꼈던 작은 복수들의 카타르시스나 영화의 흥미로운 텐션 자체를 모두 잠식시켜 버린다는 점에서 엄청난 옥의 티로 다가온다.

세련된 연출, 통통 튀는 색감

최악의 촬영 기법이 엔딩에 사용되고, 씁쓸한 결말을 남겼지만 <프라미싱 영 우먼>의 장점은 세련된 연출 방식에 있다. 진척이는 내용 없이 빠른 호흡으로 장면을 전환시키고, 별다른 결점 없이 그 어떠한 상황도 손쉽게 헤쳐나갈 수 있는 주인공의 완벽한 설정이 더해져 복수의 순간마다 소소한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 자극적인 회상 장면을 첨가하지 않았음에도, 비극을 겪은 주인공의 감정과 경험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고, 상황 전달에 무리가 전혀 없다는 것 역시 세련된 연출로 만들어낸 특징이다.

극에 등장하는 영상미의 색감 역시 굉장히 강렬한 시각적인 효과를 일으킨다. 주간 씬들에서는 유독 핑크색과 하늘하늘한 톤의 러블리한 컬러들이 많이 활용되었는데, 이는 비극에 매몰된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이 지향하는 행복을 의미함과 동시에 정의 구현을 위해 꿈꾸는 핏빛 복수와 대비된다는 모순적인 의미를 지닌다. 카산드라의 의상, 메이크업, 방 인테리어까지 모든 요소들의 색감이 튀고 화려해서 영상 전반에서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아 시각적인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캐리 멀리건의 압도적인 연기력

 <프라미싱 영 우먼>은 그야말로 '캐리 멀리건'이 원톱으로 이끌어가는 작품이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그녀의 존재감은 온전히 빛나며 장면 하나하나를 휘어잡는 연기력 또한 압도적이다. 외모적으로는 유약해 보이지만, 술에 취한 연기를 하다가 남성을 오로지 대사만으로 응징하거나 가해자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드는 장면에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광기와 에너지가 강하게 담겨져 있다. 잠깐의 로맨스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러블리한 모습부터 신경을 건들인 운전자의 차를 사정없이 부수는 광기 어린 모습, 그리고 최종 복수를 시행하는 비장한 모습까지. 극중 굉장히 다채로운 면들을 보여주는데, 매번 바뀌는 캐릭터가 항상 살아있다. 원래 연기 잘하는 배우인 것은 알았지만, 이 작품 속 '멀리건'의 연기력은 분명 그녀의 배우인생 올타임 레전드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페미니즘 영화?

성폭력 피해에 대한 증오심을 가진 여성이 꾸미는 치밀한 복수극인만큼, 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영화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맥락적으로 애매한 부분이 있다. 우선, 작품 속 등장하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모두가 금방이라도 성폭행을 저지를 여지를 갖고 있는 인간 쓰레기 말종처럼 그려진다. 스토리의 극적인 힘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였을 지는 모르겠으나 남성을 마치 절대 악으로 취급하는 전개 방식은 지나치게 일차원적이다. '라이언'마저 인간 쓰레기 중 하나로 분류되면서 결국 남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아예 갱생이 불가능한 성별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건가 싶었다.

매일같이 클럽에서 술취한 여성을 연기하며 남성들을 응징하는 복수 장면들도 결국은 타인에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선사하기 위해 자신의 성적인 약점을 무기로 사용한 셈이다. 그녀가 혐오하는 성범죄의 추악함을 드러내기 위한 행위였지만, 이 같은 행위를 밥 먹듯이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과연 이 작품을 올바른 페미니즘 서사의 영화라고 볼 수 있을까 싶다. 페미니즘적 요소가 담겨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잘 만든 페미니즘 서사의 영화라고 보기에는 약간의 어폐가 있다.

복수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운 까닭

 결과적으로 가해자는 살인죄로 체포되는 것으로 응징되었지만, 그 대목에 '카산드라'가 살아있지 않다는 것은 복수가 성공했다는 기분을 완벽하게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카산드라가 생전에 했던 복수들 역시 찔끔찔끔 카타르시스를 주기는 했지만, 그 역시 매번 통쾌함을 주지는 않았다. 술 취한 자신을 강간하려던 남자들을 통쾌하게 응징하기는 하지만, 그 응징을 이끌어내기까지 카산드라는 공포의 순간을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에 과연 이 복수들이 그녀가 겪었던 괴로움을 온전하게 보상해준다고 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BGM으로 'Toxic'이 등장하고, 복수의 막이 열린 순간 복수를 성공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가해자에게 과거의 행적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상기시키고,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철없던 시절의 실수, 학창 시절의 추억 정도로만 여기던 악인에게 공포와 죄책감을 주입시켜 주어야 했다. 하지만, 카산드라가 죽음으로써 가해자는 범죄자로서의 처벌은 받게 됐지만, 자신이 '니나'에게 저질렀던 짓은 자신이 저지른 더 큰 범죄로 인해 완전히 흐릿해져 버린다. 카산드라의 의도대로 결말이 완성이 되었음에도 끝내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니나'에 대한 복수를 분명하게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가장 행복하게 웃는 순간 통쾌한 한방을 날려준 건 단발적인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순간이긴 하다. 하지만, 그 순간의 환호가 무엇을 향한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영화는 결국 관객에게 씁쓸한 조소를 남겼을 뿐이란 걸 뒤늦게 파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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