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생각보다 따뜻한 곳일지도..?
대학 새내기 생활 1년을 마친 뒤.. 곧바로 겨울 계절학기를 이수하던 중, 미래를 위해 빠른 입대가 답이라는 생각에 바로 다음달인 1월 육군 현역 입영을 신청하고 마는 요즘작가.
빠른 결정과, 계절학기의 고난 덕에 걱정할 틈도 없이 입영일을 맞이하게 된다.
이틀 전, 머리를 밀기 위해 방문한 미용실.
"하... 집사님ㅋㅋㅋㅋ, 저 어차피 머리 미는거 인증샷 좀 남기려구요. 중간에 고속도로부터 내주실 수 있을까요?"
ㅋㅋㅋㅋㅋ맞다. 나는 대학새내기라는 튜토리얼을 갓 마친 파릇파릇한 또라이였다.
나와 비슷하게 만만치 않은 개그캐릭터이셨던 미용실 원장 집사님은 "어우~ 당연하지." 하시더니...
내가 차마 "잠깐만요!"를 외치기도 전에 머리 중앙에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뚫어버리셨다.
평소 짧고 깔끔한 머리스타일이 아닌 약간 길고(장발은 아닙니다) 반곱슬이던 내 찬란한 머리가 '투둑-'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 이게 정말 사실이냔 말이다.
살면서 수없이 머리를 잘라봤지만 이렇게 둔탁하게 떨어지는 머리카락의 소리는 처음이었다.
물론, 그게 처음이어야 했다.
'젠장.. 내가 힘들게 기른 주황염색 반곱슬머리... 내 너를 이 길이까지 키우기 위해 몇 달을 노력했거늘...
미안하다. 2년 뒤에 다시 키워줄게..'
속으로 눈물을 머금을 새도 없이 나는 웃길 소재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손은 뇌보다 빨랐다.
어느새 핸드폰 카메라 어플을 구동시킨 나는, 친구들에게 인증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고속도로 컷, 어떤데."
곧바로 친구들에게 전송하며 웃었다.
다시 돌아와서, 입영 당일.
점심으로 동해의 오션 뷰를 보며 최애 음식인 돈까스를 한 접시 비우고, 사회의 음식과 작별 인사를 나눈 나는 그렇게 입영했다.
남들 다 간다는 그 논산 말고, 해안 지역 어딘가의 신병교육대대로.
*육군 입영은 논산훈련소 또는 사단신병교육대대에 배치 받는다.
마지막으로 같이 온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걱정 안해도 된다니까~ 잘 갔다 올게. 응 응. 전화 시간 받으면 바로 연락할게. 어어 나도 사랑해.”
아주 많이, 매우, 말도 안 되게 긴장한(줄여서 비속어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지만 일단 좋은 말로 적어보았습니다) 상태였지만, 가족들에게 쫄아 있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한껏 여유로운 척 하며 안내하는 아저씨를 따라가며 애써 손을 흔들고, 웃어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옆에서 울고불고 질질 짜며, 가족들을 부둥켜 안고 난리를 치던 사람들이 어쩌면 약했던 게 아니라 솔직했던 것 뿐일지도 모르겠다.
나, 그리고 다른 입영자들은 꽤 낡은 건물의 강당 의자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높은지 잘 모르겠는 약장을 달고, 흰 머리가 잔뜩 난 아저씨와 살짝 벗겨진 머리의 아저씨들, 그리고 30대 초중반 쯤 되어보이는 군 간부 형님들이 한껏 가오를 잡고 있었다.
‘하 씌… 조졌네.. ㅋㅋㅋㅋㅋ진짜 이제 시작이구나.’
라고 긴장하며 얼어있던 나는, 곧이어 예상과는 다른 ‘간부(일반 병사가 아닌 부사관, 장교들)’들의 모습에 긴장을 풀었다.
아저씨들이 굉장히 정중하고 매너있게 우리, 입영자들을 대하는 모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뭐 불편한 것 없습니까?!”
“화장실 다녀오고 싶은 분들은 바로 옆의 빨간 모자 조교들에게 말하고, 열 맞춰서 같이 다녀옵니다.”
