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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엘 Feb 17. 2021

졸업이 나에게 주는 의미

학위수여식 취소의 섭섭함에 대한 글

  

2020학년도 대학원 학위수여식이 취소되었습니다.     

대학원 행정실에서 보낸 단체문자를 받았다. 

어깨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6학기를 주경야독하며 함께 한 학우들과 품위 있게 학위기도 받고 환한 웃음 지으며 단체사진도 찍고 하늘 높이 모자도 벗어던지며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었는데 모든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가 앗아간 우리의 일상이 어디 이것뿐이겠냐만 서도 나의 작은 바람들이 날아가 버리는 현실에서는 섭섭함이 스물 거리며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같은 대학 학사 졸업을 했던 큰 아들의 졸업식도 취소가 되어 얼마나 섭섭하고 아쉬웠던가? 졸업은 마지막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며 그 시작하는 발걸음에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는 뜻깊은 자리가 없어져버린 것에 대한 마음은 서로가 비슷하리라 생각해본다.     


몇 해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둘째 아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 남편과 나는 일주일 휴가를 내고 캐나다로 날아갔었다. 오후 5시에 시작하는 졸업식 시간도 낯설게 느껴졌지만 그곳 졸업식 분위기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감동적이었다. 3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 생활한 친구들이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서로가 서로를 축하하는 시간을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리허설을 겸해서 진행했다. 남자 친구들은 슈트, 여자 친구들은 하이힐에 미니드레스를 입고 화장으로 자신을 마음껏 꾸미고 있었다. 부모님들이 강당의 1,2층을 가득 메우고 졸업식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내빈 축사 없었다. 상장 수여도 없었다. 250명의 졸업생이 모두 주인공이라는 의미로 무대 위에 250개의 의자를 놓고 한 명씩 입장해서 자리에 앉을 때까지 박수를 보냈다. 한 명의 졸업생 대표가 졸업식 연설을 했다. 대본도 없이 본인의 소감을 솔직하게 말하는 그 모습에 뭉클함이 느껴졌다. 졸업장을 받을 때는 한 명씩 앞으로 나왔고 그 친구의 아기 때 모습부터 장래희망까지 모니터에 띄워주어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아이들이 이렇게 성장해서 졸업까지 왔고 또 저러한 장래희망을 품고 세상을 향해 걸어갈 것이라는 것을 객석의 모든 부모님들께 보여주었다.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졸업장과 함께 받은 친구들은 강단 위의 교장 선생님 외 몇 명의 선생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무대 뒤로 돌아갔다. 

한 명씩 모자의 수술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겨주고 졸업장을 수여. 하나의 큰 산을 넘었다는 의미라고 함

                                     

졸업장 수여식만 2시간 30분이 걸렸다. 객석의 부모님들도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고 박수를 보냈다. 졸업장 수여가 끝나고 영화에서나 본 듯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250명의 친구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졸업식 모자를 벗어서 하늘 높이 던졌다. 그 순간의 찰나를 담기 위해 카메라  플래시가 동시에 터졌다. 그리고 끝이 아닌 시작을 위한 발걸음을 옮겨 식장 밖으로 걸어 나가는 친구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객석의 부모님들은 전원 기립하여 박수를 쳤다. 그 소리가 참으로 가슴 떨렸던 현장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모두가 졸업의 기쁨을 외치며 

행사장 밖으로 나오자 저녁 8시가 넘어서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수많은 졸업생과 학부모들이 서로를 안아보고 꽃다발을 전해주고 사진을 찍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에게도 행복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노을 속의 졸업식 모습, 너무나 멋졌다. 


그 모습을 보고 와서였을까? 

그 해 여름, 남편의 대학원 학위수여식이 있었다. 경영대학원 MBA 과정 인원이 많았지만 모두가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고등학교 졸업과 다르게 대학원 졸업의 권위를 느끼게 해 주었다. 두 아들과 함께 남편을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과 카메라를 들고 온 가족이 출동을 하였다. 지나고 보니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우리 부부의 사진철학만큼 사진을 꽤 많이 찍었다. 남편은 그때를 기억하면 참으로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졸업할 수 있길 늘 바란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렸던 학위수여식 자체가 없어졌다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록유산이 될 사진을 많이 못 찍는 아쉬움도 크지만 그동안 6학기, 3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지내고서도 함께 공부한 서로가 더 가까워지지 못하고 헤어짐이 사실은 더 많이 아쉽다.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늘 말하지만 인문 전공 선생님들과의 인연은 아마도 이것으로 끝이 아닐까 싶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넘어서 마음의 거리두기가 더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누구 하나 졸업 당일에도 모이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고 누구 하나 미래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다. 만나 지면 만나는 대로 헤어지면 헤어지는 대로 그렇게 졸업은 말 그대로 끝이라는 생각으로 서로가 지나치게 덤덤한 것이 참으로 무심하다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나만 그런 생각일지 모른다 싶어서 무겁게 입을 닫고자 했지만 내가 조금은 연장자라 생각해서 총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를 맡았으며 하기 싫더라도 앞에서 할 건해야 하고 공지할 건 해야 하지 않느냐. 

코로나 핑계대로 너무 활동 안 하고 무심하게 관망하는 것 아니냐. 졸업은 우리 행사이지 학교 행사가 아니다. 우리끼리라도 차 한잔 마시고 얼굴 보고 사진 한 장 같이 찍자고 공지 올려야 되는 것 아니냐고 터져 나오는 말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미안했지만 솔직한 마음이었다. 대표는 권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도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의 동의를 얻어서 대표가 되는 것이고 내가 싫더라도 책임감 있게 끌어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찾아서 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목요일, 3시에 올 사람들은 와서 같이 사진이라도 찍자는 문자가 올라왔다. 그 간단한 말이 이렇게 어렵게 나올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인데 우린 그렇게 문자 한 줄에 기다렸다는 듯이 의견을 남겼다.      

인문 전공, 인문학을 공부했던 사람들은 사람에게 따뜻한 관심이 첫 번째로 요구된다.

인문학이란 사람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학문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 서로에 대한 배려도 없이 학위증 하나만을 목표로 3년 공부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이다. 세상은 소중한 인연으로 더 행복해지고 더 풍성해짐을 수천 년 전의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우리는 함께 배웠다. 사람에 대한 무관심과 교만함, 오만함이 비극의 원인이 되었음을 같이 읽었다. 그런데도 배움이 숙고를 통해 삶으로 묻어나지 않는다면 학위증이 무슨 소용일까? 나에게 졸업이란 삶을 좀 더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자격증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는 하루하루 늙어가지만 배움의 길은 나날이 새롭구나.

그리스의 현인 솔론의  말이다. 우리는 지혜롭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 대학원이라는 배움을 선택했고 그 결과물로 학위증을 받을 뿐이다. 졸업이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도록 평생교육의 개념으로 배움의 길을 걸어가야만 할 것이다. 솔론의 말을 새겨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날인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섭섭함을 담아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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