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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Feb 25. 2021

[영화 리뷰] 남매의 여름밤 (2020)

공감하기엔 싱겁기 그지없는 감성 (윤단비 감독/한국영화/독립영화)

이동진 평론가 원픽, <남매의 여름밤>

 코로나 팬데믹을 직격타로 맞은 한국 영화산업은 2020년 그 어느 해보다 부진했지만,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극찬을 받은 <남매의 여름밤>이 의외의 수작으로 등극했다. 특히 이동진 평론가가 뽑은 2020년 올해의 한국영화 1위로 뽑히면서 영화를 보기 전부터 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네임드 평론가의 평이 꼭 정답인 것만은 아니지만, 왠지 평이 좋으면 믿고 봐도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남매의 여름밤>은 전반적으로 취향에 맞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워낙 평이 좋아서 안 보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댁에서 보낸 여름날의 추억

 <남매의 여름밤>은 여름방학동안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2층 양옥집에서 생활하게 된 아빠, 옥주, 그리고 동주 세 가족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재개발지구 반지하에 살던 옥주와 동주는 말수 없는 할아버지와 익숙지 않은 환경에 다소 어색함을 느끼지만, 금방 적응하여 소소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후 명절 외에는 왕래가 없었던 고모까지 2층집에 합류하게 되면서 흩어져 있던 가족은 오랜만에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가족들 모두 나름대로의 문제를 껴안고 있지만, 양옥집에서 품는 이들의 정서는 제법 따뜻하다.

 특별한 서사나 사건의 등장은 없고, 오직 '옥주'의 시선에서 여름날의 흔적들이 자연스럽게 전개될 뿐이다. 잔잔하고 싱겁지만, 어린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적적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극을 관통하는 중심 사건이 없다보니 인물 클로즈업 쇼트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그 대신 풍경에 집중한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양옥집의 마루와 텃밭, 오랫동안 집안에 쌓여있었을 곳곳의 다양한 소품들, 창밖에 드리운 어두운 달빛 등...다소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장면들이 많았지만, 한적한 여름날의 감흥을 유발하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철저히 경험에 의지하는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감상 포인트는 관객 개인의 경험 여부다. 이러한 싱거운 잔향의 독립영화들이 다 그렇듯 공감하지 않으면 깊은 의미나 이렇다 할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데, 이 작품 역시 다를 바 없다. 할아버지 집에서 방학을 보냈던 어린 날의 추억,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추억을 만들어가는 가족의 모습에 대한 잔상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지 않다면, 이 작품은 그저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작품 정도에 그치고 만다.

 사실 필자도 이 작품에 공감하지 못한 쪽에 좀 더 가깝다. 높은 평점과 호평 일색인 평론가의 말들이 무색하게 좀처럼 깊은 감흥을 느끼기 어려운 작품이라 느꼈다. 극 결말부에 아빠가 끓인 찌개를 두고 실수로 물을 더 넣어 싱거워졌다고 말한다. <남매의 여름밤>이 바로 그 싱거워진 찌개와도 같은 영화다. 한국 독립영화 특유의 느린 전개와 불필요한 장면들의 향연, 지나친 풍경 묘사는 지루함을 유발하고, 맘속 추억의 여정을 떠나기엔 무미건조하다. 특히 나와 같은 요즘 세대라면 더욱 공감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고, 20대인 나보다 조금 윗세대의 사람들이 봐야 자신의 추억을 꺼내 깊은 공감을 내비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옥주는 왜 서럽게 펑펑 울었을까

 건강이 좋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결국 돌아가시고, 장례식까지 다 치른 후에 아빠, 옥주, 동주 세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는 것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장례식까지 아무렇지 않아 보였던 옥주는 모든 일을 마치고 한시름 덜어놓은 채 저녁을 먹는 그 자리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온다. 뒤늦은 타이밍의 눈물은 무엇을 의미할까.

 누군가의 빈자리를 느낀다는 것은 한순간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장례식을 마칠 때까지 옥주가 눈물 한 방울 없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이라는 그림자가 아직 자신에게 드리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는 순간 문득 할아버지가 매일같이 물을 주시던 창밖의 텃밭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순간 식사 자리에 할아버지가 부재하다는 사실이 비로소 온전하게 느껴진다. 결국 옥주에게 드리운 생생한 현실은 부재를 완벽히 인지하며 서러운 눈물로 이어진다.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가족의 삶, 흩어졌던 가족을 뭉치게 해준 구심점과도 같았던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종합적으로 마음 속에 와닿은 것이다. 눈물이 터지기 앞서 옥주는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찾아와 가족이 다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꿈꿨다. 고모에게 단 한번도 꿈을 꾼 적이 없다고 말했던 옥주가 꾼 첫 꿈이었다. 꿈 속에 닿지 않는 행복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은 옥주가 자신의 꿈을 도피처라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인데, 현실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드리워진 순간 소녀에게도 결국 도피처가 필요해진 셈이다. 맞닥뜨리기 힘든 생경한 현실은 결국 다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가왔지만, 분명 옥주의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그 해 여름날들의 기억이 추억하고 싶은 장면들이 아닐지라도, 의미있던 날들 정도로는 기억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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