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이 우리를 어디쯤 데려다 놓는 일이다. 주민등록증이 생기고, 책임이 늘고, 아이였던 우리는 어느새 성인이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된다고 해서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나는 많은 아이들을 만나며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주 깨닫는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앞서가 있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이 더 많이 겪었다는 사실을 권력처럼 쓰지 않는 사람. 그래서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보다 그 사람이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지를 보게 된다.
내가 정말 어른이라고 느끼며 따르고 싶었던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모두 다른 기준을 갖고 있겠지만, 나는 이렇다. 자신의 감정을 책임지는 사람이고,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다름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고, 자신의 삶을 타인의 기준에 맡기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도 아직 배우는 중이야’라는 태도를 놓지 않는 사람, 그래서 곁에 있으면 나도 자연스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사람... 이런 것이 진짜 어른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어른’이라는 말 앞에 ‘다정한’이라는 형용사가 붙게 되면, 마음에 더 없는 안정감이 찾아온다. 다정함은 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중심을 지킬 수 있는 힘이고, 상대를 누르지 않고도 관계를 지켜내는 태도다. 강인함과 거침이 세상을 이기는 방식이라면, 다정함과 따뜻함은 세상을 감싸 안는 방식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움켜쥔 주먹보다 무엇이든 건넬 수 있는 빈손이 더 클 수 있듯이, 다정함은 결코 작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그리 믿는다.
아이들을 졸업시키며 받은 편지 속에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말들이 적혀 있었다. “다정한 어른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셔서 감사했어요”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내가 어떤 어른으로 기억되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지식을 잘 전달했는지, 규칙을 잘 지켰는지보다 아이들은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존재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조금은 두렵기도 했지만, 조금 벅찼고,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넬의 노래 <청춘연가>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시간은 날 어른이 되게 했지만 강해지게 하지는 않은 것 같아. 시간은 날 어른이 되게 했지만 그만큼 더 바보로 만든 것 같아” 나는 이 가사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간은 우리를 성인으로 만들지만, 모두를 어른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닫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의 마음 앞에서 계산하지 않고 서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교사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나는 여전히 ‘어른이 되는 중’이다. 절대 완벽한 어른도, 늘 현명한 어른도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세상이 너무 차갑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언제든 잠시 기대어도 괜찮은 사람, 실수해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 사람,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어른... 그런 다정한 어른... 시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나이가 더 들어가도, 나는 계속 다정함을 잃지 않는 어른으로 남고 싶다.
아이들을 보내고 한 주가 지나가고 있다. 나는 또 방학맞이, 졸업 후유증의 병치레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매년 겪는 이 시간이 낯설지 않아, 또 찾아왔구나.. 이렇게 또 지나가겠지.. 하게 된다. 다정한 아이들을 만나 일 년 동안 다정할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이 모두 앞으로의 날들에도 다정한 어른을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라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