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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옐 Aug 02. 2017

직장인의 지구가 도는 법    

25번째 공전에서야 알게 된 것들

카페에 앉아 언제 놀러 가지- 류의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핸드폰 캘린더를 열었다. 벌써 올 해도 반절을 넘겼다. 시간도 내리막길에선 가속이 붙는 걸까, 유월이 지나니 어쩐지 연말까지 이대로 데굴데굴 굴러갈 참인가 싶다.


생각 없이 달력을 엄지로 휙휙 내리다 12월에 멈추었다. 크리스마스가 월요일인 것을 보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크리스마스가 월요일이라는 건 신정도 월요일이란 뜻이다. 이주나 연속으로 쉴 수 있다. 그것도 월요일에! 몇 달은 기다려야 맞을 수 있는 휴일에 벌써부터 신이 났다.


크리스마스랑 신정은 같은 요일이다. 12월 25일부터 1월 1일까지 딱 7일 차가 난다. 7일이 한 주라는 단위로 묶이게 된 이후로 일 년이 365일이 된 이후로 아주아주 오랜 시간 동안 두 날은 같은 요일이었을 거다. 내가 살아온 이십몇 년의 세월 동안도 물론 그랬다. 그런데 나는 작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그 사실을 인지했다.


왜냐하면 작년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연말연시를 '일하며' 맞은 해이기 때문이다. 학생일 때는 크리스마스와 신정이 휴일로써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겨울방학이니까 쉬는 날이다. 무슨 요일이든 상관없었다. 2016년이 되어서야 인생 최초로 크리스마스 다음날, 새해 첫날의 다음날 쉬지 않고 출근을 해야 하는 해를 맞이했는데 하필이면 두 공휴일이 모두 일요일이었다. 이틀이나 쉴 수 있는 기회를 날린 것이 나는 몹시 슬펐다.


직장인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평생 크리스마스와 신정이 같은 요일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긴 휴가를 갖는 서구 문화권에서 태어났더라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부처님 생일도 예수님 생일도 모두 기념하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 태어난 나는 작년 연말에 하필 일하고 있었고, 하필 꿀 같은 두 휴일이 일요일에 겹쳤다. 쉬는 날의 결핍이 너무 선명했다.


24년을 사는 동안 지구는 한 해도 어김없이 태양을 한 바퀴씩 돌았을 텐데,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와 닿지 않았던 사실이 어째서 직장인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나 퍼뜩 다가온 걸까.


그 전까진 와 닿지도 않던 수많은 일들이 나의 상황이 되어야 비로소 눈에 보인다는 점이 나는 너무 신기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는 직장인이 된 이후에야 비로소 눈에 띄는 수많은 것들을 지금까지 몰랐다는, 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인 투 식스+α 인간이 되며 세상이 눈에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직장을 가지고 경제활동 인구가 된 후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해가 지는 시간에 무척 예민해진다는 것(깜깜한 밤으로 걸어나오는 날이면 삶의 무의미에 대해 고찰할 확률이 높아지니까). 날씨가 안 좋은 주말에 대한 관용의 역치가 낮아진다는 것. 아침마다 대중교통으로 몸을 밀어 넣는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옆사람을, 이 세상을 싫어하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된 것.


처한 만큼 보인다. 나는 급급하여 딱 그만큼밖에 못 보는 시선을 가졌다. 어쩐지 직장인 고글을 쓰고 바라보는 이 세상은 일희일비로 가득 차 있고, 경주용 마처럼 눈 옆이 가려지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이 어쩔 수 없는 나의 시야다.


그래도 일단 올해 하반기는 꽤 희망적이다. 추석 연휴가 엄청나게 길고 연말연시엔 주말을 이주 연속 삼일씩 즐길 수 있다. 이 단순하고 좁은 일희일비형 시야 덕분이다! 내친김에 올해의 불행을 1월 1일 시작이 일요일이었던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그러면 일주일의 시작을 쉬며 시작하는 내년은 조금 더 나은 해가 될 거라고 희망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크리스마스와 신정이 다시 주말이 되는 건 2021년이 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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