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서랍이 포함 안 된 아주 기본적인 디자인의 조립식 가구만 있다.들어갈 것 많은 책상의 경우, 필기도구와 집게 같은 작은 것들은 서랍식으로 된 별도의 미니 수납함을 설치해 보관 중이다.
작은 문구용품들은 끼리끼리 뭉쳐서 잘 쓰고 있지만, 크기가 있는 것들은 수납함에 들어가지 않아 늘 떠돌이 신세였다. 스템플러, 계산기, 딱풀, 가위 등 종류도 제법 많다.
얘들을 바구니 하나 놓고 다 몰아넣고 쓰면서 솔직히 정신이 사나웠었다. 어찌 보면 볼펜보다 더 자주 쓰는데 너무 외면하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짜잔. 외면당했던 주인공들이다. 바구니에서 꺼내 펼쳐보니 이렇게 많았나 싶다. 저 대왕확대경은 사연이 있다. 몇달 전, 액셀과 포토샵 공부를 위해 학원에 다니면서 산 것이다. 교재 글자가 너무 작아서.
노안 때문에 잘 안 보여서 저거 들고 열공했다는 기억만 쪼금 남았다. 정작 액셀과 포토샵에 대한 내용은 희미해지고. 아~~ 뇌세포여. 이 대목에서 슬퍼지려 하네.
사연많은 대왕확대경을 비롯한 문구들을 어떻게 정리하느냐. 바로 신발상자와 네트망을 이용해 2단 수납함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신발상자가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좋았다. 신발을 며칠 전에 사서 상자 상태도 괜찮고. 다행인 건 네트망과 상자의 너비가 딱 맞아 이게 무슨 우연인가 했다. 상자의 뚜껑 부분을 잘라 분리하는 것으로 시작!
네트망을 상자 안쪽에 고정시켜 준다. 이때 쓰이는 것이 글루건이다. 고정력이 상당히 강해 플라스틱, 종이, 원단, 가방 등을 리폼할 때 두루두루 잘 쓸 수 있다.
단단히 고정한 네트망과 상자. 뭔가를 걸 수 있는 모양새가 나왔다. 상자를 리폼하면 예쁜 도화지나 시트지를 붙이곤 했는데 이번에는 패스.
상자 상태가 가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깨끗하고, 저 붉은색 브랜드 로고와 상자 색깔, 흰색 네트망이 잘 어울려 있는 그대로 쓰기로 했다.
신발상자 뚜껑은 위에 고정해 전체적으로 2층 수납함 형태가 되게 만들었다. 뚜껑의 뚫린 부분이 밖을 향하도록 고정했는데
어랏. 이게 뭐야. 붙이고 나서 보니 뚜껑 바닥에 덮개가 있네. 이걸 들어봤더니 (사진 왼쪽) 사선 부분에 덮개를 고정하면 뭔가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뻥 뚫린 부분에 우유팩을 잘라 공간을 만들까 고민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할 줄이야.
난 어떤 물건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지금처럼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 짜릿함을 느낀다. 수납바구니가 공간에 딱 들어맞을 때도 그렇고.
거친 테두리 부분을 마스킹테이프로 마무리한 2단 수납함. 2층이 지붕처럼 보여 이동식 카페 같기도 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살짝 돌려서 찰칵!
수납함을 완성했으니 문구들 자리를 잡아본다. 일단 오른쪽 사진부터 보면 대왕확대경, 자, 칼, 가위를 넣었다. 이 사진부터 먼저 봐달라 한 것은 이것들 뒤에 스템플러심을 놓았기 때문이다.
난 집안 물건을 정리수납할 때 '빈 공간'을 활용하는 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끔 꺼내 쓰는 스템플러심처럼 사용빈도가 낮은 물건들을 빈 공간에 자리 잡아줘야 잘 쓰는 물건들을 좀 더 여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
스템플러심을 넣은 곳 옆에는 연관성이 있는 스템플러들을 놓았다. 칫솔상자가 적당해 보여 잘라서 쏙 넣어봤다. 바로 옆 넓은 공간에는 라벨지와 미니다이어리를. 이때도 수시로 사용하는 다이어리를 맨 앞으로 빼주도록 한다.
네트망에는 고리가 달린 바구니 하나 걸어서 테이프와 풀을, 그리고 2층은 계산기를 넣어봤다.
한 바구니 안에서 좁게 살았던 문구들에게 새집을 만들어주니 이렇게 기분 좋을 수 없다.
주의할 점이 있다. 난 2층에 계산기만 넣어 네트망을 하나만 썼는데, 수납할 물건이 여러 개라면 네트망을 두 장 정도 겹쳐서 단단히 고정해 주도록 한다. 또 무게감이 나가는 물건은 되도록 아래칸에 배치해 주기.
이것도 살짝 돌려서 찰칵!
책상 선반에 안착한 2단 수납함이다. 물건을 뒤적뒤적하지 않고 바로 꺼낼 수 있어불편함을 덜었다.
종이로 된 상자나 쇼핑백을 리폼한 수납함들은 사용감이 쌓일수록 내구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난 수납함 상태를 보고 보강해서 좀 더 쓰거나, 안 되겠다 싶으면 해체해서 배출하고 있다.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원목 등 튼튼한 소재로 만든 제품들보다는 수명은 짧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소중함은 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