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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May 27. 2018

472일간의 세계여행을 통해 배운 몇 가지

내 인생에 쉼표를 찍어가는 일

지난 3월, 나는 남편과 함께 472일간의 세계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평생 잊을 수 없는 472일간의 신혼여행이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도 차도 없이, 그저 배낭 하나씩만 등에 들쳐메고 아시아부터 유럽, 아프리카, 북미, 중남미까지 그야말로 세상을 누비고 다녔다. 지난 2017년은 나만의 갭 이어(Gap year)였다. 내가 살고싶은 대로, 내가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난 지금. 확신하건대, 나는 그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 


갭 이어(Gap year)란?
- 일종의 안식년/휴식기로 영국, 미국 등 대학 진학을 앞둔 아이들이 진로 탐색을 위해 여행이나 봉사, 인턴십 등을 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시간.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오바마의 딸도 갭 이어를 가진 걸로 유명하다.



나는 왜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걸까


여행 전의 나, 그러니까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조금 어긋나거나 뒤쳐지기만 하면 불안해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쩌다 이런 게 평범한 게 됐을까) 그러다 문득, '나는 왜 항상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걸까' 란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면서, 내 일생일대의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모은 돈, 경력 등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더라도, 여행 이후 다시 취업 준비를 하며 불안해할지라도, 평생 후회하지않을 만한 나만의 갭 이어(Gap year)를 갖고 싶었다. 그렇게 1년 3개월간의 갭 이어를 통해, 나는 내가 얼마나 빛나는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뚜벅뚜벅, 나와 세계여행을 함께한 배낭들


근거 없는 자신감, 그게 뭐 어때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모든 일에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이다. 주어진 길로 따라가지 않으면 불안해했던 내가, 평생 하지 못할 것 같았던 도전을 하고난 지금. 나는 더이상 못할 게 없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가득한 상태다. 나의 한계에 제대로 부딪쳐본 적도 없으면서, '난 할 수 없을거야'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던 지난 날과는 확실히 삶에 대한 자세가 달라졌다. 난 언제나 운도 없고 기회가 없다며 우울해했지만, 막상 그런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잡은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런 기회가 내게 오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랬던 내가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우리나라에 나 하나 일할 직장이 없겠냐'며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직 준비에 임했고, 마침내 국에 돌아온지 두 달째 나는 어느덧 성남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하는 중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나 자신을 믿어주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나'라는 마음으로 <근거없는 자신감>을 갖고 살아간다면 세상에 못 해낼 일들이 있을까?



@페루 와카치나 사막에서


자아성찰, 내가 나랑 친해지는 시간


지난 2017년은 나는 나도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들에 맞닥뜨리면서 나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말만 들어도 막연하게 느껴지는 <자아성찰>의 시간이었다. 그전엔 책을 읽으면서도 자아성찰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건지 알면서도 막상 자아성찰을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막막했다. 사춘기 때 자아정체성의 혼란이 오는 시기에 자아성찰을 하면 좋다던데, 그땐 자아성찰이 뭔지 내가 나를 어떻게 찾으라는 건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나는 매일매일 나를 들여다보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리스트를 만들어보고 생각하면서 나에 대해 공부했다. 2014년 취업 준비를 하며 자기소개서를 쓰기위해 나에 대해 고민했던 기억이 났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성취는 무엇인지, 가장 큰 역경을 겪었을 때 어떻게 극복해냈는지 등의 내 인생 전반을 돌아보는 질문들을 만나면서, 나는 나를 공부하고 내 인생을 돌이켜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달았다. 물론 그때는 단기간에 얼른 자소서를 써서 제출하기 바빴지만. 자아성찰, 말만큼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필요한 건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 지금 당장 종이 한 장에 나에 대한 키워드들을 적어보자. 좋아하는 썸남, 썸녀를 생각하듯 나에 대해 마음껏 궁금해해보자.




책, 다이어리, 커피 - 내가 사랑하는 달콤한 조합.


독서, 그리고 글쓰기


여행중 가장 좋았던 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았다는 점이다. 아니, 사실 매일 이동하고 여행 계획을 짜기 바빠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나를 배려해주는 남편 덕분에 나는 여행지마다 전망 좋은 카페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미처 읽지 못했던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연초가 될 때마다 다독왕이 될거라며 다짐해왔지만, 일상에 치인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독서였다. 장기여행의 특성상 종이책을 갖고 다니지 못하니 처음으로 전자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나 행복했다.


거기다 우연찮게 <중부매일>에 매주 여행 에세이를 기고하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매주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을 잘 쓰고 싶었지만, 막상 안 쓰던 글을 쓰자니 손에 익지 않아 고생을 단단히 했다. 글쓰는 감각을 키우기 위해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뭐든 반강제성이 있어야 잘하는 나는, 신문 기고를 하면서 매주 글을 쓰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독서는 집에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발로 하는 독서라는 말이 있다. 여행하면서 독서하는 건, 나의 오감을 활용한 최고의 공부였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


여행중보다 여행이 끝난 지금, 내게 더 와닿는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감사>다. 여행중엔 미처 알지 못했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와보니 모든 게 좋고 행복했다.


- 공중화장실이 이렇게 깨끗하다니, 거기다 휴지까지 공짜로 주네? 
- 밤 10시에도 편의점을 갈 수 있다니!
- 카페에 가방을 놓고 자리를 비울 수 있다니!
- 차에 가방을 두고 내려도 도둑맞지 않을 수 있다니!
-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니지 않아도 소매치기 당하지 않는다니!
- 길을 걸으면서 휴대폰을 들고 다녀도 안전하다니!
- 내가 먹고 싶으면 언제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다니!


한국에 온 내내 내 하루는 온통 느낌표(!) 투성이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어쩌면 당연한 것들이었지만, 막상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을 뿐 한국은 충분히 안전하고 깨끗하고 좋은 나라였다는 사실에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이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웃었지만, 나는 이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주변의 어떤 것도 당연한 건 없으니까. 나를 믿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겠다. 






작년 우리나라는 온통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열풍이었다. 주위의 기대에 맞춰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욜로 열풍은 한번 뿐인 인생 후회없이 살자는 달콤한 말이었다. 욜로 열풍 덕분에 다들 한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나는 그런 고민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 즐겁자고 무작정 벌어논 돈을 유흥으로 탕진하거나 하는 게 욜로가 아니다. 자신이 정말 무엇을 하고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자신에게 주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더 단단한 자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게 욜로고 갭이어를 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세요! 같은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다만 우리의 일상에 쉼표를 찍어가며 나아갔으면 좋겠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우린 살면서 한번쯤 배워보고 싶었던 악기 연주를 시작할 수도 있고, 일주일에 한 개씩이라도 글을 써나가며 훗날 내 책을 내는 꿈을 키워나갈 수도 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에 나만의 즐거운 시간 한 시간을 더해진다면 자연스럽게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알아가면서 없던 꿈도 생기지 않을까?


용기있는 도전 혹은 무모하고 대책없는 일은 고작 종이 한 장 차이지만, 세상에 '보잘 것 없는' 일은 없다. 그렇게 보일 뿐이지. 그대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그건 더이상 '보잘것 없는'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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