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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란 Dec 11. 2024

2. 엄마 저 조용한 ADHD인 것 같아요

조용한 ADHD, ADD

조슈아가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갈 즈음이었던가. 갑자기 자신은 조용한 ADHD라며 내게 병원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조용한 ADHD라는 병명을 듣고 그 특징을 본 그레이스가 '야, 이거 딱 너다'라며 조슈아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검사지를 가져다주었고, 그 문항 중 대다수가 자신의 특징을 보여준다며 엄마를 찾아온 것이다.


우리 아들이 조용하기는 하지. 그런데 ADHD라는 병명은 조용하다는 단어와는 애초에 함께 할 수 없는 단어 아닌가? 찾아보니 몇 년 전부터 성인 ADHD 환자들의 책이나 인터뷰 같은 것들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후 과잉행동Hyperactivity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주의력 결핍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병으로 인식하지 못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거나, 덤벙대고 눈치없는 4차원적 인간으로 치부되며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슈아가 자신을 조용한 ADHD라고 주장하던 때는 코로나 2년차로 넘어가던 2020~2021년이었고, 방치된 아이들의 학력관리가 엉망진창이었을 때이다. 조슈아가 유독 느린 아이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달리는 수학학원에 보내면 힘들어할 것이 걱정되어 나름 수학교육을 전공한 얌전한 성품의 여자선생님이 운영하시는 공부방에 보내고 있었다. 아이에게 최대한 속도를 맞추어주고 있음에도 아이가 숙제를 너무 못 해오니 한없이 진도가 쳐지는 상황이었다. 매일 책상에 앉지만 수학 문제집이 3박 4일동안 한 페이지에서 멈추어 있는 모습을 관찰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레이스가 고1이어서 거기에 온통 정신을 쏟느라 조슈아는 좀 있으면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신경을 쓰지 못했다. 남자 아이들이 사춘기 때 다 저 정도로 어리바리한 건 보통 아닌가 하며 일단 조금지켜보자 싶었다.


조슈아는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태권도를 했다. 반사신경이 너무 떨어져 발차기는 못했지만, (좀 지나치게)진지하고 정확한 동작으로 품새를 하는 걸 보고 있자면 귀엽기도 하고 '그래 우리 아들은 저게 강점이지' 싶기도 했다. 더 어려서는 금요일에 질문한 것에 대한 대답을 월요일에 듣게 된 일이 있었는데 '아빠 닮아 생각이 깊구나. 어린 아이가 주말 내내 그 한가지를 계속해서 고민하다니 그런 진중함이 연구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지. 아빠처럼 과학자가 되면 되겠다'며 칭찬해주었다. 편의점 과자코너에서 과자 하나를 고르는 것도 너무 어려워해서 5분 10분 기다려주다 '그냥 이거 먹어'하고 아무거나 안겨주고 집에 데려와서는 '아이에게 더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했던게 아닌가' 미안한 맘에 자책하기도 했다. 말이 많지 않아 친구가 없었지만 몇 개월 지나 2학기쯤 되면 친구들이 자슈아가 착하고 나름 똑똑한 친구라고 생각해주는 것 같아 문제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조슈아가 스스로를 조용한 ADHD라면서 테스트 결과지의 각 항에 대해서 말할 때 그건 진술이나 설명이 아니라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수학문제를 풀려고 책상에 앉으면 딴 생각이 끊임없이 몰려와서 집중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말이 별로 없는 것도 친구들의 대화내용에 대해 머릿속에서 생각하다가 말을 내뱉을 때가 되면 대화내용과 맞지 않는 엉뚱한 내용들인 경우가 자꾸 생겨 실수하지 않으려고 말을 줄이기 시작하며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왜 그런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냐고 묻자 자신은 여러번 얘기했다고, 그런데 엄마가 그 말을 무시하거나 흘려들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데 순간 너무 미안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니 그게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집중력은 훈련을 통해 기르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아, 들어봐. 원래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야. 인간의 본성은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릴렉스 하는거지. 모든 질서 상태도 에너지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가잖아. 시간이 지나며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가 올라가는게 자연스러운거야. 뭔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행동 아닐까? 그건 누구에게나 어려워. 힘을 들여야하고 훈련해야 하는 일인거야.'하고 아이를 달랬다. 그러나 내 속 마음은, 혹시 병원에서 ADHD라는 진단을 받는다면 아이가 '나는 집중이 안 되는 사람'이라며 그것을 명분으로 삼고 공부에서 손을 놓을까봐 걱정이 되어서 현실을 직면할 시간을 억지로 미루고 싶다는 것이었다.


조용한 ADHD 사건이 있었을즈음, 공부방 선생님이 현진이를 더이상 맡기 힘들어하셔 결국 수학학원에 보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숙제를 모두 끝마치고 수업에 가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수학 점수는 늘 60점대였다. 그러나 '내 아들은 수학을 못하는 애'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저 '계산 속도가 느려서 그래. 훈련하면 나아질거야'라며 조슈아를 향한 격려인지 나 스스로에 대한 최면인지 모를 말만 계속 했다.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도 시험때가 되면 시간내에 문제를 다 풀지 못하고 마지막 한 두 페이지는 손도 못 대고 종이 쳐버리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며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빛이 조금씩 초롱초롱해지는 것도 같았고, 말도 좀 많아지고, 기하파트를 배우던 2학기 때는 놀랍게도 기말고사에서 100점을 받기도 했다. '봐라, 시각을 다투는 계산이 많을 때는 쪽을 못 쓰더니만 기하학적 통찰이 필요한 단원에 들어오니 이런 점수도 나오잖아. 넌 바보가 아니야.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기계적으로 빨리 풀게 시키는 이 나라의 시험이 문제인거야'라며, 내 아이를 부진아로 만드느니 차라리 그런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인 나와 학교 시스템를 죄악시하는 것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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