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다르게 정의하는 단어, 여행.
2002년, 결혼하고 미국 가는 비행기를 탄 것이 제주도를 제외한 나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한 달에 한 두 번 경양식집에 가 돈까스나 함박스테이크를 썰거나 돼지갈비를 굽는 외식을 할 만한 여유가 있으니 우리집이 꽤 잘 산다고 생각했으나, 대학이라는 곳에 가 진짜 여유있는 가정의 친구들을 만나며 악기나 운동, 여행 등에 꾸준히 돈을 쓸 수 있는 집에 비해서는 가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학하면 일주일 가까이 스키장 리조트로 가 수업을 한다는 스키수업 대신 매 주 삼 천원의 입장료만 있으면 배울 수 있는 볼링수업을 수강했다.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악기를 하나 배우고 싶었으나 방학 때마다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있는 집 아이들이 들어가는 동아리라는 소문을 듣고 장단을 못 맞출까봐 그 무리에 끼기를 포기했다. 고액의 과외를 여러 건 해서 일주일 스키 강습을 가거나 유럽 배낭여행을 갈 만한 여유가 안되는 형편도 아니었는데 왠지 돈을 들여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내 것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90년대 후반에는 워킹홀리데이나 대학생 배낭여행이 대유행이었고, 보다 못한 엄마가 '너도 유럽 배낭여행 좀 가라'고 등을 떠미셨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서 눈으로 휘리릭 보고 돌아오는 거에 그 큰 돈을 쓰느니 난 그 돈으로 여기서 맛난 거 먹고 더 재미나게 놀겠다'며 거부했다. 3학년 때였던가. 한 TV 방송국에서 대학생들을 뽑아 유럽여행을 보내주고 그걸로 방송을 만든다고 해서 신청하여 면접을 보기도 했는데, '우리가 당신을 우리 방송 멤버로 뽑아야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보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외모 되고 학벌 되는 나를 데리고 어떤 그림을 뽑아낼 것인지는 당신들이 고민해야할 부분'이라고 답해서 똑 떨어졌다. 애초에 여행을 좋아하지도, 여행이 무언지도 모르는 나같은 애를 데려다가 방송을 찍어봤자 재미있는게 나올리 만무하지. 나라도 나는 안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 정도로 예쁘지도 않았다. ㅋ)
신혼 초 남편이 다니는 대학의 ESL 클래스에 등록했을때 서로의 취미를 돌아가며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반 아이들이 나열한 취미 중 가장 신기한 것이 쇼핑과 여행이었다. 취미라면 자고로 음악감상, 독서, 운동 같은 것이어야했건만 어떻게 쇼핑이 취미가 될 수 있는지. 그런데 지내다보니 미국인들 중에는 쇼핑이 취미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지인~~짜 많더라. 미국은 소비의 나라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취미생활을 통해 추구하는 스릴, 만족, 자유 같은 것을 쇼핑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나도 곧 알게 되었다. 남들에게 얘기하기에 품격이 좀 떨어지는 취미이긴 하지만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쇼핑이 취미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뭔가 경제적 여유를 과시하는 듯한 느낌까지도 주어 꽤 힙한 취미 같기도 하다.
여행은 또 다른 이유에서 취미라고 말하기에 난감한 측면이 있다. 취미라면 그것이 지속적이어야 하는데, 여행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다. 미국에서 맞벌이를 하는 이유를 '혼자 벌면 그냥 사는 것living만 할 수 있고 둘이 벌어야 여행을 갈 수 있어서'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미국인들은 여름 휴가를 위해 일 년간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전부였던 과거 우리 부모세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 여행이라면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먹고 입고 쓰는 것을 절약하여 모은 돈으로 여행을 다닌다.
