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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엘 Nov 09. 2021

분노에 대하여

일리아스 1권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의 첫 대사는 이렇게 무사 여신(Muse)에게 도움을 청하는 노래로 시작한다. 길고 긴 이야기를 빠짐없이 엮어가기에 인간의 기억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음을 작가 자신도 알고 있었으리라.


 분노는 일리아스 전체 이야기의 관통 주제이다. 

인간의 본성 가운데 분노를 제외하고 삶을 논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분노조절 장애를 겪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분노는 동행자요, 그림자임에 틀림이 없다. 최초의 서양문학인 호메로스 작품에서 아주 긴 호흡으로 노래한 것은 분노였다.


 그리스 군의 영웅, 아킬레우스도 인간 본성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열심히 싸운 뒤 전쟁의 공을 보상받는 전리품의 분배에서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공평하지 못했다. 욕심이 앞선 그의 모습에 평소 아킬레우스는 명예 이외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 의연함을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노의 발단이 된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아폴론 사제의 딸, 크뤼세이스를 돌려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신의 전리품, 크리세이스를 돌려보낸 뒤 아가멤논은 어리석게도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빼앗고야 만다. 


수많은 동맹국 왕들의 전리품들 가운데 왜 하필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을 빼앗았을까?

그 답은 아가멤논의 대사 안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 나로서는 제우스께서 양육하신 여러 왕들 중 그대가 제일 밉소. 내 몸소 그대의 막사로 가서 그대의 명예의 선물인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를 데려갈 것이오. 그러면 내가 그대보다 얼마나 더 위대한지 잘 알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는 감히 내게 대등한 언사를 쓰거나 맞설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오.”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에게 보이지 않는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그의 어머니는 바다요정 테티스였으며 아들의 몸을 불사의 몸으로 거듭나게 하려고 스틱스 강에 몸을 담그는 의식까지 행해주었다. 그 결과 아킬레우스의 몸은 창도 화살도 쉽게 뚫지 못하는 불사의 몸이 된다. 단 하나의 약점은 발뒤꿈치 복사뼈 부근에만 스틱스 강물이 묻지 않아 치명적인 곳으로 남게 된다. 아킬레스건이란 치명적인 약점을 지칭하는 용어를 후세에 남기는 신화적 배경을 담고 있다.


금수저로 태어난 그가 아가멤논은 싫었던 것이다. 또한 총사령관이라는 권력의 힘으로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을 빼앗게 된다면 그의 위대함을 만인에게 보여주는 결과가 되는 것이었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참을 수 없는 분노의 한계를 느끼며 아가멤논에게 신랄한 말을 건넨다. 


“ 그대 주정뱅이여, 개 눈에 사슴의 심장을 가진 자여! 백성을 잡아먹는 왕이여! 아카이오이족 아들들 모두 이 아킬레우스를 아쉬워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오. 숱한 사람들이 남자를 죽이는 헥토르의 손에 죽어 쓰러져갈 때 그대는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그들을 구하지 못할 것이오. 그때는 아카이오이족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자를 털끝만큼도 존중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며 그대는 자신의 심장을 쥐어뜯게 될 것이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결국 하늘에 닿았고 어머니 테티스의 탄원으로 제우스가 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운명의 시나리오를 다시 쓰게 되었다. 트로이아군인 헥토르의 손에 수많은 그리스군이 도륙되는 동안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가멤논은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분노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왜냐하면 분노를 폭발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나 가리지 않고 사랑하거나, 시기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분노가 공격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그래서 우리는 적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자식과 부모에게도, 심지어 신과 들짐승과 무생물에게도 분노하는 것이라네.”

플루타르코스의 말을 살펴보더라도 인간은 분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하지만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철저하게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다. 그것을 우리는 호메로스 작품, 일리아스 안에서 읽어낼 수 있어야만 한다. 억제하지 못한 분노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영웅 아킬레우스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 지뢰밭처럼 어지럽게 널려있는 분노의 감정을 요리조리 피해보자. 

내가 맞아도 치명적이고, 남이 맞아도 치명적인 그 분노의 지뢰밭을 잘 피하려면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분노를 폭파시킴으로써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지. 

나는 피해가 없는지. 

내 소중한 것을 잃게 되지는 않는지. 


움켜잡았던 분노의 감정을 스르르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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