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정신적 백신을 개발하기로 했다
“엄마, 지금 비행기 탈 거야. 내려서 전화할게요.”
겪어 보지 못한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아들의 휴학을 재촉하였다. 남은 공부를 마치기도 전에 체류 외국학생들은 각자가 알아서 자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내 아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맞닥뜨린 수많은 유학생들이 마스크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줄줄이 귀향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루가 꼬박 걸려 도착한 야윈 아들의 모습을 보자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몹쓸 전염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아들을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꼬박 2주간 격리를 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아들이 돌아오고 일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어느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규제에 익숙해지고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무덤덤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익숙해진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무거운 돌덩이를 산꼭대기로 올려야 하는 매일의 일상과 닮아있다. 바이러스의 공포는 우리 삶의 모습들을 많이 변화시켜 놓았다. 변화된 삶이 낯설기도 하지만 자꾸만 익숙해져 가는 우리 삶의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언제 끝날지 모를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버겁기까지 하다. 유난히 희고 고운 벚꽃의 향연을 자랑하는 창원의 봄을 닫힌 창문을 통해 바라본다. 마스크 벗고 꽃구경하고 사진 찍고 나들이하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마음속에 커다란 물음표 하나를 던져본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점에 나는 직장을 잃었다. 해야 할 일이 사라진 것이다. 평생 신청할 일 없을 것 같던 실업급여를 받았다. 연명할 돈보다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자발적 격리와 거리두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더더욱 집 밖을 나서지 않게 되고 사람들과의 거리는 사회적 거리를 넘어서 마음의 거리까지 두게 만들었다. 일 년 동안 모임 한번 없이 지낸 경우가 내 인생에 또 있었을까 싶을 만큼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숨죽여 살았다. 필요한 공부도 줌이라는 비대면 수업으로 가능하니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배움을 위한 공간으로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일 년의 시간을 지내고 나니 하나의 희망이 생겨났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것이다. 주변에 의료종사자들은 백신을 맞고 며칠 아프다가 지금은 마음 편히 근무한다는 말을 전해 들을 때마다 어서 빨리 모든 사람들이 백신을 접종하고 면역력이 생겨 마스크 없는 예전의 세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하지만 산 너머 산이라는 말처럼 하나의 걱정과 불안함이 해결되려 하니 꼬리를 물고 다른 고민이 이어졌다.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자가 면역력이 생기더라도 또 다른 바이러스의 공격이 시작된다면 어쩌지?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제일 컸다. 거리두기와 방역, 변화된 바이러스에 대한 또 다른 백신 개발까지 우리는 매번 새롭게 출현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기다리면서 살아야만 할까? 그렇다면 마스크와의 이별은 불가능할 것인가?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줄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우리들의 삶을 위축시키고 있다. 니체의 영원회귀가 바이러스의 영원회귀가 되어 우리 삶을 지배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다가올 미래가 더욱더 두렵기만 하다. 우리들에게는 바이러스의 위험을 넘어 끝없이 이어질 두려움의 공포가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이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코로나 백신 접종만을 손꼽아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원인을 알면 질병치료방법은 쉽고 명확해진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발생 원인은 안타깝게도 명확하지 않다. 원인규명은 앞으로 인류가 극복해야 할 영원한 과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바이러스가 출현할 때마다 백신 접종을 하는 것은 더더욱 최선의 예방이 될 수 없다. 최소한의 예방일 뿐이다. 몸이 약한 사람이 보약 한 첩을 다려먹고 기력이 난다, 건강해졌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과 같이 백신 접종이 심리적 위로를 주기 위한 가시적 행위가 될지도 모르겠다. 백신 접종보다 더 강력한 면역력 향상의 방법을 우리는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 모를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이겨내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백신이 필요하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의 정신과 건강은 한 몸이다. 멘털이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약도 소용이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에겐 정신을 단단하게 지탱해줄 백신이 필요하다.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정신의 강인함과 건강함만이 신체에 접종하는 백신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로 인해 기저 질환자의 사망자 수가 늘어났다.
방역의 수단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후 외로움에 고독사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음을 매스컴을 통해 보고 들었다. 우리 인간은 정신을 강하게 붙들어두지 않으면 누구나 외로움과 두려움에 신체적 면역체계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정신은 신체의 건강함에서 나온다. 5인 미만 집합 금지에 사적 모임을 자제하고 외출도 자제하는 것이 올바른 방역이겠지만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햇살을 받으며 걸어야만 한다. 많이 걷고 많이 뛰고 많이 움직여서 신체적 근육 약화를 미연에 방지해야만 한다. 그리고 집안에서 늘어난 시간을 전자기기와 미디어에만 의존하며 위축된 삶을 살았던 지난 시간을 점검해야만 한다. 재택근무나 외출의 자제로 늘어난 시간을 평소 바쁘게 살면서 손에 잡기 힘들었던 책들과 친해져 보는 시간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좋지만 평소 읽기 힘들었던 인문 고전 읽기에 도전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왜 굳이 어려운 인문고전 책을 추천하는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산을 오르는 것에 비유해보고 싶다. 매일 바라보던 집 근처 산과 국립공원의 산을 오를 때의 느낌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큰 맘먹고 큰 산을 선택해서 오를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오르고 나면 그래, 잘 왔어라는 말이 저절로 입에서 나올 것이다. 가까이서만 바라보던 모습과 오랜 세월의 자태를 품은 명산의 모습이 주는 감동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자신감은 또 다른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마음 근육과 지력은 이렇게 용기 내어 명산을 찾아 오르는 모습과 같다. 어렵게 느껴지는 문장들이 근력을 넘어 지력을 튼튼히 해주는데 한몫을 단단히 할 것이다. 자꾸만 우울하고 약해지는 마음을 단단하게 마음 근육이 잡아줄 것이다.
정신적 백신은 책 속에서 스스로 찾고 발견해보자.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나만의 백신이 될 것이다.
일 년은 두려워서 멈추었다면 지금 이 시간부터는 두렵지만 움직이고 나아갔으면 좋겠다. 용기란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당당히 맞설 수 있을 것을 말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두려운 건 사실이다.
백신만을 믿고 소극적 활동으로 삶이 위축되기보다는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똑바로 마주 보고 스스로의 예방 백신을 미리 준비했으면 좋겠다. 신체적 백신과 더불어 정신적 백신으로 반드시 코로나 상황을 이겨내고 극복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