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빵집 탐사기
빵의 위대함
기나긴 줄의 끝이 어디일까? 끝은 알 수 없어도 줄의 시작에는 항상 빵집이 있다.
새벽의 동네 어귀에서도, 한담 해안도로에서도.. 그 시작점에는 환한 승리자의 웃음을 지으며 빵집을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여행자의 귀한 시간 붙잡고 있는 것일까?
1. 버터 모닝
한적한 동네 어귀에 위치한 버터모닝은, 갓 나왔을 때가 맛있다. 고소한 버터향과 촉촉한 식감 그리고 박스 바닥에 깔린 설탕 코팅이 조화가 그때가 가장 완벽하다. 다만 그 빵을 먹으려면 매우 부지런해야 한다. 당일 방문 예약밖에 안 되는 탓에 새벽(6시 30분)부터 줄을 서서 예약을 해야, 당일 10시 30분, 11시, 1시에 갓 구운 빵을 받을 수 있다.
이 걸 먹어보려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보았다. 찾아본 시간보다 늦은 아침 7시쯤 도착했다. 6시부터 줄을 선다는 후기를 보고 겁이 났던 것에 비하면 한산한 느낌이었다. (7시 10분쯤에 내 뒤로 선 긴 줄을 보며 안도하긴 했지만..) 사람 사는 게 그렇듯, 해가 늦게 뜨는 이 겨울에 똑같이 일어나기 힘들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주문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원하는 빵 개수와 수령 시간대만 예약하고 돌아가면 끝!
빵이 나올 시간에 맞춰 가면, 입구에서부터 빵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촉촉 보다는 포실포실한 느낌의 에그타르트와 버터향 가득한 버터모닝이 뜨끈한 채 포장된다. 이동 중에 눅눅해지지 않게 뚜껑을 꽉 닫지 않는데, 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향기에 자꾸만 빵에 손이 간다. 개인적으로는 명실상부 버터모닝이 더 괜찮았다.
결 따라 뜯어내면 한입에 구겨 넣을 만큼 부드럽고, 바닥에는 누른 설탕이 사탕처럼 식감을 돋운다. 새벽부터 기다린 수고 때문인지, 갓 구운 빵의 마법 때문인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식빵 하나를 다 먹었다. 식빵 사이즈가 좀 더 컸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이들이 왜 새벽부터 예약하는지 알 것 같다.
2. 노티드 도넛
동생이 도넛을 하나 사다 줬다. 하얀 케이스 위에 귀여운 스마일 캐릭터 스티커가 참 마음에 들었다.
안에 담긴 빵도 커피와 참 잘 어울렸다. 이름이 궁금해 물어보았더니 '노티드 도넛'이라 했다. 한창 유명했던 도넛 가게가 제주에도 자리 잡고 있었다.
결국 나도 갔다. 워낙 바다가 예쁘고 핫플이 많은 한담 해변은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노티드 도넛 앞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조금 더운 날이었는데, 그냥 돌아갈까 생각할 때쯤 매장 직원이 귀여운 부채를 나누어 주었다. 이 귀여움이 나를 좀 더 붙잡았다. (나는 귀여운 것에 매우 약하다) 조금 더 버텨 보자 하고 다짐하는 사이 20분이 지났다.
두 번을 못 올 것 같아, 골고루 6개를 주문했다. 어느새 내 뒤에는 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아.. 주문을 끝낸 사람들이 왜 뿌듯한 얼굴로 빵 봉지를 들고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제주에서만 판다는 제주 녹차 도넛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대부분 도넛이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우유크림 도넛이 가장 맛있었다. 빵 사이에 두껍게 담긴 크림 양도 만족스러웠거니와 가벼운 크림 맛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크림 양이 혜자라 한 입 베어 물면 크림이 손에 묻었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지저분함이었다. 커피와도 잘 어울리는 맛이다.
3. 랜디스 도넛
다른 두 곳과 달리 차로 지나 만 가도 기다란 줄을 볼 수 있는 빵집이다. 커다란 도넛 조형물과 긴 줄이 인상적인 이곳은 랜디스 도넛이다. 1시간은 족히 기다릴 것 같은.. 위 세 곳 중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도넛 가게다.
아이언맨이 좋아하는 도넛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이언맨2에서 토니 스타크가 랜디스 도넛을 먹는 장면 때문에 유명해졌다는데, 그 도넛 가게 국내 1호점이 제주였다. 사실 여기는 이렇게 유명한 곳인 줄 모르고.. 지금처럼 붐비기 전에 다녀왔다.
굉장히 많은 종류와 생소할 만큼 큰 크기의 도넛이 즐비해서 굉장히 인상 깊었다. 핫플인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도전적으로 주문했을 텐데, 그때는 모르고 익숙하고 좋아하는 종류로만 골랐다. 지금은 조금만 늦어도 도넛 종류가 빠르게 품절된다고 한다.
미국에서 시작한 도넛이라 그런지 매우 달았다. 1개만 먹어도 급속 당 충전이 되는 기분이랄까.. 달달함 치사량이 낮은 사람이라면 커피의 도움이 필요하다. 혹은 아이언맨처럼 당 충전이 필요하다면, 빠르게 행복감을 채워줄 도넛이었다.
'빵'이란 글자만 봐도 고소하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코 끝에 빵 냄새가 퍼지는 느낌이다.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 한 겹 한 겹 찢어지는 촉감, 포실포실한 식감이 자꾸만 떠오른다. 절로 배가 고프다. 오늘 간식은 빵을 먹어야겠다.
"달달한 당이 당기고, 배가 고파지는 글"
by.yoyo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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