뭐.. 어젯밤까지도 수없이 밤마다 떠올렸던 그 상상 속 군대는 아주 험악하고, 사람들을 막 굴리는 그런 곳이었는데.. 믿기지 않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꽤 선배들의 경험담에 MSG가 많이 들어갔었구만ㅋㅋㅋㅋ 군대.. 꽤나 따뜻하고 인간적인 곳일지도..?’
이곳저곳에서 온 녀석들이 몇 시간에 걸쳐 모두 도착하자, 가장 짬밥이 높아 보이는 아저씨가 강단에 올랐다.
“여러분, 지금부터 몇 가지 확인과 검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잘 따라주시고, 모든 확인이 종료될 때까지 본인 차례가 끝나면 의자에서 가만히 대기해주시면 됩니다.”
아.. 군 생활이 약 600일 정도라고 했던가..?
완전 개꿀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딱봐도 인원도 많고, 얘네 전부 이것저것 확인하려면 오늘 하루는 그냥 날로 먹겠구나..ㅋㅋ’
그렇게 한참을 신분증 확인과 건강 이상유무와 이런저런 검사(정확히 뭐뭐 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를 끝냈다.
예상했던 대로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런저런 과정이 다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는 숙소를 배정받았다.
뭐 이름은 생활관이라고 부르란다.
대한민국에서 ‘김이박’이라 불리는 3대 거대 문파에 속한,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소속원을 가진 명문세가의 후손인 나로서는 가장 앞의 1생활관에 배정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나다 순이었기 때문이다.
양 옆자리의 ‘똑같이 끌려온’ 녀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4주간 잘 부탁드려요!”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었다.
거의 뭐 그 순간만큼은 여느 대학의 새학기 개강시즌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새친구 만들기, 딱 그런 시간인 줄 알았다.
잠시 후 그 녀석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뚜벅뚜벅. 덜컥.
“모두 집중!!”
빨간 모자 쓴 조교가 생활관에 들어왔다.
이녀석.. 아까의 그 살갑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분위기가 꽤 심상치 않다..?
“자, 이제 떠날 사람들은 다 집에 돌려보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정식으로 ‘훈련병’ 신분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사회인이 아닙니다. “
‘네..?’
“지금부터 여러분은 각자 00번 훈련병입니다. 서로 이름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이름을 부르거나, 형 뭐 이런 호칭을 붙이거나 서로 말을 놓고 지내는 장면이 목격되면 바로 얼차려입니다. 알겠습니까!!”
“네..!”
“지금부터는 대답도 예 알겠습니다, 잘못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로 통일합니다, 알겠습니까!!”
‘뭐라는거야.. 잘못들었습니다는 뭐야 ㅋㅋㅋㅋ’
생각은 이랬지만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뭐..
“넵!”(나만 이런거 아니고 다같이 이렇게 말했다 ㅋㅋㅋ)
“넵 하지 말라고!!!”
“예 알겠습니다!!”
‘야..이 개..ㅅ.. 이렇게 돌변하는게 어딨어 이..ㅅ..’
그렇다. 이들은 당장 현역 복무가 어려운 이들을 다시 귀가시키고, 남은 인원들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망할ㅋㅋㅋㅋ.. 오래도록 들어왔던 그 군대가 맞구나 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모두 침상(설명하기 어려우니 검색해보길 바란다)위에 올라가 배정된 번호의 관물대(개인용 종합 사물함) 앞에 앉아, 조교의 ‘군대 튜토리얼 정신교육’을 한참동안 들었다.
뭐 이것저것 전부 가져온 소지품을 꺼내라길래 전부 꺼내두었다.
ㅋㅋㅋㅋㅋ진짜 별 어이없는 소지품을 가지고 온 녀석들도 많았다.
다 기억은 안나지만 뭐 전동 면도기, 수면안대, 뽀짝한 수면양말, mp3 등등ㅋㅋㅋㅋ
와…이녀석들 정말 캠프에 왔구나 싶은 경우도 많았지만 어차피 다 압수당했으니 놀릴 필요조차 없었다.
방심하고 있던 찰나, 조교 대신 들어온 소대장(훈련소에도 나름 소대장이 있다) 아저씨가 내 소지품을 헤집어 보던 중, 성경책을 집어들었다.
