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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Aug 21. 2021

혼자 사는 사람들 (2021)

혼자됨의 양면성 (독립영화/넷플릭스 영화/공승연)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2021)

감독: 홍성은

출연: 공승연, 정다은, 서현우 등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90분

개봉일: 2021.05.19

혼자가 편한 세상에 찾아든 균열

 '진아(공승연)'는 카드사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는 고객 상담사다. 불친절한 언행이나 욕설을 일삼는 진상 고객을 상대로도 흔들림 없이 메뉴얼대로 침착하게 대응하는 그는 회사 동료와도, 이웃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 언제나 이어폰을 낀 채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며 홀로 밥을 먹고, 홀로 출퇴근을 하고, 아파트에서 만난 이웃이 말을 걸어도 본 체 만 체 한다. 마치 시체처럼 소리 없이 살아가지만, 그의 고요한 일상은 평화롭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옆집에 살던 이웃이 고독사를 당하고,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인 '수진(정다은)'의 교육까지 맡게 되면서 평화롭던 일상에 변수가 찾아든다. 진상 고객의 통화도 척척 해결하는 똑부러지고 이성적인 인물이었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사건들은 예상치 못한 파동을 일으키며 진아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혼자이고 싶지만, 외롭기는 싫은

 굉장히 공감이 갔던 작품이다. 주인공 '진아'의 모습에서 4-5년 전의 나의 모습이 비춰졌기 때문. 사람들은 누구나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고,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혼자만의 일상이 편할 때가 있다. 학교건 회사건 관계의 연속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더더욱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욕구와 복지, 여가 시간을 중시하게 된 요즈음에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혼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을 것이다. 

 혼자가 편해서 일명 자발적 아싸를 자칭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혼밥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 굳이 연락을 하지 않고, 직장 동료들과 교류를 형성하지 않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이러한 일상이 반복됨으로써 무의식이 형성되고, 스스로가 혼자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으며 외롭다는 심리와 함께 정신적인 타격을 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하루하루의 반복 속에 본인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끼어들면 이들이 견고하게 쌓았던 마음의 장벽은 무너지고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균열이 찾아온 '홀로' 라이프

 혼자가 편하다는 것을 분명 인지하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고 싶은 욕구 또한 존재한다. 물론 본인 스스로가 이러한 욕구를 인식할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상관없지만 '진아'처럼 17년 전 집을 나갔다 갑자기 찾아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거는 아버지, 그리고 만나자마자 친근하게 쫓아다니며 대화를 걸고 붙임성 좋은 성격을 가진 '수진(정다은)'같은 인물이 끼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이 짧던 길던 간에 그 누군가로 인해 마음 속에 새로운 공간이 생겨나버렸고, 그 사람들이 갑자기 부재하게 될 경우 그동안에 없었던 공허함과 외로움이라는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몰랐을 때는 상관 없지만, '함께'의 맛을 조금이라도 알아버리면 혼자 살아온 나의 환경은 공기부터가 달라진다. 혼자가 편하고 안정감도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애정과 관심도 필요할 때가 있다. 극은 혼자이고 싶지만, 사실 혼자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함으로써 자의건 타의건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를 담는다. 

꼭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이어야 할까?

 본작이 혼자이고 싶으면서도 외롭고 싶지는 않은 현대인들의 모순적인 감정을 담았다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에서 찾지는 않는다. 진아는 수진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와 함께 관계를 맺는 대신 깔끔한 작별인사를 택했고, 아버지와는 홈캠을 통해 아버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즉, 진아의 결말에 누군가와 '함께'는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는가. 진아는 여전히 혼자를 택했지만, 자신이 강박적으로 추구해 온 단절된 관계 속에서의 삶에서는 벗어났다. 의도적으로 방을 어둡게 만들었던 블라인드를 쳐냈고, 기계처럼 정해진 멘트만을 반복하던 콜센터 회사에도 휴직계를 냈다. 그리고 수진과 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를 통해 회피가 아닌 깔끔하게 관계를 마주하는 법을 배우며 비로소 처음으로 웃을 수 있게 됐다. 그는 혼자의 삶을 추구하는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예민함에 절어있는 상담사 진아, 공승연의 몰입감 있는 연기력

 '공승연'은 그동안 여러 작품을 해왔지만, 연기력으로 두각을 나타낸 배우는 아니었는데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혼자 끌어가는 공승연의 연기는 상당한 무게감과 흡입력을 가진다. 그가 연기한 '진아'는 타인이 톡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예민함에 절어있는 인물임과 동시에 콜 상담을 할 때만큼은 어떠한 만행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멘탈을 가진 소유자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 1인 가구를 대표하는 인물이면서 가족에게 무관심하고, 이웃은 그저 타인에 불과하며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게 감정을 투여하길 원하지 않는다. 삶의 재미를 상실한 듯한 이러한 인물의 모습을 공승연은 건조한 눈빛,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타인을 매섭게 바라보는 서늘한 표정, 기계 같은 말투로 상담 고객들을 대하는 무료한 목소리로 제법 훌륭하게 캐릭터를 소화한다. 지금까지 본 그의 연기 중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진 캐릭터가 바로 본작의 '진아'다. 

(나의 이야기)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앞서 '진아'에게서 나의 모습이 엿보였다는 이야기를 조금 더 언급하고 싶다. 실제로 4-5년 전의 내가 행해왔던 모습들과 진아의 모습들이 겹쳐 보이는 부분들이 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혼자가 편했고, 나만의 루틴과 영역이 있는데 이 경계선을 함부로 침범하는 붙임성 좋은 사람들을 굉장히 불편해 했다. 분명 선의에 의해 다가온 사람들이었겠지만, 타인을 자꾸만 밀어내는 행동들로 인해 당연히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보자면, 진심으로 혼자 있고 싶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혼자가 편했으면서도 타인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했고, 진심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기를 바랐다. 관계 맺기를 통해 상처 받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타인과의 거리를 정해둘 수 밖에 없었고, 혹시나 누군가가 그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려 하면 지레 겁을 먹고 장벽을 더 높이 세워버렸다. 그럼에도 '진아'와 같이 본디 나 자신이 혼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필연적인 외로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은 내가 진심을 열 수 있는, 정말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기를 원했던 걸지도. 물론 지금은 과거와 생각부터가 달라져 편한 사람들과 더 나은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감상함으로써 과거의 경험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주변에 '혼자'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누군가의 따뜻한 어루만짐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면, 조금의 온정적인 눈길과 관심이 필요한 것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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