부모와는 달리 미국에서 태어나 아기때부터 여러번 비행기를 타 본 큰 아이 그레이스가 '여행의 목적은 인스타에 사진 올리는 것일 뿐'이라며 그리 여행을 즐기지 않는 것, 반면 '눈으로 휘리릭 보고 말 것에 돈을 쓰지 않겠다'던 내가 뒤늦게 여행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이 흥미롭기까지 하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봄여름가을겨울 짧은 휴가를 내어 미국전역을 여행하는 것이 To do list를 이루었고 그에 관한 정보를 열심히 주고들 받았지만, 학교에서 주는 쥐꼬리만한 생활비로 생존하는 것이 최대 미션인 우리에게는 녹녹지 않은 영역이었다. 그래도 대표적 도시들마다 건너건너 지인들이 있어서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거리라면 열심히 다녔다.
그 때 내게 여행이란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것이었다. 원래부터 사람에 관심이 많아서 유학생활 동안에도 그곳에 사는 많은 이민자들의 삶을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도시마다 약간씩 다른 분위기의 삶이 펼쳐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런 관찰은 관광지를 걸어다니며 이색적인 풍경을 훑어보는 정도로는 할 수 없는 것이어서, 현지에 사는 가정을 방문하여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내가 진짜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이런 여행패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여행은 설정부터가 민폐였던 것이다. 휴가 나온 군인은 밖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들 오매불망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도착하는 순간 다들 기쁨의 폭죽을 터뜨리고 3박4일 짧은 시간동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돈과 시간을 바쳐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휴가 나온 군인 동기가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지 안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한국에서 여행온 지인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에 놀러오는 사람들도 휴가나온 군인 같은 심정이겠지만 뉴요커들에게 뉴욕은 관광지가 아닌 생활터이다. 누가 온다고 거기에 맞추어 휴가를 쓸 수도, 그들을 좋은 곳에 데려가 맛있는 것을 먹일 경제적 여유가 있지도 않다. 우리처럼 '재워만 주세요'하는 손님이라도, 가고 나면 치워야할 방과 빨아야할 침구류가 생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은 그들의 도시에 대해 여행객인 우리보다 아는 게 없다. 시기별 축제나 뮤지엄 정보, 맛있는 식당도 모른다. 송도에서 10년째 사는 우리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아직 가보지 않은 것이나 센트럴파크 오리보트를 타보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어도 사는 사람과 여행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
필라델피아에서 2년을 살다 한국에 귀국하게 되었을때 부랴부랴 두시간 거리 뉴욕을 밀린 숙제하듯 당일치기로 다녀온 날이 기억난다. 뜨거운 7월 날씨에 둘째 조슈아를 아기띠로 업고 2층짜리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휘리릭 한바퀴를 돌며 '브로드웨이 뮤지컬아 언젠가는 내가 다시 와서 너를 봐줄게, 자유의 여신상아 다음에 내가 여유있게 오게 되면 너의 머리 전망대에 올라가줄게' 말은 했지만 그럴 날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때 다짐했다. 어느 도시에 살든지 그곳에서 딱 일 년만 살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야겠다. 그곳에서의 마지막 여름인 것처럼, 그곳에서의 마지막 축제인 것처럼 그렇게 모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살자. 생각처럼 실행이 쉽지 않은 다짐이었지만 그래도 그 다짐이 나의 귀차니즘에서 몸을 일으키게 해주는 주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 그리고 뉴욕은 한국에서 낳은 셋째 올리비아까지 다 데리고 2019년도에 다시 방문할 수 있었고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도 2열 중간에 앉아서 너무나 재미있게 봤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하와이에 있다. 겨울방학을 한 지 닷새째 되는 날 떠나왔다. 이번 여행의 특이한 점은 숙박비가 들지 않는 여행이라는 것이다. 남편이 근무하는 대학의 총장님이 이 곳에 숙박시설을 구입하여 글로벌센터를 만들었다. 학생들은 이곳에 머물며 어학연수를 할 수 있는데, 교수들에게는 재직기간 중 한 번에 한해 6박의 체험기회를 준다. 숙박비가 들지 않는 여행이 주는 여유는 색다르다. 그곳에 체류하는 일 분 일 초가 돈이라고 생각되면 한 시도 허투루 보낼 수가 없이 조급한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아, 나만 그런가?) 공짜로 잔다고 생각하니 오늘처럼 아무 일정 없이 마당에 나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여행의 일부로 느껴진다. 한창 추울 한국을 떠나 거짓말처럼 따뜻한 공기와 햇살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쉼이 되는...