“야, 이거 뭐야?”
내 성경책을 집어들며 했던 말이었다.
엄마가 리폼해준 내 성경책은 연식이 좀 되어서 겉면에 천 스티커를 붙여두었기 때문에 당연히 무엇인지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그거… 성경책…입니다만?” 이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장난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성경책입니다..!”라고 군기 바짝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거 반출해야 되는지 소대장이 물어보고 올테니까, 잠깐 기다리고 있어. 반출해야 되면 집에 택배로 부쳐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넵.. 알겠습니다..!”
차마 인터넷에서 성경책은 된다고 적혀있었다고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런 말 해서 뭐하겠나. 여기서 안된다면 안되는 것일 텐데..ㅋㅋ
그건 그렇고 꽤나 웃긴 상황이었다.
“오빠가 다 해줄게!” 도 아니고 ㅋㅋㅋㅋ 본인을 3인칭으로 부르며 “소대장이 물어봐줄게”라니 ㅋㅋㅋ
아저씨 치고 말 재미있게 하네… 생각하고 있는 중에, 성경책은 안전히 내 손으로 복귀했다.
“그건 괜찮다고 하시네.”
“옙, 감사합니다!”
그렇게 소지품 검사도 끝내고 아주 아주 지루한 시간들이 지났다.
사실 입영 당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상 위에 정자세로 앉아서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농땡이 부리면 재미라도 있었겠지만, 막상 쉬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대기를 시켜두고 중간중간 계속 조교의 감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옆자리 사람과 간간이 속삭이며 대화하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첫 날 밤이 찾아왔다.
‘하… 겁나 지루한 하루였다… 매일 이렇게 보내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도 아까 확인했던, 방에 붙은 일정표에 적힌 내용들이 문득 걱정됐다.
‘뭔 별의 별 훈련이 다 있던데 ㅋㅋㅋ 여긴 뭐 가만있거나 굴러다니거나 둘 중 하나인가..’
대충 이불펴고 자려는데 조교가 또 다시 들어왔다.
“지금부터 침구류 펴고 정리하는 법 전파합니다. 한 번만 보여드릴테니 똑바로 보고 기억합니다. 알게쓈까!!!”
“예 알게쓈다!!”
3단 매트리스를 펴는 법은 초딩들도 아는데 대체 뭘 가르쳐주려고..? 싶었지만 일단 구경했다.
매트리스는 예상대로 그냥 펼치면 되는 것이었지만… 담요같이 생긴 초록색의 ‘모포’를 아주 그냥 칼같이 반듯하게 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fxxx… 거짓말 치지마… 잠 잘 때도 편하게 못 잔다고..?ㅋㅋㅋㅋㅋㅋ’
조교는 내일 오전에 기상하자마자 침구류를 본인이 보여준 것처럼 ‘볼륨감 있게, 반듯한 각이 보이도록, 베개까지 일자로 딱 떨어지게’ 정리해두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났다.
뭔가의 불침번 순서를 정하는 듯 했지만, 나는 첫 날 불침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누웠다.
다음날을 떠올리며 문득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나 생각해보니까 머리맡에서 울리는 알람도 못 듣는데, 혼자 못 일어나는거 아녀..? 옆 사람한테 깨워달라고 할까..?’
그렇지만 다음 날의 나를 믿고 일단 잠들기로 했다.
그렇게 첫 날이 지났다.
(각 에피소드 별 분량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시작의 묘사를 위해 이렇게 길게 적었을 뿐, 4화 이내로 훈련소 에피소드는 빠르게 종료될 예정입니다.)
짬밥: 군대에서 먹는 밥을 뜻하는 말이지만, 이것을 더 많이 먹었다는 말은, 더 오래 군생활 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짬밥이 높다 = 계급이나 복무기간이 더 높고 길다는 의미이다.
간부: 군대의 구성 인력은 3요소이다. 하나는 일반 병사, 다른 하나는 군무원, 마지막이 ‘간부’다. 간부는 부사관 혹은 장교를 총칭하는 말이다. 아 그냥 학교로 따지면 선생님 또는 교감, 교장선생님이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