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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처럼> 아수라로 몸소 뛰어들어가는 마음

넷플릭스 드라마 <아수라처럼> 리뷰

by yoo

드라마 <아수라처럼>은 타키코의 다급한 표정으로 시작한다. 이 드라마를 아직 볼지 말지 조차 결정하지 못한 시청자에게 긴장하라고 재촉하듯이 말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네 명의 자매는 '아버지의 불륜'으로 부모 집에 모이고, 각자 분개하거나 혹은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속사정은 꽤나 복잡하다. 맏이 츠나코는 유부남과 밀회 중이고, 둘째 마키코는 남편의 바람을 의심 중이며, 막내 사키코는 가난한 복서인 남자친구 진나이의 성공이 훨씬 중요하다. 깐깐한 성격의 타키코만 열불이 나 있다. 네 인물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탁월한 시작이다. 같은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그려내는 게 그 사람의 특징을 단번에 드러내는 방법 아닌가.


고레에다 감독은, 사려 깊게도, 네 명의 인물에게 충분한 이야기를 부여한다. 네 자매의 각자 이야기로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네 자매 맞은편에 있는 네 명의 남성 이야기도 꽤나 흥미롭다. 드라마 상에는 시간이 충분히 부여되지는 않지만, 이면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는 고레에다 작품의 큰 장점이다. 비교적 길이가 짧은 영화에서도 고레에다는 주변부에 등장하는 인물에도 충분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가령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주인공의 매형이 조연으로 나오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매형 시점의 하루가 궁금해진다.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에서도 아이들을 하룻밤 재워준, 딸과 손녀가 집을 떠난 사정을 가진 노부부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들의 사정을 중심으로 그린 뒤 아이들이 찾아온 하룻밤의 장면을 클라이맥스로 둔다면 꽤나 재밌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여러 인물들에 각각의 사정이 상상된다면 이는 잘 쓰인 각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맞닥뜨린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된다면 그건 섬세한 연출 덕일 터이다. 네 명의 여 주인공에 더해 주변 인물들, 심지어 아버지를 '파파'라 부르며 따르는 꼬마의 하루도 궁금해지는 게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그리고 여러 시점으로 상상하면서 쌓아 올린 감상의 볼륨이 드라마를 더욱 탄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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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시선을 따라갈 것인가. 마치 MBTI의 네 가지 항목처럼, 우연하게도 네 자매 중 누구에게 마음을 줄 것인가로 내 마음도 분류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 선택은 둘째 마키코이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통화를 하면서 뜨개질을 하는 모습이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통화를 하면서도 무언가를 자꾸만 만들어 내야 한다. 전화 상대 타키코가 자신의 말에 집중하라고 타박하지만, 그녀에겐 타키코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가득이다. 사춘기의 두 자녀가 그렇고, 불륜이 의심되는 남편이 그렇다. 쉰이 넘었는데도 삶에서 헤매는 언니와, 자꾸만 찾아오는 불행에 휘청이는 동생들이 그렇다. 그렇지만 그녀는 걱정을 먹고 산다. 아니 걱정을 먹어야만 살아있을 수 있는 것 사람 같다. 코바늘로 꿴 실이 옷감이 되는 것처럼, 실처럼 쏟아지는 걱정들이 만들어낸 존재가 바로 그녀이다.


헝클어진 실을 꿰듯 그녀는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간섭한다. 슬픔은 걱정하는 사람의 몫인 법, 극도의 스트레스로 자신도 모르게 가게의 통조림을 훔치고야 만다. 그렇지만 걱정이란 건 한편으론 사랑하는 자의 특권이다. 자신보다 타인을 사랑하는 데 익숙한 그녀는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의 사정으로 번민한다. 자기 자신만을 아는 언니와는 다르다. 예뻐 보이기 위해 가지를 끊고 열매를 자르는 꽃꽂이와 삶의 태도가 닮아있다. 그녀는 꽃의 아름다움을 좇듯 그녀 자신만을 사랑한다. 그런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의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이지, 전화를 하면서 쉼 없이 뜨개질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녀의 남편은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가, 피우지 않았는가. 드라마는 끊임없이 드는 의문에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다. 남자는 악인도 선인도 아닌 사토미일뿐, 그를 악인으로 혹은 선인으로 만드는 건 마치코의 몫이다. 그게 바로 아수라, 지옥이다. 지옥이란 내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현실이란 일어난 것일 뿐 그 자체로 아무 감정도 뿜어내지 않는다. 동요하는 건 우리의 마음뿐이다. '나 사실 당신 안 믿어'라고 읊조리는 그녀는 스스로 아수라로 들어가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상 매혹적인 이야기란 게 그런 거 아닌가.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일. 굳이 뜨거운 불속에서 타버리길 선택하는 일. 그리고 그렇게 타오르는 불꽃을 망연히 감상하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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