방학하자마자 가깝든 멀든 어딘가로 떠나 환기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학기 중의 학교 업무와 방학 중의 육아 업무가 그대로 연결되며 개학 즈음엔 번아웃되고 만다는 것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방학을 하면 잠시 끊고 떠나는 시간을 갖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지금의 내게 여행은 물리적으로 나를 다른 공간에 옮겨 일상을 끊고 환기하여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재충전하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때 첫 제주도 여행을 가서 4박5일동안 시간을 보내는걸 본 올케가 '무슨 제주도 여행을 그렇게 하냐'며 대놓고 구박 혹은 비난을 한 적이 있다. 남동생네는 꿈을 쫓아 결혼 후 제주도로 내려갔고 팬션을 운영하며 애월에서 아이들을 키운다. 그때도 나는 남편의 학회 참석의 기회로 제주도를 가게 되었고 다시는 제주도에 안 올 사람들처럼 알차게 4박 5일을 보내야한다는 강박 속에 일정을 짰다. 미리 예약해 둔 뮤지엄과 뮤지엄을 옮겨다녔고, 한 곳에서 예정된 시간을 보낸 후 서둘러서 다음 장소에 몇시 몇분까지 도착해야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나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절감한 것이, 지나간 하루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고 그 시간동안 아이들은 그 하루만큼 성장한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그날이 그날일 수 있어 하루정도 의미없이 보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워보면 하루만큼의 성장이 얼마나 빠르고 큰 변화인지 무서울 정도이다. 내가 인식하든 못하든 그날 하루동안 아이는 그날의 경험과 섭취한 영양만큼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언젠가부터 나는 하루도 허투로 보내지 못하는 강박에 시달렸다. 한 날은 몸살기운이 있어 돌 지난 아기였던 그레이스와 하루종일 바닥에 드러누워 보낸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하루종일 밖에도 못 나가고 한 일이라고는 끼니를 떼운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죄책감이 들 수가 없었다. 지금은 하루종일 휴대폰 게임만 하다 하루가 다 지나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지만 그때는 그럴때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그 당시 여행은 과업이었고 숙제였고 심지어 성적을 매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여행을 통해 여행을 배우는 여행객이 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하와이 여행에서는, 충분히 자고, 무리하지 않으며, 하루에 하나의 일과 만을 소화하는 게 나에게 맞는 여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가서도 오래 이 곳을 기억할 기념품이 냉장고 자석 말고도 하나쯤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념품샵에 있는 파인애플 모양의 나무 도마를 본 순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시간과 장소의 단절이 방학 직후에 필요한 것이라면 이번처럼 비행기값이 많이 드는 장소가 아니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추울 때는 따뜻한 곳으로, 더울 때는 시원한 곳으로의 여행이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니 위아래로 긴 지형의 일본도 좋은 선택지일 것 같다. 한 번 맛본 패키지 여행의 편리한 매력에 반해 두번째 시도했던 패키지 여행이 결국 어떤 기억도 남기지 못한 경험도 있다. 그 장소에 대해 미리 공부한 사람이 일행 중 가장 재미있는 여행을 한다는 사실도 나는 경험으로 안다. 그렇게 계속 배운다.
이번 여행에서 읽은 책 <단 한 번의 삶>에서 김영하는 '사람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말과는 달리 우리 모두는 시시각각 끊임없이 변화하고, 오히려 변화보다 더 어려운 것이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참 많이 변했고 여행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다. 그래서 '여행이란 이런 것'이라는 정의는 평생 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내 결론이다. 모든 나이, 모든 상황, 모든 여행이 나에게 다른 의미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비록 '돈이 별로 없는 나'이지만 여행을 취미로 삼는 것은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한다. 어두움이 있어야 빛이 있듯이 일상을 떠나는 여행을 중간중간 끼워넣어야 나의 삶, 나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랄까. 삶의 모든 순간이 배움인 나는 오늘도 하와이에서 여행을 배웠다.