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이해하고 지켜주는 여백이 되길
늘 상대성이 존재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벌써 5학년이 된 둘째는 여전히 꼬꼬마처럼 작고 귀엽고, 내 여동생은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부모가 되었지만, 사회에서 만난 그 또래 사람들보다도 훨씬 어리게 느껴진다.
나와 여동생은 3살 터울이다. 같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그래도 언니랍시고 3살씩이나 어린 내 동생을 혹시 괴롭히는 친구는 없는지 순찰을 하기도 했다. 공부를 가르치며 이를 악물고 참다가 따끔하게 혼내보기도 하고, 옷 입는 것도 도와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고.. 나름 그랬다.
우리는 자매이지만 굉장히 다른 성향이었는데, 사춘기부터는 자매의 우애로도 그 다름을 참아 내기가 버거웠다. 나는 부모님이 한번 하지 말라고 하면 절대 다시 하는 법이 없는 겁 많은 쫄보였지만, 동생은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하나.. 싶을 정도의 자유분방한 여장군이었다. 나는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성실하게 공부를 해서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는 모범생이었다면, 동생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팽팽 놀다가 벼락치기의 신공을 보여주며 성적을 유지하는 날탱이였고 나는 올빽머리를 단정히 하나로 묶어 한올의 잔머리도 허락하지 않는 쪽진 머리의 여학생이었지만 내 동생은 시대를 풍미하던 깻잎머리를 한 패셔니스타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테두리 안에서 벗어남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의... 시선이었다는 걸.. 크고 나서 알았지만..
지금은 그렇다. 늘 어리게만 느껴지던 동생이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그렇게 함께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뭔가 애틋하고 뭉클하다. 어려서 좀 더 이해해 볼 걸.. 따뜻하게 대해줄걸.. 친하게 지낼걸..이라는 후회의 감정이 든다. 물론 지금은 여동생과 서로 잘 챙기고 의지하며 잘 지낸다.
부모가 되니 형제자매가 우애 좋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게 참 감사한 일임을.. 그 역시 둘도 없는 행복임을.. 알게 되었다.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의 첫째가 어려서부터 동생을 너그럽게 감싸 안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 모습이 마치 내 어릴 적을 보는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불안하고 언니의 넓은 아량을 강요하기도 했던 것 같다. 두 아이가 다투기라도 하면 그 모습이 너무 싫었고, 참기도 힘들었었다. 나의 싫은 모습, 후회되는 모습이 나를 닮은 아이에게서 보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그런데 요즘 두 아이를 보면 밥을 안 먹어도 행복할 정도로 서로를 향한 마음이 따뜻하다. 작년 한 해 사춘기를 보내는 언니의 눈치를 보며 둘째는 심기를 건들지 않으며 조심조심 지내고, 잘 웃지 않는 언니를 위해 개그맨처럼 웃겨주더니, 학원에서 언니가 보고 미소를 지을만한 그림을 문제집에 몰래 그려놓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잘 전달되었는지 첫째는 둘째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서로 깔깔대며 잘 지냈다. 방학을 보내며 언니가 학원에 가고 집을 비우면 언니를 위한 무언가를 준비하고, 동생이 학교에 가면서 자리를 비우면 첫째 아이는 예쁜 그림을 그려 선물해 줬다. 둘이 함께 화음을 넣어 노래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춤도 추고, 그야말로 잘 들 논다.
3살 터울… 나와 동생이 그랬듯이 두 딸아이 역시 같은 시기 입학식, 같은 시기 졸업식을 거쳐…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어릴 적에는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았는데… 사회에 나오고 나이가 들면서 3년은 그리 크지 않은 차이다.
어쩌면 형제자매라는 것은, 같은 시간을 서로 다른 속도로 걷는 동행자일지도 모른다. 앞서 걷는 이가 뒤를 돌아보고, 뒤에서 걷는 이는 앞사람의 등을 보며 안심하는 관계. 지금은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작아 보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간격은 자연스럽게 좁혀지고, 결국은 나란히 서게 되겠지. 내가 동생과 그랬듯이. 서로 다름에 서툴렀던 시간도 지나고, 후회의 마음도 지나, 결국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었듯이. 두 아이도 그렇게 함께 자라기를 바란다.
3년이라는 간격이
서로를 밀어내는 거리가 아니라,
서로를 지켜주는 여백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